꿈 속의 그는 젊었다. 서른 여섯의 나이. 탄탄한 근육질의 몸에 자신감 있는 얼굴.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동자에는 그 날 그대로의 장난기가 머물고 입가엔 즐거운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메리놀병원에서 내려오는 영주동 언덕배기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굽어져 도시를 가르는 큰 길과 맞닿아 있다. 거기엔  우체통 같이 마냥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이 있고, 두 연인을 어디론가 실어줄 버스가 미끄러지듯 들어오곤 했다.
  방금, 그는 멋진 강의를 끝내고 두둑한 강사료도 챙겼다. 특강이 있는 날엔 어김없이 만났던 두 사람. 여늬 때와 같이 그는 바람 같이 달려왔다. 이제 곁에 매달려 재잘대는 그의 카나리아와 멋진 곳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일만 남았다. 주제에 막힘이 없는 대화는 언제나 최상의 양념이다. 
  세상은 온통 분홍빛이고 하늘은 연푸른 빛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을 감싸고 도는 공기는 파스텔톤처럼 부드럽다. 
 "우리,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을까?"
 울림이 있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으례히 인사로 묻는 이런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답해 본 적이 없다. 그와 함께 있는 즐거움이면 족할 뿐, 어떤 장소 어떤 음식이 무어 그리 대수일까. 그의 선택은 늘 탁월했다.
  가끔은 태종대 아카시아 휴게소에 가서 국수를 말아 먹으며 밤바다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가 이름 예쁜 카페로 불쑥 들어서기도 했다. 
  그는 자주 노래를 불러주었고 시를 읊어주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는 '떠나가는 배'나 '또 한송이 나의 모란꽃'이었다. 때로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로 마무리 짓곤 했다. 그가 즐겨 외워주는 시는 유정이 쓴  '램프의 시'였다. 
  "하루 해가 지면/돌아드는 남루한 마음 앞에/조심된 손길이 켜 놓은 램프/ 밥그릇을 바지런히 섬기는/나의 키 작은 아내는 /오늘도 생활의 어려움을 말 하지 않았다..."
  귀 기울여 듣고 있노라면, 눈 앞엔 어느 새 행복한 부부의 한 정경이 떠올랐다. 때로는 우리가 마치 시 속에 나오는 부부인 양 따스한 일체감을 주기도 했다.
  꿈은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는 것으로 끝났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가 날 깨웠다. 어제런듯 생생한 꿈. 잠은 달아나고 어둠 속에 누워 나는 삼십 여 년 전, 우리가 헤어지던 마지막 이별 장면을 떠올렸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늘 흙이 묻는다던가. 흙이 그다지도 많은 은유를 지니고 있음을 이전에는 몰랐다. 그저 하나의 아름다운 시적 단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별을 앞 둔 사랑 앞에서 흙은 감당할 수 없는 수분을 지니고 있었다. 
  기어이 이별의 날이 다가왔다. 한 사람은 한국에 남아야 했고 또 한 사람은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지역적 거리감이 두 사람의 그리움을 배가시켜줄 거라 믿었다. 서로의 행운을 빌며, 나는 일곱 번 째 택시를 타고 떠나왔고 그는 장승처럼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삼십 년도 훨씬 지난 세월, 살아 있으면 지금쯤 칠십의 초로가 되었을 나이다. 꿈 속에서 그는 내 기억이 머문 서른 여섯의 모습으로 붙박혀 있다. 
  뜻밖에 꿈길로 찾아온 그.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나와 함께 있어준 사람. 나를 격려해 주고 성장시켜 준 사람. 감사함과 미안함 때문에 한 번은 만나야할 사람이다.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이 한 마디 전하고 싶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과연, 이 한 마디를 전할 기회가 있을는지. 다시 한 번 운명의 주사위에 행운을 걸어봐야 겠다. 운명은 가끔 비극적 소설로 우리에게 눈물을 주지만, 어쩌다 동화적 아름다운 결말로 기쁨을 주기도 하니까.
  떠나는 기차일까, 돌아오는 기차일까. 멀리서 기적이 운다. 꿈을 깨우는 소리. 하루를 여는 생활의 아침이 여명 속에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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