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월요일. 오후 6시 50분에 영작 클래스가 있는 날이다. 9월 2일 가을 학기가 시작되어 이제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12월 21일이면 끝나는데, 홈웤이 장난 아니다. 마침, 벽보를 보니 앞 시간에 4시 50분부터 소셜 댄스 클래스가 있었다. 머리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일 듯하다. 하지만, 몸이라곤 흔들어본 적이 없는 나. 벽보 앞에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옆에 있던 젊은 애가 재미있을 거라며 같이 하자고 부추긴다. 한 번 해 봐? 몇 사람 놀래켜 볼까? 상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파티 때마다, 올림머리에 분장을 넘어 변장까지 하고 파티복을 입고 와서는 춤은커녕 노래 한 곡 안 하니 맨날 퇴박만 받았다. 전형적인 A형 소심증이라, 수필 강의할 때도 양해를 구한 뒤 앉아서 하곤 한다. 보기하고는 다르다나. 내 별명이 멍석인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내가 춤을 추다니! 그것도 템포가 빠르고 야한 살사를? 에라, 모르겠다, 저질러 놓고 보자. 공짠데...... 게다가 1학점까지 준다지 않는가. 오케이! 젊은 애가 환호를 하며 하이 파이브를 친다. 머리도 식히고, 재미수필 연말파티 장기자랑에도 써 먹을 수 있다면 이건 일석이조다. 그러나, 과연 내가?
담뿍 걱정을 안고 강당으로 들어서니, 젊은 애들만 득실득실했다. 에그, 어딜 가나 나는 고령 상위권이로구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교수는 집시형 옷매무새하며 외모도 춤하고는 영 거리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몇 십 년을 가르쳤는지 얼굴은 나처럼 인생의 연륜이 뚜렷하다. 하지만, 음악을 틀고 대형거울 앞에 떡 버티고 서자 완전 딴 사람이 되었다. 도도하고, 건방지고, 자신만만한 태도. 딱, 내가 추구하는 이상형이다. 흐늘흐늘, 하늘하늘, 뱀처럼 꼬고, 늘였다가 줄였다가 팔이고 발이고 연체동물이다.
멋있다! 춤을 잘 추면 저렇게 멋있구나! 에이, 나도 힘든 마라톤 치우고 한 번 춤에 빠져 봐? 엉뚱한 영웅심리가 발동한다. 못할 것도 없지. 여고 시절 포크 댄스 시간에 난 늘 만점을 먹지 않았나. 키는 작아도 반 대표 배구 선수에 농구 선수까지. 일단 강서브로 공을 넘겼고, 빠른 드리볼로 짬짬이 공을 넣었었지. 그렇다! 나는 잠재력 있는 여자, 계발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이 없었을 따름이다. 어디선가 숨어있던 용기들이 여기저기서 앞다투어 나온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 이것이 이렇게 날 편하게 할 줄이야.
어찌어찌 흉내내며 따라 하다보니 어느 새 5주간의 살사 클래스가 끝나고, 지난 주에 기본 스텝 테스팅도 끝났다. 당연히 파트너를 잘 하는 아이로 찍었으니 패스할 수밖에. 다만, 그 애 허벅지에 내 허리를 걸치고 수평으로 눕는 고난이도는 생략했다. 무엇이든지 분수껏 해야 하는 법. 패스할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스텝만 밟았다. 파트너를 잘 구한 것과 몸에 힘을 뺀 것이 연습 부족을 메꾸어준 장본인이다. 무엇을 하건, 목이고 어깨고 힘을 빼야 한다. 야구도 홈런 치겠다고 어깨에 힘 주면 번번이 스윙 아웃 되지 않던가. 4번 타자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삼진 당하는 걸 숱하게 봐온 나. 그걸 실전에 처음으로 써먹었다.
오늘 부터는 탱고의 시작. 멋있게는 보이지만 추기는 어려운 춤. 라쿰파라시타처럼 조금은 절뚝이게 하는 엇박자에 고개를 홱홱 재껴야 하니 될란가 몰라. 호기심 반, 걱정 반을 안고 학교에 오니, 글쎄 웬 떡? 클래스 켄슬이라나. 그래도 출석 점수를 위해 잊지도 않고 메모지를 알뜰히도 붙여놓았다. 모두들 “야호!”하고 환성을 지르며 이름을 써 놓고 총총히 사라진다. 에그, 쫄바지에 샤넬 5 향수까지 몇 방울 떨어뜨리고 왔건만......
나는 두 시간의 여유를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카카오 스토리나 쓰자 싶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나뭇잎 사이로 달빛도 교교하고 가로등도 분위기를 자아내는 교정.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교정의 가로등 밑에 앉아 시시콜콜하게 이런 글을 썼다. 영작 클래스까지 딱 14분 남았다. 이제 일어서야 겠다. (1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