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일요일 오후, 딸과 손녀를 만나 외출에 나섰다. 때는 그야말로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이다. 모처럼 딸과 손녀를 만나 마음이 떠 있는데 화창한 LA의 봄날씨까지 기분을 붕 띄워준다.
우선, 점심으로는 해물요리를 먹고 말로만 듣던 ‘국제 시장’ 영화를 보기로 했다. 다행히,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또 한 아버지의 삶을 통해 오십 여 년에 걸친 우리나라 현대사를 엿볼 수 있을 거라 했더니 딸이 바짝 호기심을 가졌다. 딸은 히스토리에 관심이 많다.
3년 전, 할머니가 되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제는 할머니만이 해줄 수 있는 우리들의 뿌리 이야기나 추억담을 못 듣게 되었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벽돌 한 장이 한 채의 집을 짓듯, 개인의 삶이 결국은 역사로 이어진다는 엄연한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고 개인의 일기도 값진 유산이 되는 것을.
내가 어느 날부터 카카오 스토리를 시시콜콜 장황하게 쓰고 원고지 열 두 장 분량의 수필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도 나의 딸과 손녀에게 내 삶의 흔적을 기록해 두고 가기 위함이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나에게 애정을 준 벗들에게 남기고 가기 위함이다.
‘참바다’에서 먹은 해물요리는 거창했다. 튀김 떡볶이와 매운 해물찜을 시켰는데 양이 많아 먹어도 먹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결국은, 3분의 2정도는 싸 가지고 와야 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선택은 탁월했다.
영화는 마당 몰에 있는 CGV극장에서 보게 되었다. 웨스턴과 6가 H마트가 있는 곳이다. 매일 지나다니다시피 해도 들어가 볼 일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가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아기자기한 게 재미있었다. 장독대 위에 꾸며 놓은 꽃도 앙증스럽고 동양화 벽화로 꾸민 인테리어도 정겨웠다. 영화가 두 시간 뒤에나 시작해 여기저기 기웃대며 생활용품도 사고 맛있는 빵도 먹으며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단연, 주된 화제는 손녀의 진학 문제로 어느 대학에서 합격 통보가 오느냐 하는 거였다. 나는 유명 대학을 선호하는 반면에 아이들은 작으면서도 알찬 리버럴 아츠 계통의 대학을 선망하고 있었다. 나는 실력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지향했으면 하는데, 애들은 명문 대학이란 이름보다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업 분위기에 더 우선을 두는 것 같았다. 아무려나. 여기서 공부한 엄마에 그 딸이니 알아서 하겠지 싶어 슬 꼬리를 내렸다.
드디어, 영화 상연 시간이 되었다. 티켓팅 창구에는 ‘국제 시장’을 뗀 지 이미 오래된 아줌마 아저씨들이 ‘쎄시봉’ 티켓을 사느라 분주했다. ‘애들한테는 오히려 쎄시봉이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국제 시장’은 말 듣던 대로 누선을 자극했다. 첫 장면에 흰 나비가 나풀나풀 날며 화면을 채우자, “엄마, 흰나비!”하고 딸이 작은 탄성을 지르며 내 귀에 속삭였다. “그래! 흰나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딸과 나만이 아는 ‘흰나비 환상’이 있다.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삼십 여 년 전에 잃은 제 오빠와 아들 생각에 각각 젖어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다음 날 새벽, “혹시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하며 올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나도 흠칫 놀라 어떻게 알았느냐며 되물었다. 빨래터로 가는데 자꾸만 흰나비 한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오더니 빨래가 끝날 때까지 맴을 돌며 떠나지 않더란다. 집으로 돌아올 때 역시 앞서더니 대문을 들어서자, 흰 나비가 훨훨 날아가더라고. 하도 이상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아이가 늦었던 오빠와 올케는 유난히 우리 녀석을 귀여워했다. 피부가 하얗고 예쁘다며 살짝 꼬집기도 하고, 시장에 갈 때면 꼭 데리고 가서 맛있는 걸 사 먹여 데려오곤 했다. 아마도 오빠와 올케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려고 그랬나 보다며 간밤에 떠났다고 했다. 만 사년 이십일. 녀석은 백혈병이란 이름으로 그리도 짧은 생을 마감하고 훨훨 날아가 버렸다. 그 날부터 내겐 흰나비가 예사롭지 않다. 흰나비는 죽은 영혼의 은유요 부활의 상징이다. 그때 한 살 반밖에 되지 않았던 딸아이도 훗날 내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후로는 특별히 흰나비를 아낀다.
나는 얼른 흰나비 환상에서 깨어나 영화에 집중했다.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흘러 뺨을 적시고....... 여기저기서 조용히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딸은 물론, 여기서 태어난 손녀까지 계속 안경을 들어 올리며 눈물을 찍어낸다. 주인공이 얼마나 고생하고 힘든 삶을 살아왔나 하는 측면보다는 영화 전체에 흐르는 ‘정의 흐름’이 날 눈물지게 했다.
첫 장면에는 아버지가 가족을, 그 다음에는 오빠가 여동생을, 다음에는 동생이 형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엄마가 아들을, 그리고 형이 동생을...... 끊이지 않는 정의 사슬이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다. 뿐인가.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여동생과 오빠 사이에 흐르는 그 애끓는 정의 절규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정경이었다.
‘정’이란 우리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의 성정일 수 있지만, 정에 울고 정에 속는 우리네 인생을 따라올 이는 없지 싶다. “우리가 넘이가?” 하는 한마디에 정치 판도가 달라지는 게 아직도 현실이다. 허술하긴 해도 야박하지 않아서 좋은 게 정임을 어찌하랴.
밖에 나와서 보니, 딸도 손녀도 눈이 벌겋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감의 최상위는 설명이 필요 없는 ‘침묵 속의 공감’임을 알기에.
여성 삼대의 춘삼월 외출은 젖은 눈 엷은 미소로 마감했다. 정수리 위에 떴던 해도 어느 새 서산에 얹혀 엷은 미소를 보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하루가 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