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시작한 지 꼭 일 년만이다. 연습이 무섭긴 무섭다. 일마일도 헐떡대며 힘겨워하던 내가, 불가능으로 보였던 하프 마라톤도 한 번 뛰었다. 이제 다음 주면 메이저 대회인 LA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LA 마라톤 대회는 언덕이 많은 난코스인데다가 하프가 없어 나는 응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보는 것도 배우는 것이다. 마의 거리인 18.5마일 선에 모여 우리 러너스 클럽 단체 응원을 펼친다고 한다. 러너도, 응원팀도 마음을 단단히 재무장한다.
응원부대라 해서 연습마저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법. 오늘부터 섬머 타임 시작이라 한 시간이나 잠을 줄여야 한다. 새벽 두 시를 세 시로 바꾸라는데, 바꾸어둘 시계가 없어 전화기에 알람을 해놓고 잤다. 스마트 폰이 섬머 타임까지 맞추어 준다는 말은 들었지만, 조금 불안했다. 코치님께 만약을 위해 출발 전에 카톡을 보내 주십사하고 부탁을 했다. 자다 깨다하며 다섯 시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코치님으로부터 카톡도 들어왔다. 시계같이 정확하고 칼 같이 확실하다. 이런 분이 옆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게으름을 덜 피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코치님 덕분이다.
거의 반평생을 밤 형으로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람소리만 들으면 새벽 몇 시가 되었든 벌떡벌떡 일어난다. 그래서 모두들 달리기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하나보다. 사위는 고요한데, 한 시간을 앞당긴 탓인지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쌀쌀한 날씨도 이 삼십 분만 뛰면 땀에 흠뻑 젖는다. 오늘 훈련은 ‘가벼얍게’ 6마일만 뛴다고. 이제는 훈련도 연습도 모두 마무리 단계다.
상상만 해도 벌써 가슴이 설레고 대회 당일의 열기가 느껴진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는 짜릿한 기분. 그러면서도 연이어 오는 묘한 불안과 두려움. 헌팅톤 비치 마라톤 출발선에 섰을 때의 그 복잡다단한 심경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수많은 건각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는 그 기분은 뛰어본 사람만이 안다. 보도 위를 타닥타닥 울리는 발자국 소리들은 또 얼마나 경쾌한 합창인지. 하늘엔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응원해 주고, 바람은 기운을 모아 땀들을 식혀준다.
그런가 하면, 지상에선 우렁찬 밴드 음악과 줄지어 선 사람들의 아낌없는 박수가 러너들의 힘을 북돋아 준다. 뿐이랴.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달려가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와 건네주는 물, 물, 물. 감로수가 따로 없다. 말 그대로 생명수다. 살아오는 동안, 어느 한 순간에 이토록 천지인이 합심해서 보내주는 응원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오직 러너들뿐이다.
마라톤은 홀로 뛰는 외로운 경기이면서도 장외 선수와 함께 뛰는 즐거운 스포츠다. 그래서 모두 스스로 즐기는 고행이 아니던가. 모쪼록, 다가오는 LA 마라톤에서는 기록 향상은 물론이요 즐기면서 뛰는 기쁨도 함께 향유하기를 빌어본다.
오늘, 회장님 내외는 이런 마음을 모아 회원들에게 푸짐한 아침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누가 갖다 두었는지, 뛰는 중간 중간 길가에 놓여있던 물병과 간식들. 이 모두가 감동이다. 우리 러너들은 마음으로부터 보내주는 응원과 사랑의 손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내 개인의 영광을 떠나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마침, 아크로폴리스 타임즈를 읽다가 인용된 맹자의 좋은 글이 있어 덧붙인다. 마치, LA 마라톤을 앞두고 있는 모든 러너들에게 주는 금언 같아 더욱 감동적이다. 하늘이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는 일이 어찌 지체 높고 거룩한 일 뿐이랴.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이 ’맡겨진 큰 일‘이라 생각된다. 다시 한 번 모든 러너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 하늘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길 때에는 반드시 먼저 심지를 괴롭게 하며, 뼈와 근육을 수고롭게 하고,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며, 궁핍하게 한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을 막는다. 이는 참을성을 길러주고 부족한 점을 메워주려 함이다. (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