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이렇게 시작도는 김현승의 <플라타너스>란 시를 어떤 시보다 사랑한다. 특히, 제 3연에 나오는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함께 걸었다’에 이르면 가슴마저 아려온다. 아마도, 내 처지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리라.
내 나이 서른, 운명의 장난인지 신의 계획하심인지, 갑자기 네 명이던 식구가 두 명으로 줄었다. 그때 덩그러니 남은 건 한 살 반짜리 딸 하나뿐이었다. ‘고난의 행군’이라 할 것까진 없지만, 나는 삶의 길을 홀로서라도 계속 걸어가야만 했다. 그 날부터 딸은 나와 함께 먼 길을 걸어온 나의 플라타너스가 되었다.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그 사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여러 번 다녀갔다. 때로는 시원한 그늘로 나의 땀을 식혀주기도 했고, 더러는 어두운 그늘로 내 얼굴에 산그르메 같은 근심이 어리게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길은 시의 종장처럼,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세월은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며 참 크고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다. 어디 큰 추억뿐이랴. 조약돌 같은 소소한 일상도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기억으로 되돌아온다. 어쩌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일회성 인생의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그녀 나이 이제 서른 넷. 꼬마가 커서 아가씨가 되더니 이젠 저도 딸아이를 가진 엄마가 되었다. 새삼, 아득히 지나간 일이 어제런 듯 떠오르고,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플라타너스 시를 되뇌이게 된 것은 딸이 보내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체함을 여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곁에 다소곳이 붙어있던 딸아이가 갑자기 물어왔다. “엄마, 왜 나한테는 네버 메일이 안 와요?” 뜻하지 않는 질문에 얼른 답을 찾지 못해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미도 곧 편지 많이많이 받을 거야! 아마 착한 아이는 더 빨리 받을 걸?”
다음 날,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기프트샵에 들렸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즈음이라, 선물은 직접 주고 카드는 부치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아기자기 하고 예쁜 걸 좋아하는 아이라 헬로 키티 용품을 사고 카드 한 장을 골랐다. 우표도 장식 삼아 그림이 다른 걸로 여러 장 붙였다.
생애, 제 이름으로 된 첫편지를 받았을 때의 놀람과 기쁨의 표정이란! 세상에 그보다 더 흐뭇한 정경이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또 한참 흘러갔다. 이십 팔년이란 긴 세월이.......
그래, 나는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애한테는 내 마음을 전해준 일이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어 마음의 보석 상자에 간직되어 있었나 보다.
집 정리를 하다 우연히 열어본 어린 날의 사물함. 거기서 그녀는 파일함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그 날의 카드’를 발견했다.
아마도 그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겠지.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의 무게와 긴 추억의 통로를 떠올렸겠지. 그런 뒤, 제 블로그에 짧은 글을 올리고는 엄마한테 ‘리마인드’ 시켜주고 싶어서 보내 주었겠지.
딸애가 해묵은 카드를 발견하고 옛일에 잠겼듯이, 나도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며 혼잣말을 했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었지.” 어제 일은 과거로 흘러가고, 더 먼 어제 일은 ‘그래었었지!’하는 과거분사로 남는다.
가슴을 더 먹먹하게 했던 건, 예수님 못자국 같은 검은 홀드 구멍이었다. 그냥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홀드에 끼워 ‘고이 간직해 온’ 그 마음이 고마웠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내 딸 동미!
너도 추억을 아끼는구나! 너는 언제나 먼 길을 ‘나와 함께’ 걸어온 나의 플라타너스였지. 나는 다시 한 번, 플라타너스 시의 마지막 연을 읊조리며 딸을 위해 두 손을 모았다.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