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열 시. 골프 레슨 시간이다. 원래는 골프에 대한 흥미도 없거니와 시간이 따라주지 않아 골프 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살아왔다. 주 6일 풀타임 일을 하는 데다가, 주일이면 성당에서 주보 편집과 성가대 대원으로 봉사하던 터라 한가롭게 골프를 즐기며 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공허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내 앞에 놓여졌다. 몇 년 전에 성가대와 주보 편집일을 놓게 되고, 이 년 전엔 아이 교육까지 끝내게 된 덕분이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시간과 돈에 구애없이 나 하고 싶은대로 살게 된 셈이다.
시간의 효용성을 위해 시간표를 짰다. 일은 4일로 줄여 일순위로 잡아두고, 두 번 째 순위로 영작 공부를 하고 싶어 시티 칼리지에 등록을 했다. 4월 초에는 마라톤 클럽에 가입함으로써 주말 새벽 역시 알차게 보내게 되었다.
이만하면, 주어진 시간을 허송하며 보내진 않겠구나 하고 있던 차에 합창단 앨토 멤버로 프로포즈를 받게 되었다. 그것도 합창단 이사장 직에 있는 오랜 성당 친구로부터. 가 보니, 연습 장소가 가까울 뿐만 아니라 널찍하고 밝은 데다가, 지휘자가 바리톤 성악가에 실력도 있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 마음에 쏙 들었다. 팝스 코럴이라, 곡 선정도 다양해서 무척 흥미로웠다. 영작 클래스는 지적 충족을, 마라톤은 육체적 건강을, 합창은 정서적 만족을 줄 것이기 때문에 아주 밸런스가 맞는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내 일주일 스케쥴로는 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의 합창단 이사장이 골프 레슨을 건의해 왔다. 골프는 사회생활상 좋은 툴이 될 것이라고. 자기가 직접 도와주겠노라고. 알고보니 그녀는 프로 골퍼였다.
이 친구 같으면 내가 안심하고 배울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동했다. 우선, 내가 좀 감각이 떨어진다해도 이해해 줄 친구요, 철두철미한 성격이라 꼼꼼하게 잘 가르쳐 주리란 믿음이 갔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나이가 대수냐. 개인 레슨 여덟 번이면 대강 친다니, 열 여섯 번이면 어떻고 일 년 이 년 레슨 받으면 어떠랴. 때는 왔고, 시간도 기가 막히게 떨어진다. 월요일이면 오후 네 시까지 시간이 비어있는 날이다.
"OK! 나 우리 성당 시니어 여성 클럽에서 Top Ten 안에만 들게 해 줘! " 내 욕심은 거기까지. 앞으로 실력이 늘면 목표야 항상 상향 조정 되는 것. 골프 레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키가 작으니 아이언 8로 연습하자고 해서 시작한 게 오늘 열 세 번째 연습으로 돌입했다. 연습이 무섭긴 무서웠다. 공도 허탕칠 때가 있더니, 지금은 연습망 맞히는 건 기본이요, 목표 100 야드에 근접해 가고 있다. 따박따박 80야드 이상만 칠 수 있으면 필드에 나가 현장감각을 익히잔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지만, 이십 년 구력에 명색이 돈 받고 가르치는 프로 선생이다. 깎듯이 존경하고 그녀의 지침에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다. 까짓것! 남가주 전체도 아니고, 우리 성당 그것도 시니어 클럽에서 10등 안에 들겠다는 목표야 너무 소박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습 장소인 몬테벨로 골프장에 들어서자, 갑자기 골프 선생이 " 잠깐! 저건 보셔야 돼! 내려서 보고 오세요." 하며 차를 세운다. 멀건 호수만 보일 뿐, 눈에 들어오는 게 없는데 뭘 보고 오라는 거지 하고 두리번거리니 " 호수안에서 일 하는 사람 안 보여요?" 하고 차 안에서 소리친다. 그제서야 제주도 해녀 같은 복장을 하고 호수 안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 왔다. 호수에 빠진 공을 줍는 사람이다.
순간, 작가적 호기심이 동했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싫은 내색 없이 꼬박꼬박 대답해 준다.
이름은 Jack, 한 달에 한 번 작업, 3000개의 공을 건짐. 급료는 건진 공 수에 따라 오르 내림.
빠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건지는 사람도 있는 법. 직업도 가지가지다. 가만, 앞으로 필드에 나가면 종종 공을 빠뜨려줘야 저 사람도 먹고 사는 거 아냐. 필드에도 못 나가는 주제에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며 차에 올랐다.
지희선 선생님. 골프 입문 환영. 환영.
골프 치는 회원들 모두 모여 골프 회동 한번 합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