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2일 월요일 오후 네 시경, 학교 등록 관계로 김 목사님과 만나 일을 봤다. 여러가지로 많이 도와주신 분이라 식사라도 대접할까 했는데 차만 한 잔 마시고 가잔다. 알고 보니, 여섯시 삼십분부터 교육원에서 글마루 모임이 있다고. 그동안 시간이 맞지 않아, 한 번도 못 갔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같이 갔다.
정해정 회장이 화들짝 놀라며 반긴다. 평론가에 소설가인 황숙진씨와 이성렬 시인을 비롯하여 대부분 아는 얼굴이다. 반갑다. 특히, 한국에 있는 걸로 알고 있던 김동찬 시인과 소설가며 산악인인 신영철씨가 있어 무척 반가웠다. 글마루 모임은 이십 여 년 전부터 이어온 문학교실로, 돌아가신 고원 교수님이 열정을 쏟으신 모임이다. 비록 교수님은 돌아가셨지만, 글마루는 뜻 있는 몇몇 멤버들에 의해 잘 굴러가고 있다.
오늘 강의는 소설가 이용우가 맡아 진행을 했다. 고원 교수님 살아 계실 때, 2차로 '파이퍼스' 카페에 가면 이용우씨 단골 메뉴가 있었다. 고원 교수 돌아가시면, 자기가 강의할 거라고. 빙글빙글 웃으며 농조로 얘기했는데 진짜로 이용우씨가 소설 강의를 맡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말은 뱉고 볼 일인가. 십 여 년전에 들었던 그 얘기를 떠올리며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입이 달싹달싹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하는 시간, 점잖을 빼고 앉아 있었다.
강의 끝나면, 2차 가는 건 기본을 넘어 전통이다. 하지만, 오늘은 목사님과 같이 움직여야 하고, 주량이 만만찮은 사람들이 많아 간단한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문학을 논하고 일상의 소소한 얘기들로 밤새는 줄 모르고 떠들던 그 때가 참 좋았다.
입만 뻥긋하면 웃기는 김동찬 시인을 보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수려한 문장과 탄탄한 구성에 드라마틱한 글을 잘 쓰는 신영철 소설가의 입심 또한 만만찮다. 얘기에 빠져들어 밤이 이슥하도록 일어설 줄 모르는 게 다반사다. 이야기가 시작 되면 밤 열 두시는 이른 시간이요, 거의 한 시 반이나 되어야 일어섰다. 그래, 그때가 좋았다. 함께 갈 걸 그랬나? 내가 있었으면 분위기를 확 띄워주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누르고 집에 와서, 이 생각 저 생각 추억에 잠겨있는데 딸로부터 하이톤으로 낭보가 날아왔다.
기쁜 소식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금연이요 또 하나는 프로모션 보너스와 진급에 따른 획기적인 인컴 상승이란다. "와우!"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다. 사실, 2년 전에 가방에서 담배갑을 발견하곤 아연실색했다. '우리 딸이 담배를?' 우리 집엔 남동생이 잠깐 피웠을 뿐, 여자들은 바람결에 담배 냄새만 묻혀와도 질색하는 사람들이다.
"너, 담배 피워?" "아니..." 얼떨결에 아니라고 대답한 딸아이가 내 눈길을 피했다. "첫째, 아이한테 좋은 본이 안 된데이- 끊으레이-" 나는 더 이상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담배 문제를 이슈화하지도 않았다. 제 스스로 흡연이 안 좋은 걸 알고는 있을 터. 서로 그 문제를 두고 언쟁을 하고 싶지도 않고 언젠가는 스스로 끊겠지 하는 믿음도 한켠에 있었다.
올 초에 첫미사 시간 영성체 후, 나는 딸의 담배 문제를 놓고 청원기도를 짧게 드렸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기쁜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 편견이겠지만, 담배를 피우거나, 술에 쩔어 살거나, 몸에 타투를 하면 웬지 저질로 보인다. 다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나는 이 세 가지에 특히 민감하다.
요즘 세상에는 담배를 피우면 사회적으로 배척을 당한다. 왜 그런 대접을 받고 사나. 술은 가정 파괴의 주범이다. 폭력과 살인. 거기엔 술이란 매개체가 분노에 불을 지른 경우가 많다. 타투는 아무리 예술적 감각으로 그렸다 해도 예술은커녕 흉한 낙서같아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무튼, 3대 악(?) 중에 하나를 하고 있던 딸이 금연을 했다니 춤이라도 추고 싶다.
게다가, 회사 창립이래 25년만에 최고의 매상을 올려준 히트 상품이 딸의 손에서 나왔다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돈보다도 능력을 인정받고 신나게 일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딸이 바이어로 일하고 있는패션 컴퍼니 Hot Topics를 검색해 신상품을 훑어본다.
기쁘고 기쁜 날, 매일매일이 오늘만 같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