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같은 작가/이원택
의사 같은 작가 . 제목이 너무 거창한 거 같죠? 사실, 제가 이런 논술 제목 같은 얘기는 좀 약해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여담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달에 있었던 재미수필 문학가협회 출판기념회 때였습니다. 이원택 선생님께서 그 특유의 빙글거리는 웃음과 함께 저한테 은밀히 접근해 오셨습니다. 저는 무슨 비밀스런 얘기라도 하시려나 싶어 귀를 기울였죠. 그랬더니, 뜻밖에도 선생님 출판 기념회에서 작가 소개를 해 달라는 거에요. 제가 알기로는 주변에 아시는 분들도 많고 여성분들은 더더욱 많을 걸로 생각했는데 저한테 부탁을 하셔서 깜짝 놀랐죠. 사실, 마이크 공포증도 있고해서 거절할 생각으로 가벼운 농담을 던졌죠.
“제가 그대를 모르는데, 어찌 그대에 대해서 한 말씀을 올릴 수 있겠나이까?”
아, 그랬더니 주저없이 이런 농담으로 직구를 던지시는 거에요.
“그러면, 출판기념일 때까지 사귀면 되겠네?”
완전, 한방 맞았죠. 선생님의 천부적인 유머감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저는 파안대소 하면서 선생님의 부탁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작가소개보다 책을 읽고 난 뒤에 가볍게 제 느낌을 말씀드릴께요. 책이나 한 권 주세요.”하고는 책을 받아왔죠.
제 딴에는 ‘이건 홈웍이 아니라 완전 미숀이다’ 하는생각으로 하이라이트를 쳐가며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죠.
아, 그런데 또 한번의 반전이 온 겁니다. 출판 기념일 며칠 남기지 않고 전화를 주셔서 한다는 말씀이 이러시는 거에요.
“작품에 대한 평가는 김문희 선생께서 하기로 하고 제 친구 녀석이 <작가 같은 의사>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니까, 지선생은 <의사 같은 작가>에 대해서 한말씀 해주슈! 어려울 거 없어요. 그저 예쁜 여자 좋아하고, 부끄러움이 많다 하고… 에, 그것보다 한마디로 진국’이라고. 하하 ”
선생님은 웃으시지만 저는 얼마나 난감했겠어요.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할려고 열심히 책을 읽어왔는데......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도 "내가 그대를 모르는데, 그대가 진국인지 물을 탄 곰국인지 내 어이 알리요?"하고 농담으로 넘겨버렸죠.
하지만, 저는 그 순간 선생님의 또 한 면을 본 거죠. 천진난만한 선생님의 모습과 격식을 차리지 않는 소탈한 모습을 말입니다. 선생님은 정신과 의사로서 뿐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천부적으로 사람을 편하게 해주시는 성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그때부터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지요.
천부적인 유머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성정. 이 두 가지는 정신과 의사로서도 큰 덕목이 되겠지만, 수필가로서도 필요 충분한 조건이지요.
사실, 요즈음은 의사가 한 전문직 직업인으로서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것은 일반 사람들의 오해일 수도 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의사들의 인성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곳곳에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 중에서도 <의학과 문학>과의 접목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독서치료니 시치료니 하는 말을 여러분들도 들어보셨을 줄로 압니다.
알고보니, 선생님도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 오셨고 독서를 꾸준히 해 오셨더라구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문예반에서 활동도 하셨구요. 어찌보면, 의학도가 되기 전에 문학도의 길로 먼저 들어선 셈이죠.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의학이 ‘신체적인 부검’이라면 문학은 ‘심리적인 부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심리적인 부검을 이원택 선생님은 수필이란 창을 통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이 세세히 하시는 거죠. 사실, 수필은 문학 장르 중에서도 독자와 작가가 함께 하는 문학, 즉 같은 시간과 공간을 가장 가까이서 공유하는 현장문학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수필을 일러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정의 문학’이라고도 하구요.
성욕 자아론을 다룬 <만화경>이나 종교 자아론을 다룬 <요지경> , 그리고 자기 자아론을 다룬 <무아경>과 백일야몽 시리즈를 다룬 <혼미경 >이 부드러운 수필로 풀어썼기 때문에 의학서적보다는 훨씬 친밀감있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지요.
문학은 결국 ‘암호 해독’이란 말이 있습니다.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의학 수필 속에서 읽은 글인데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어떤 신혼부부이야기인데, 술을 좋아하는 신랑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는 밤이면 밤마다 고주망태가 되어 늦게 들어오는 거에요. 그런데 밤새 독수공방하며 지키고 있던 아내는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남편만 보면 혼절해버리는 거에요. 그때마다 남편은 화들짝 놀라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으로 달려갔대요. 그런데 신체부검을 해보고 과학적 데이터를 들여다봐도 이상이 없다는 거죠. 병명을 알 수 없어 마지막으로 정신과 의사한테로 보냈답니다. 병명을 모르면 다 정신과 의사한테로 보내는 모양이죠? 결국 그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심리를 해독해 냈답니다. “좀 빨리 들어오셔서 저랑 같이 있어 주세요.”라고요.
아내가 혼절할 때 응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달려가는 남편과 그 심리를 해독하여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는 의사.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전문성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을 읽어주는 ‘사랑’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의사와 독자의 마음을 알아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작가는 일맥상통하지요. 문학도 의학도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정상에 도달하기 힘든 여정입니다.
저는, 이원택 선생님께서 <작가 같은 의사>로서 성공하셨다면, 앞으로 남은 날들은 <의사 같은 작가>로서 수필가와 시인으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경아 시리즈를 좋아하시니, 다음 책 제목은 조만철 선생님께서 주신 <황홀경>인가요?
마지막으로 , <신비경>에 나오는 발문 한 자락을 인용하는 것으로 제 이야기를 끝낼까 합니다.
- 과학이 먼저냐, 문학이 먼저냐, 따질 필요도 없이 과학 안에 문학이 있고 문학 속에 과학이 있다. 자연과 인간은 한 뿌리에서 나왔고, 몸과 마음을 갈라놓을 수 없듯이 너와 나도 결국 한 통속일 수밖에 없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