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길을 따라오다 LA하이스쿨 앞을 지나게 되었다. 하교시간이라 왁자하니 떠들며 나오는 학생들과 픽업하러 온 스쿨버스들로 몹시 혼잡스러웠다. 앞 차를 따라 나도 속도를 줄이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팔청춘 딸아이들의 얼굴은 여름날 녹음처럼 싱그러웠고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녀석들은 야생마처럼 활기차 보였다. LA 하이스쿨은 이민 초기 시절, 내가 다녔던 어덜트 스쿨이라 ‘모교’처럼 애정이 가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까지 사랑스럽다. 새떼처럼 무리지어 나오는 아이들을 보니, 어덜트 스쿨 시절이 흑백 필름으로 되감겨 온다. 벌써 30년 가까운 이야기다.
매사에 서툴고 어리둥절하던 이민 초기시절, 한 일 년 정도 지나면 영어는 '도사’가 될 줄 알았다. 여기는 영어 공용인 본토요 미국 현지인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곳이 아닌가. 귀동냥을 해서라도 영어쯤이야 아이들 말대로 ‘피스 오브 케잌'이다. 엄마 말 듣고 말귀가 트였던 우리말처럼 영어도 생활 속에서 그렇게 배우면 될 거라 생각했다.
아무려나. 이민 천국의 나라, 미국. 그것도 날씨 좋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햇빛은 쨍쨍, 바닷물은 출렁.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다. 게다가 싱싱한 나이 서른. 무엇이 두려우랴. 라디오야, 텔레비젼이야 틀기만 하면 쏼라쏼라 영어 천국이요 그도 안 되면 헐리웃도 가깝겠다 쪼르르 달려가 영화 한 프로씩 떼면 될 터. 허센지 자신감인지 의기충천한 나를 보고 이민 생활 대선배이신 형부는 빙글빙글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한 번 있어 보라우. 십 년 있어도 공부 안 하면 영어가 나오나." 그 말도 귓등으로 흘러버렸다.
그런데 웬 걸? 일 년이 지나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은 웅성웅성하는 소음으로만 들릴 뿐 통 ‘히어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 MC들은 이야기 하면서 왜 그리도 많이 웃어대는지. 노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잡담 같이 얘기를 나누다가는 갑자기 까르르 웃거나 낄낄댄다. 즐기면서 일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한 마디라도 더 들어 보려고 용쓰는 내 모습은 뭐냐구. 사랑도 기술이라더니 영어도 ‘기술’일 줄이야. 그것도 ‘고급 기술’이라니. 결국, 나도 어덜트 스쿨 코스를 밟으며 제대로 영어를 한 번 배워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때 찾아갔던 곳이 집에서 제일 가까운 LA 하이스쿨 어덜트 클라스였다.
6단계 중에서 알파벳을 배우는 레벨 원을 넘어 레벨 투를 신청했다. 기초부터 철저히 배워보자는 심사였다. 교실 안에 들어서자, 오십 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데 완전히 인종 전시장이다. 백인, 흑인, 황인종까지 피부색도 갖가지요,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도 몇 개국 언어인지 마치 외계인 세계에 온 듯 정신마저 혼미하다. 과연 미국은 이름 그대로 ‘유나이티드 스테이트’였다. 시골 학교에서 전학 온 촌닭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하이 소프라노로 한국말 인사가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세요?”
한 눈에 봐도 성격이 명랑쾌활하게 보이는 여자였다. 그 옆에는 남편인 듯 얌전하게 생긴 남자분이 미소를 띠우며 서 있었다.
“아, 네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 있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좀 어설프게 대답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이라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미세스 유’라고 소개하고 연이어 남편을 ‘미스터 유’라며 인사를 시켰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듯 했지만,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다. 한국 사람은 우리 셋 뿐인 듯했다.
그러나 딱 한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한국사람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필리핀이나 월남 사람 같기도 한 까무잡잡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보고도 전혀 아는 척 하거나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만약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데서 만난 것도 귀한 인연이라며 분명 악수를 청할 터. 우리는 그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찌 하다 보니 그 ‘까무’씨가 우리 옆에 앉게 되었다. 여전히 그도 나도 말없이 공부만 했다. 노랑머리 여 선생님은 재치있게 가르치진 못해도 자기 의무에는 충실한 사람인 듯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까무’씨는 화장실을 가는지 담배를 피우러 가는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우리는 이때다 싶어 한국말로 재재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조용한 ‘미스터 유’는 두 수다쟁이 이야기에 간간이 미소 지으며 비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하고 있었다. 얘기 도중, 편한 자세로 바꾸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나는 ‘기이한’ 물건을 보고 말았다. 꺄악! 너무나 놀라 비명 같은 괴성을 질렀다.
“아니, 이거 <동아 사전 > 아냐?”
책과 노트를 가지런하게 포개놓은 ‘까무’씨 책상 위에는 <동아 사전>이 버젓이 놓여 있었다.
“어디? 어디?” 하며 ‘미세스 유’가 일어서려는 찰라, 언제 왔는지 ‘까무’씨가 빙그레 웃고 서 있었다.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 힐난하듯 물었다.
“아니, 한국분이면서 몇 달 동안이나 우리를 깜쪽 같이 속이셨어요?”
“뭐, 일부러 속인 건 아니고. 어덜트 스쿨에 오면서 한국말은 안 쓰기로 다짐하고 와서.........”
이때쯤 뒷머리를 긁적거릴 만도 한데 그는 상투적인 연기를 싫어하는 듯 두 손을 바지 포켓에 꽂은 채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아니, 그러면 <동아 사전>은 안 갖고 오셔야죠? 완전 범죄를 위해서라도.......”
‘미세스 유’가 한 마디 보탰다.
“나, 참. 완전히 범죄자 됐구먼. 허허. 내 언제 맥주 한 번 사리다.”
맥주 산다는 말에 우리는 금방 마음을 풀고 친구가 되었다. 사실 그 정도 쏘아붙였으면 됐다. 재미로 짐짓 화난 듯 더 쏘아붙였지만 그도 왜 그걸 모르겠는가. 속마음을 못 읽으면 진짜 한국 사람이 아니지.
그 이후, ‘까무’씨는 ‘미스터 전’이 되어 제대로 한국사람 행세를 했다. 볼링이 수준급이었던 그는 미안한 마음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종종 우리를 사토 볼링장으로 데려가곤 했다. 때때로 장난기가 발동하면, 나는 “어이! 동아 사전씨!”하고 놀려먹었다. 그러면 그도 맞장구를 치며 “그 놈의 <동아 사전> 때문에 그만.......”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일 년 남짓한 어덜트 스쿨을 수료한 후 우리는 헤어졌다. ‘미세스 유’부부하고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데 ‘미스터 전’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갔는지 깜깜 무소식이다. 우리의 삼십 대 이민 초기 시절은 <동아 사전> 한 권 때문에 고달픈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한바탕 웃으며 넘어갔다.
독자여, 요즈음의 내 영어 실력은 부디 묻지 마시라. 하지만, 어덜트 스쿨에서 잠깐 배운 그 실력으로도 베벌리 힐스의 스타들을 울리고 웃겼다는 사실 하나만은 기억해 주시길. 오늘 따라, 나와 이민 역사를 같이 한 내 <동아 사전>이 우리의 ‘까무’씨 소식을 궁금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