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친구에게 / 지희선 정애야! 막상 네 이름을 불러놓고 편지를 쓰려니 새삼 나에 대한 너의 우정이 생각나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구나.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만났으니 너와의 우정도 어언 50년이나 되었지? 너와 나는 정말 특별한 인연인가 봐. 헤어질 만하면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질 만하면 다시 만나게 되니 말이야. 하긴, 50년이란 세월은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고 꼬마 계집아이가 아줌마나 빠르면 할머니도 될 나이니 우리가 영원히 헤어질 뻔한 것도 무리가 아니지. 지금도 너는 이태리 밀라노에 살고 나는 미국 LA에서 사니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지 뭐냐. 너와의 우정은 순전히 너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고등학교 때, 나를 7년 만에 찾아내어 편지를 보내온 그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언제나 네가 나를 찾아내었었지. 찾아내는 방법도 가지가지였지. 어떤 때는 학교를 통해서 찾아내고, 어떤 때는 신문에 난 내 글을 보고 찾아내고, 어떤 때는 내 후배를 통해서 찾아내고, 이번에는 내 문학 사이트를 통해서 찾아내었잖아. “50년이란 그 긴 세월 동안......”이란 e-mail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구나. ‘세월’이란 단어를 쓸 정도로 우리는 늙어버렸고, 우리의 어린 시절은 먼 동화 같은 얘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 좀 울컥 했나 봐. 정애야! 친구란 ‘추억의 통로’를 함께 걸어 나온 사람들이라 생각해. 내가 “생각나?”하고 눈을 깜빡이며 물었을 때 “맞아! 그때 우리.......”하면서 바로 반응이 나오는 사람, 그게 바로 친구가 아닐까. 우리는 고목 같은 연륜에, 언제나 새 순 같은 파릇함마저 겸비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특별한 우정이라 할 수 있지 않겠니? 정애야! 넌 모를 거야. 네가 독일에서 이태리로 이사를 가고 내가 LA에서 Glendale로 이사를 간 뒤 몇 년간 소식이 끊겼을 때 내가 얼마나 너를 찾으려고 했는지. 독일을 떠나면서 이태리 새 주소를 적어 보내준 너의 마지막 엽서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너와도 끝이구나 싶었지. 그러면서도 ‘이번에는 내가 찾아야겠구나.’ 싶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 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내 노트 뒷장에 쓰여 있는 이태리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고 너무나 반가워서 바로 국제 전화를 넣었지. 그런데 전화 받은 외국분이 거긴 ‘부부가 살 수 없는 집’이라는 거야. 세상에! ‘부부가 살 수 없는 집’이라니. 상상도 못했던 답에 멍한 순간, 거기는 신부님들이 공부하는 ‘수도원’이라는 거 있지. 노트를 다시 보니, 네가 이사 간 밀라노가 아니라 ‘로마’였어. 원고 관계로 어느 신부님 주소를 받아 적어 놓았던 게 그제야 생각나더구나. 물론 내가 아는 신부님은 오래전에 로마를 떠났었고. 마침, 한국 신부님을 바꾸어 주시기에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혹시 ‘윤정애’란 사람을 찾게 되면 꼭 연락해 달라고 했지. 이번에는 내가 우정을 보여줄 차례라고. 그 분도 한 달 있으면 공부가 끝나 로마를 떠날 거라며 함께 안타까워 하셨지. 그리고 두 달 뒤,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생면부지의 날 찾아 그 신부님께서 LA로 오신 거야. 그것도 ‘루르드의 기적의 샘’에서 ‘성수’까지 한 병 담아가지고 말이야. 그 분은 내 머리 위에 성수를 뿌려주시고 축복의 기도를 해 주시기 위해 우정 오신 거였어. 친구를 꼭 다시 찾기 바란다며 ‘표표히’ 떠나시는 뒷모습은 마치 바랑을 메고 길 떠나는 큰스님 같았어. 그 분 성함을 물어보러 달려가다가 멈춘 것도, 아마 그런 느낌 때문이었을 거야. 나를 위해 로마에서 LA까지 날아오신 그 신부님의 정성을 보더라도 나 역시 무언가 해야 했어. 나는 당장 15일 묵주기도에 들어가기로 했지. ‘사랑은 결심’이라는 말, 알지? 우정도 결심이더군. 그런데 정애야! 기도문을 펼친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그 기도문 책 속에 바로 너의 마지막 엽서가 들어 있는 거야! 이 기적 같은 일을 넌 믿을 수 있겠니? ‘루르드의 성수’가 절름발이를 낫게 하고 병든 자를 온전케 하는 기적뿐만 아니라, 친구를 다시 찾고자 하는 내 간절한 마음에도 기적을 일으켜준 거지. 정애야! 그때가 바로 내가 너에게 첫 전화를 걸었던 날이야.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어렵게 만났는데 또 헤어져 몇 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넌 다시 인터넷을 통해 날 찾아내었지. 정애야! 미국으로 내가 떠나올 때 너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너를 못 본 지도 27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하지만, ‘진정한 친구’란 ‘만나든 만나지 않든’ 마음에 새겨진 벗이라고 생각해. 너도 나도 그런 마음이라는 거 믿고 살자꾸나. 정애야! 사랑한다. -영원한 벗 희선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