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1주일을 하루 앞둔 3월 4일 토요일 아침. 아몬드 꽃비를 맞으며 꽃길을 달렸습니다. 바다처럼 깊고 푸른 하늘엔 새털구름 둥둥 떠 가고 지상엔 흩날리는 꽃잎들! 달리는 러너들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응원을 보내주는 이, 또 있을까요? 

   탄성과 환호를 그토록 질러본 것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걸 본 것도, 얼마나 오랫만이었던지!  꽃의 도시, 프레즈노 근교 Sanger에서 열린 Blossom Trail Run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달리기가 끝난 후, 유서깊은 도시며 한인 이민 역사 기념각이 있는 '리들리'에 들렀습니다. 미국의 소도시에 세워져 있는 <독립문>과 독립 유공자들의 기념비를 보며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하였습니다. 
   아, 거기에 서서 태극기 높이 흔들며  힘차게 '만세삼창'을 외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다둑이고 조용히 옷깃을 여미며 묵념을 올렸을 뿐입니다. 그래요. 소리 없는 묵념이, 때로는 부르짖는 외침보다 몇 배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체득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촛불보다 귀한 것은 촛불을 함께 드는 마음이요 그 간절한 바램입니다. 태극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촛불 아래서 몰래몰래 숨어 태극기를 그렸던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떠올리면 눈물이 납니다.
   촛불과 태극기가 대치를 이루다니요! 우리 선조들은 촛불과 태극기를 함께 사랑하였습니다. 촛불과 태극기는 대치가 아니라, 상생해야 할 우리 민족의 의미 깊은 메타포입니다.
   태극기를 보고 깜짝 놀라 촛불 든 사람이 돌아서 가고, 태극기 든 사람이 분노에 차 촛불 든 이에게 눈을 부라리는 조국의 슬픈 2017년 삼일절 풍경! 아픔으로 흔들리고 있는 조국을 떠올리며, 한 작은 여인이 미국의 소도시에 세워진 이 <독립문>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울분의 눈물이요, 슬픔의 눈물입니다.

  

    '삼일절 하루만이라도, 우린 왜 다같이 태극기 높이 들고 만세삼창을 할 수 없었나!'
    '이 날 하루만이라도, 우린 왜 애국가를 제창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없었나!'
    '도대체, 촛불을 주도하는 리더는 누구며 뒤늦게 태극기를 쥐어주며 사람들을 거리로 쫓은 리더는 또 누군가!'
    '왜, 두 사람은 3.1절이 오기 전에 만나서 이런 '사랑의 밀담'을 나눌 수 없었나!'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삼일절 하루만이라도 우리는 목놓아 울었을 것 아닌가!'

    '2002년도에 전국민을 하나로 응집했던 그 붉은 물결은 다 어디로 빠져 나갔단 말인가!' 
    '우린 왜 서로 사랑하질 않나...'
    '우린 왜 서로 사랑할 수가 없나...'

   소리없는 마음 속 외침이 방울진 눈물로 이어집니다. '광야'의 시인 이육사처럼 목놓아 울고 싶었습니다.
   아들을 잃고 소리쳐 울던 이스라엘 어머니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울렸던 것처럼, 대한의 한 작은 어머니가 조국을 위해 소리쳐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감정은 감정을 불러와 더욱 물결치게  합니다. 북받치는 감정에 서러움까지 겹칩니다.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울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 일일까요? 울고 싶은 마음은 속으로 잦아들고, 그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조용히 기도를 올릴 뿐이었습니다. 

  

   '선조들의 목숨을 담보로 되찾은 조국을, 그릇된 이념과 분노로 반토막 내어서는 안됩니다, 주님!'
   눈물이 솟구칩니다.
   '주님! 용서하소서!'
   한 방울, 어떤 수분이 골을 타고 흐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또 한 방울의 '성수'가 연이어 볼을 적십니다. 
   

   미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없습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청원하며 조용히 성호를 그었습니다. 아무도 본 이는 없었습니다. 함께 간 동료들도 기념비에 적힌 글을 읽느라 열심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 위에 계신 오직 한 분. 그분만은 보셨겠지요.
   한줄기 바람이 그분 숨결인 양 스쳐가자, 나란히 걸려있던 태극기와 성조기가 사뿐 흔들리다 제 자리로 돌아 갔습니다. 아, 모든 것이 '사뿐히' 흔들리다 제 자리로 돌아 갔으면 합니다. 아니, 돌아 왔으면 합니다. 모두의 따스한 가슴 속으로. 

   우리 대한의 아들 딸들은 위지동이전에도 기록되어 있듯, 일찌기 가무를 즐기고 정이 많았던 민족이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넘이가?"하면 다 통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참 뜨겁게 끓어 올랐던 마음이 평정되고, 고요로운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평온해진 마음으로 기념비에 새겨진 얼굴 하나 하나에 따스한 미소를 보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행적,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시다 가셨나 눈여겨 보았습니다. 우린 옷깃을 여미고 겸손된 마음으로 이 분들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합니다. 

   뿐이겠습니까! 고된 노동을 치면서도 오직 조국의 광복만을 기리며 기금을 마련해 준, 하얀 옷의 무명씨 후원자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조국을 품에 안고 살다 가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올리고 천천히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도산 안창호 선생이 머물렀던 호텔과 거리를 지나, 한번쯤은 들렸음직한 고풍스런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다시 한 번 그 분들을 떠올렸습니다. 왠지, 식탁에 함께 계시는 듯한 따스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몸과 마음을 의탁했던 제 2의 고향, 미국 소도시 리들리! 이 리들리시가 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통영시와 자매 도시라는 사실이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저는 오늘부터 이 리들리시를 내 마음의 고향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 삼일절 기념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리들리시의 삼일절 기념행사에 꼭 한 번 참석해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몬드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아름다운 꽃길을  달리고, 무디어진 마음에  다시 한 번 조국애의 불을 지펴준 오늘의 여정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행복하고 감격에 찬 하루. 집으로 돌아오는 찻속에서 제 마음은 다시 한 번 울렁거렸습니다. 왜냐구요? 가슴 속에 자꾸만 이런 외침이 북소리를 울리며 되감겨 오는 것이었습니다.
 

    '촛불도 끄고, 태극기도 내려놓고 오직 사랑하는 마음 하나 밝혀들고 우리 다함께 꽃길을 달려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리고 그 꽃길 끝자락에 의연히 서 있는 리들리 <독립문> 앞에서 우리 다함께 목이 쉬도록 만세삼창을 외쳐 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래요. 그 날이 오기를, 이 먼 이국땅에 사는 키 작은 한 여인이 소망하고 있겠습니다. 

   멋진 초대장이라 생각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