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 해, 신새벽이 열렸다.
새벽 다섯 시. 바람이 제법 맵다. 완전무장을 하고 길을 나선다.
러너스 클럽의 새 해 해돋이. 미국에서 33년 살았어도 해돋이를 위해 새벽길을 나서기는 처음이다.
역시 게으른 사람은 단체에 속할 필요가 있다.
기분 좋은 강제성에 좋은 습관을 키워나갈 수 있고 서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곱시 십분에 해가 뜰 거라 한다.
그리피스 팍 산 정상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오른다.
사위는 고요하고 도시는 곤한 잠에 빠져있다.
손전등에 의지하여 산정에 오르니, 민족학교 사물놀이 패와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다.
민족 학교 리더가 애국가를 부르자고 소리친다.
이국 산정에서 부르는 애국가. 자못 비장한 마음이 들고, 매운 바람 속에서도 힘차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시큰하다.
연이어 만세 삼창까지 외쳤다. 일심동체. 여긴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고,우익 좌익도 없다.
오직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의 발전을 기원하는 '대한의 아들 딸'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희구하는 건 오직 이것 뿐. 이 순수한 마음으로 우린 통일을 열망한다.
희부염한 새벽 하늘은 서늘한 푸른 기운이 돌아 신비롭기까지 하다.
둥둥둥. 북소리가 흥을 돋우는 가운데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드디어 해가 머리부터 디밀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성급한 사람들은 너나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아이폰으로 사진찍기에 바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숨 죽인 채 동녘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간절한 모습에 함께 기도라도 올려주고 싶다.
드디어- 해가 떴다. 말간 새 해가 떴다. "와아-" 또 한 번의 함성이 산을 흔든다.
마치 황금색 보름달 같다. 사물놀이 패의 징, 장구, 북, 괭과리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한 판을 펼친다.
북소리는 더욱 우렁차고 괭과리 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다.
이 순간만은 오직 희망으로 가슴이 벅찰 뿐이다.
사진을 찍으려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한 번 만세 삼창이 터진다.
모두가 벙글이요 방실이다. 누군가의 따스한 마음이 가래떡까지 마련해 두었다.
정 나눔! 이것이 우리 고유의 한민족 심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벅찬 가슴을 안고 갔던 길 되짚어 내려온다.
자, 다시 시작이다. 신발끈을 질끈 고쳐맨다.
길은 열려 있다. 숲도, 산도 가슴을 열며 밟고 가라 한다.
가다 보면, 곧은 길도 있고 굽은 길도 있을 테지. 그리고 함께 갈 때도 있고 혼자 갈 때도 있을 테지.
그러나 우리는 가야만 한다. 내일을 향해- 희망을 향해-
벅찬 가슴 안고 내려오니, 런클의 봉사팀은 새 해 새아침이라고 떡국에 빈대떡까지 푸짐하게 한 상 차려낸다.
고마운 사람들.
새 해 해돋이에 한 상 가득 받았으니 이젠 열심히 뛸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