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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속을 봐야지, 겉을 보면 못쓰느니라."
   이 말은 누누히 들어왔고, 익히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됨됨이를 따지기 전에 외양부터 훑어보는 습성이 있다. 특히, 못 생긴 사람일수록 인물을 더 따진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프랑스 제일의 샹송 가수 '에디뜨 삐아프'가 아닌가 싶다. 150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퀭한 눈 두 개만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기이한 모습의 그녀는 인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열등의식의 발로인지, 미를 추구하는 본능의 선택인지, 그녀는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 일류 피아니스트라도 인물이 받쳐주지 않으면 반주자로 기용하지 않았다. 딱 한번 예외가 있었는데, 그 푸대접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예 노래 연습할 맛이 안난다고 커튼으로 얼굴을 가리고 피아노를 치라면서 으르렁거렸다. 이브 몽땅을 위시해서 멋지고 잘 생긴 사람만 골라 사귀다가, 매번 버림을 받고 피눈물을 수없이 흘렸어도 이 '인물병'에서 그녀는 헤어날 줄 몰랐다.
   나 역시 못 생긴 것을 자인이라도 하듯 인물 타령이 심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도 연기보다 일단 인물이 받쳐줘야 계속 볼 맛이 나고, 친구 연애담도 상대방이 미남이라야 들어줄 맛이 난다. 그리이스 싱어 '야니'도 그 음악적 실력보다는, 그의 잘 생긴 얼굴과 미소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열광한다. 뿐인가, 아무리 좋은 글도 작가가 시원찮게 생겼으면 글에 대한 감흥마저 삭감되어 버린다. 한번 더 읽고 싶었던 책도, '차라리 사진을 내지나 말든지...'하는 원망과 함께 책을 덮어버린다. 내가 '무서록'을 유독 사랑하는 것도, 작가 이태준의 깊은 눈매와 부드러운 턱선에 매료됐기 때문이요, '잃어버린 동화' 역시 우하 박문하가 남성미 물씬 풍기는 인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젊었던 날엔 이 '인물병'이 더 심했었다. 같은 프로포즈라도, 못 생긴 사람이 하는 것과 잘 생긴 사람이 하는 것에 따라 나의 거절 방법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베리아 삭풍'이요, 다른 하나는 '봄바람의 미풍'이다. 같은 나를 두고 이렇게 상반된 별명으로 불리운 것은 나의 이중적 성격보다는, 인물에 의한 나의 개인적 잣대 때문이다. 이는 오로지 내 눈에 들어오는 상대의 '인물풍경'이 아름다우냐 아니냐에 따라서 나의 대접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두고, 어머니도 "인물 뜯어먹고 살래? 정신이 바로 박혀야지"하시면서 종종 책망하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습니다아-"하며 웃어 넘겼다.  
   이 '인물병'에 일격을 가한 것은 어머니였다. 내 첫선 상대자로,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골라온 것이 '곰보'였다. 그것도 빡빡 얽은 곰보였다. 그는 외삼촌의 대학 수제자로 그야말로 될대로 된 사람이요, 일류회사에 다니는 실력자라고 했다. 외삼촌의 얼굴을 봐서라도 선보러 나가기는 나가야 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한 그때의 내 표정은 아마도 '안동 하회탈' 이었을 게다. 한 가지 방법은 내가 퇴짜를 먹으면 그만이었다. 옷을 '논다니'처럼 좀 날리게 입을까 하다가 그만 뒀다. '키 작고, 안경 낀' 내 모습은 소설에서도 즐겨 묘사되는 영락없이 못 생긴 여자의 전형이 아닌가. 즐거운 마음으로 근처 다방으로 나갔다. 얼굴만 빼면,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성격과 호탕한 웃음까지 별로 나무랄 데 없는 청년이었다. 못생긴 여자가 예의까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런데, 그는 존경하는 교수님의 천거요, 그의 조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합격점을 주고 있었다. 낭패라더니 그런 낭패가 없었다. 어렵게 거절하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첫선 본 일을 잊을 만했을 때, 어머니께서 두 번 째 사람을 디밀었다. 그때만 해도, 막연히 연애결혼을 꿈꾸던 나에게는 선이라는 것 자체가 탐탁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에 대한 인사로 나갔을 뿐이다. 인간성도 좋고 인물이 좋다는 바람에 마지못해 나가긴 했어도 큰 기대는 걸지 않았었다. "정신만 바로 박히면 됐지..."하는 내면의 잣대로 재는 어머니와 "그래도 보기 좋은 떡이..."하며 외면의 잣대를 갖다대는 나와 같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물도 인물이지만, 벌떡 일어나서 나를 맞이하는 그의 키가 얼마나 작은지, 5피트가 될까말까한 나와 나란했다. 내가 그리던 '인물 풍경화'하고는 거리가 영 멀었다. 인물과 풍경의 아름다운 조화. 그 구도 속에선 큰 키도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었다. 굳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키를 감안하신다면 어머니가 이럴 수는 없지  싶었다.                        
   그 날, 나는 또 한번 웃음 반, 울음 반의 하회탈 얼굴이 되어 돌아왔다. 그제사 어머니도 웃으시며 실토를 하셨다. "하긴, 키가 작아도 너무 작지? 세탁소에서 그 사람 바지 찾으려면, 신경 쓸 것 없이 남자 바지 중에서 제일 짧은 바지 가져오면 된다더라." "아니, 그러면 엄마는 나한테 그런 걸 알면서 내보냈단 말이에요?" 어머니와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 폭소와 함께, 두 번째 선도 내 젊은 날의 즐거운 소묘 한 점을 남긴 채 날아갔다. 마치, 아롱아롱 무지개 빛을 내며 가볍게 날아가는 비누방울처럼.    
   그때 만약, 겉보다는 내면에 치중하는 신중함이 있었던들 내 인생은 판이하게 달라졌으리라. 유수 기업의 사장 사모님이나 공학 박사의 아내가 되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가정법이 없는 법. 인물 타령하다가, '뜬구름을 잡는 사람'을 만난 것도 다 자승자박이요, 자업자득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다만, 인생을 되물리고 싶을 때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젊은 날의 소묘 몇 점이 어김없이 떠오를 뿐이다.
   문제는, 인물 타령하다가 인생을 다 망쳐버린 우를 범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너무 심하다고 '에디뜨 삐아프'를 타박했던 나 자신이 무색하다. 지금 내 나이가 몇 살인가. 옛말을 빌리면, 하늘의 뜻을 능히 헤아리고도 남는 나이다. 그런데도, 이 '인물병'엔 약도 없는지 회복의 기미가 영 보이지 않는다. 개도, 아기도 예뻐야 한번 더 쓰다듬어주고 싶어지니 난들 어쩌겠나. 선을 보던 그 날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허우대 멀쩡하고 피아노를 잘 치던 긴 손가락의 세 번 째 남자를 또 선택할 것만 같다. 왜냐하면, '인생의 쓴맛'을 보기 전의 선택일 테니까.  
   떫은 땡감이 단감의 깊은 맛을 언제나 알꼬.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하지만, 멋있고 잘 생긴 남자에게 관심이 가는 건 아직도 내가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산 징표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나의 '인물 타령'은 내 존재의 재확인이요, 유일한 생기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딸에게만은 이렇게 말해주어야겠지?
   "사람은 속을 봐야지, 겉을 보면 못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