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난 그네에 앉아 출렁이고 있다. 새벽 달리기 연습에 강아지 미미를 데리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눈빛이 애처로워 데리고 왔다.
단체 연습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 반대 방향으로 미미랑 가볍게 3마일만 뛰고 왔다. 일행을 만나리라 생각했지만, 서 코치 인도로 다른 곳으로 간 모양이다.
골프 코스를 돌고 굽은 길을 감돌아 오니 멀리 일행들이 간식 벤치에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가서 인사라도 할려고 오는 중 그네를 보았다.
한 명이 핸디캡 그네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이고 오른 쪽 두 개의 그네는 임자 없는 나룻배마냥 매달려 있다. 바람도 흔들지 않는 그네에 생각이 머물자, 짧은 글감이 떠올랐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보니, 벤치에 있던 일행이 벌써 흩어지고 있다. 달려가 불러볼까 하다가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을 불러세워 무엇하랴 싶어 그네에 걸터 앉았다.
발을 굴러 그네를 띄운다. 천천히 요람처럼 흔들리며 앞뒤로 오가는 그네. 시이소오처럼 올라갔다 내려오고 내려왔다간 올라간다. 흔들리며 흔들리며 피는 도종환 시인의 꽃처럼 흔들리는 그네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열정과 냉정, 사랑과 미움, 희망과 절망, 저 높은 곳을 향한 이상과 이 땅에 발목 잡힌 현실 사이에서 늘 출렁이는 자신을 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선택 앞에서 출렁이며 망설였는가. 그리고 출렁임 속에 흔들리며 선택했던 일들은 또 우리를 얼마나 다른 먼 곳으로 데려다 놓았던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도 결국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이 길인가, 저 길인가. 언제나 상반된 두 개의 길은 우리의 발길을 재촉했고 선택은 우리의 마음을 충동질 했다.
그네를 구른다. 조금 더 높이 오른다. 그리고 더 낮게 내려온다. 출렁인다. 흔들린다. 미동도 없던 구름도 따라 움직인다. 내 생각도 따라 왔다갔다 한다.
그런 내 맘을 아는 것일까. 내 주위를 맴돌던 미미가 나를 빤히 쳐다 본다. 안아서 가슴에 꼭 품어준다. 따뜻하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도 외로울 때는 큰 위안이 된다. 그래서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신분상승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네를 멈춘다. 흔들리던 모든 것이 멈춘다. 출렁이던 것도 멈추고 흐르던 것도 멈춘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는 주일 아침. 고요가 자리한다. 평화가 고요의 옆에 와 앉는다. 다시 원점이다. 모든 게 원위치로 돌아가 제 구도를 잡는다. 변한 게 없다.
열정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감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사랑이 멈춘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 기다림의 자세도 여지껏 해 왔듯이 그대로 지속될 터이다. 생명이 있는 한, 생활은 계속되는 것이기에. 기다림은 내 운명이고 숙명이다. 이제 남은 기다림은 오직 하나 뿐. 그 경건한 기다림을 위하여 옷깃을 여민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왁자하니 소란을 피우며 그네 쪽으로 달려와 매달린다. 그네를 잡지 못한 아이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가벼운 미소와 눈짓으로 내 앉았던 그네를 타라고 권하며 일어선다. 자리란 늘 양보하기 위해 마련된 것. 차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차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