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 /  지 희선



    나는 뜻하지 않게 경인년 새 해 새 날을 시집 한 권과 더불어 열게 되었다. 신정 연휴를 맞아 책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푸르름’ 출판사에서 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111선>이란 시집이었다. 읽은 건지 안 읽은 건지 알쏭달쏭해 슬슬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먼저 눈에 띠인 건 안도현의 ‘그대에게 가고 싶다’라는 시였다.
  
   -해 뜨는 아침에는/그대에게 가고 싶다/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나도 금방 헹구어 낸 햇살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      
    
   새 해 새 아침이란 정서와 맞물렸음인가. ‘금방 헹구어 낸 햇살’이란 말이 눈에 잡힐 듯 신선하게 들렸다. 그야말로 시가 내게로 왔다. 눈은 어느 새 그 다음 줄을 훑고 있었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우리가 함께 만들어야할 신천지/우리가 더불어 세워야할 날/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만들어야할 신천지’는 어디이며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할 날’은 또 언제일까. 그건 다름 아닌, 내가 발붙이고 사는 ‘여기’ 그리고 ‘오늘 바로 지금’이 아니던가. 비단 나뿐이랴. 어디에 무엇을 하며 살든 땅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함께 만들어가야 할 신천지가 있고 더불어 세워야할 날이 있음을 시인은 일깨워 준다. 백호는 언감생심, 착한 한 마리 양이 되기도 쉽지는 않을 성 싶다. 그런데, ‘더불어 세워야할 날’이 이렇게 걸리는 건 무슨 연유일까. 나도 모르게 벽에 걸려 있는 ‘더불어 사는 삶’이란 편액에 눈이 갔다.
   이민 짐에 고이 싸왔던 붓글씨 한 점. 써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무슨 의식을 치루듯 경건한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죽음 다음으로 먼 나라로만 여겼던 미국이기에, 언제 다시 오랴 싶어 나는 조국을 기억할만한 상징적인 정표를 하나 가져가고 싶었다. 고심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이었다. 내 이민 생활의 좌우명이라고나 할까. 어디에 살든지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민 생활은 놀이도 낭만도 아니었다. 몇 년이 흐르자, 퇴색된 초심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도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새 해 새 날이 스물일곱 번이나 다녀갔다. 어느 새 나는 평범 속에 안주해 버리려는 아낙이 되었고, 몸도 마음도 더불어 살리라던 호기와 열정은 낙엽 따라 가버렸다. 다시 봄은 온다지만, 가을은 길고 오는 봄은 짧았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챘음인가. 시집 속에 있는 김종해 시인은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시로 슬며시 나를 흔든다.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내 앞에 있다니. 이래서, 시는 삶의 위안이 된다고 정호승 시인은 말한 것일까.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어디 한 두 번이랴/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오늘 일을 잠시라도/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2010년, 경인년의 새 해 새 아침에 백호의 등을 타고 붓글씨를 써 주신 H교수님의 혼령이 달려온 것일까. 시인의 영혼이 실려온 것일까. 홀로 피는 ‘고립의 아름다움’보다는 다 함께 피는 ‘군집의 아름다움’이 고개를 디민다. 한 그루의 관상수가 되기보다 길을 내어주는 숲이 되는 것도 새 해 결심으로 나쁠 거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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