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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았습니다.

집에서는 말을 잘 하는데, 밖에만 나가면 일체 입을 열지 않는 '수빈'이란 여자 아이 이야기였습니다.

전문 교육자와 상담인들이 모여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전을 찾기 시작합니다.

전문가들은 수빈이가 '부끄러워서' 말을 안 한다고 단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 애 가슴에 무언가 깊은 상처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언젠가 일선교사 수기에서 '말문 닫은 순희'를 읽었던 게 다시 떠오릅니다.

전에 내가 읽었던 글의 주인공 '순희'는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이 하도 괴롭혀서 순희는 선생님께 말했지요. 친구들이 너무 괴롭힌다고.

그랬더니, 선생님은 친구들 하고 잘 놀지 않고 고자질이나 한다며 오히려 순희를 꾸짖고는 내보냈다는군요.

그때부터 순희는 완전히 말문을 닫았습니다.  아니, 아예 마음 문을 닫아버렸던 거죠.

출석 이름을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고, 학교에서는 '말 못하는 아이'로 통했지요.

이학년 담임선생님도 순희는 으레 말 못하는 아이려니 하고 그냥 흘려 버렸답니다.

그것을 사범학교 졸업 후, 첫 발령을 받고 온 3학년 담임선생님이 눈물겨운 애정과 사랑으로 말문을 열게 했던 겁니다.

집에서도 말을 하나 안 하나 알아보려고, 순희집 담벼락 밑에 숨어 엿듣다가 순희의 목소리를 듣고 감격에 떨던 선생님.

무엇이, 어떤 동기가 저 어린 아이의 말문을 닫게 했을까 싶어 선생님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여름 방학 때 휴가도 반납하고 순희를 자기 자취방에서 돌보게 됩니다.

순희가 한마디 말을 하지 않건만, 그녀는 책을 읽어주고, 손톱 발톱 다 깎아주면서 사랑만 쏟아 붓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사랑을 주면서 기다리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사랑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은 '기다려주는 것'이라던가요.

하루, 이틀, 사흘. 큰 성과 없이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곧 헤어질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순희 손을 잡고 5일장을 찾아 나섭니다.

선생님은 예쁜 드레스를 골라 순희 몸에 대어 봅니다.

이날따라 순희가 더욱 사랑스럽고 예뻐 보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짠해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굳게 다물고 있던 순희의 입술이 달싹였습니다.

선생님은 너무나 놀라 "뭐라 했지? 순희야! 뭐라 했지? 한번만 더 말해봐!" 하며 연거푸 물었습니다.

선생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순희가 처음 나직이 뱉은 말은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선생님은 순희를 와락 끌어안고 "고맙다, 고맙다!"를 연발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순희는 더 큰소리로 섧게 울었습니다.

'고자질쟁이'로 만들어버린 일학년 선생님이 생각나 울고 이토록 큰 사랑을 주시는 선생님이 고마워서 울고.

순희는 오래도록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 오랜 울음이 순희의 말문을 열면서 마음문도 열었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이 되면 순희한테서 어김없이 카드가 날아옵니다.

그 속에는 순희의 마음이 단 한 줄로 적혀 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꾸밈없는 이 한 줄의 인사가 올해도 선생님의 눈가를 적시며 첫 발령지 시골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하게 합니다.

한 편의 동화 같이 아름다운 이 글은 소설이 아닌 어느 여선생의 현장수기였습니다.

나 역시 교사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 글의 여운이 남달리 오래 간지도 모릅니다.

말문 닫은 '수빈'이가 전문가의 상담과 협력으로 말문을 연 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와 사랑일 것입니다. 가정이나, 학교나.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도 어머니도 아이의 양육을 맡고 있는 사람은 그 아이를 위한 '영혼의 정원사'라고 말입니다.

아이의 일생에서 한 토막을 맡아 기르는 일이라니!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또한 얼마나 어려운 직무인지요.

아마도 선생과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중에 가장 성스러운 직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사람으로 하여 가장 빛나는 시절을 갖기도 하고 어두운 시절을 갖기도 하니까요.

나를 스쳐간 아이들과 제 딸을 생각하면서 저도 조용히 반성해 봅니다.

나와 함께 생활했던 그 시간들이 그들에게 과연 복된 시간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요즘 따라 '직무유기'를 하는 선생과 어머니가 너무나 많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 사람은 말문을 열게 하고 한 사람은 말문을 닫게 합니다.

한 사람은 웃게 하고 한 사람은 울게 합니다.

이렇듯, 세상에는 두 종류의 선생과 어머니가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말문을 닫게 하지는 않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