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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동 문학은 동심에 호소하는 문학이다.

  

   아동문학은 인간 본성을 일깨워주는 문학으로서 동심에 호소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독자의 대상도 아이나 어른 관계없이 온 인류로 확장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그 자체가 동심의 소유자요, 어른에게 있어 아동 시대는 일생을 두고 그리는 동경의 세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읽혀질 수 있는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 소파 방정환 선생도 아동 문학은 아동만을 위해 쓴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아동성'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갈파했다.

   다만, 소재 선택과 표현기법에 연령별 차이가 있을 지 모르지만, 밝음을 향해 나아가는 향일성 삶에야 아이나 어른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가장 인간적인 문학인 아동 문학은 이 향일성 삶을 위한 구름판이 되어야 하고, 징금다리가 되어야할 것이다. 여기에 아동 문학의 필요성과 효용성이 대두된다. 어린 시절 들었던 한 편의 동화가 가슴에 남아 일생을 함께 살아가고, 어린 날 불렀던 한 곡의 동요가 어른이 되어서도 혀끝에 맴돌며, 눈 감고 암송했던 한 편의 동시가 눈시울을 적실 때 그 마음 텃밭은 얼마나 비옥할 것인가.

   동심을 되찾는 일은 자연을 되살리려는 녹색운동보다 훨씬 귀하고 시급하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모든 사회적 병폐가 인간의 본성인 동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교도소에 제일 먼저 넣어주어야할 책은 성서가 아니라 한 권의 동화책일지도 모른다. 회개를 촉구하는 눈물어린 기도보다는 오히려 어릴 시절 불렀던 동요 한 곡이 수인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다. 아동 문학은 인간 본심을 가장 쉽고 빠르게 두드리는 사랑의 문학이기에 '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아니, '문학의 상록수'라고나 할까. 우리네 삶이란 동심을 따라 살던 삶에서 동심을 떠난 삶을 살다가, 다시금 '인간 본심의 원형질'인 동심으로 되돌아 오는 과정이다.

   결국, 우리 아동 문학이 해야할 일은 동심이란 대문 앞에 호롱불을 거는 일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동심;이란 문패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지나쳐간 길손도 제 왼편 가슴을 쓸며 되돌아 오게 하는 일이다. 오늘, 나눔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고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동 문학은 '동심으로의 초대'다. 일차적으로는 아동을 독자로 초청하지만, 아동의 세계를 그리워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초대다. 초대장을, 아기자기한 이야기(동화)로 꾸밀 것인가, 아니면 노래 한 곡(동요)으로 대신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한 편의 시(동시)로 꾸밀 것인가는 초대하는 이의 마음이다. 독자는 이 즐거운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된다. 응하는 이도 수동적(듣기, 읽기)으로 응할 것인가, 능동적(쓰기, 말하기)으로  응할 것인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2. 동시와 동요의 효용성

 

   마음밭에 뿌리를 내린 아동 문학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해 본다. 이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비유에 불과하지만, 뿌리는 동요요, 둥치는 동시요, 바람에 서걱이며 들려주는 잎의 이야기는 동화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오늘은 주어진 주제에 따라 잠시 동시와 동요의 효용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효용성'이라 하니 좀 딱딱하고 어려운데 동시를 읽음으로써 얻는 유익함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동시는 맑고 깨끗하고, 단순하고 새롭다. 그리고 쉬운 말로 씌어지기에 이해가 빠르고 감동 또한 즉석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여운은 일생을 따라 다닌다. 어렸을 때 좋은 동시를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부드럽고 원만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관찰력이 생겨 자연과 사물에 대한 관심은 물론, 사람에 대한 관심 또한 남달리 크다. 관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이해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크진다. 이기보다는 이타주의에 흐르고 제 마음에 평화가 있으니 남에게도 그 평화를 나누어줄 여유가 생긴다.

   동심의 세계를 그리는 문학이기에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고 상상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동시에, 교육성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은근하고 부드러우며 익살스럽다. 학교가라며 윽박지르기보다도 교문을 치다르게 한 것은 '문교부 장관 노래'라며 즐겨 불렀던 "학교 종이 땡땡 친다..."라는 동요였다.

   눈이 오는 날은 강아지도 좋아 날뛰고 사람의 마음도 썰매 타는 아이처럼 즐거워진다. 동시, 혹은 동요 한 곡은 삭풍 부는 우리 삶에 이런 눈꽃송이 역할을 한다. 되읊을수록 정겹고 따스하고 고운 이미지가 되살아나며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켜 준다. 아름다운 감성을 되살려주고 리듬이나 운율울 통해 모국어의 아름다움도 일깨워 준다. 동요를 부르는 표정은 달덩이처럼 밝고 눈을 지긋이 감고 외우는 동시 한 수는 우리를 작은 철인으로 만든다. 이 철인은 세상을 고민하지 않고 세상을 음미한다. 알 수 없는 암호가 난무하는 세상, 동시는 물음표를 던져주기도 하고 느낌표를 주기도 한다. 때로는 마침표를 찍기 전에 쉼표부터 한 번 찍고 숨고르기를 하라고 타이르기도 한다. 화랑에 자주 들리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한 편의 풍경화를 그려주는 것도 동시요, 음악회에 가지 못한 우리를 위해 가난한 연인이 되어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것도 동요다.

   언젠가 시골에서 조카가 가져온 흙 묻은 감자를 씻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것은 '자주 감자'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자주 감자. 그 감자가 왜 나를 울렸을까. 그건 나를  초등학교 3학년 교실로 되돌려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채 스무 자도 되지 않는 이 짧은 동시에 곡이 붙은 '자주 감자' 노래. '자주 감자' 노래를 함께 불렀던 초등학교 친구들이 생각나고 패달을 밟을 때마다 붕붕 바람 소리를 내던 풍금과 나른한 봄날의  오후 햇살을 밟으며 노래를 가르쳐 주던 담임 선생님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그리고 그 동무들...... 감자 씻던 손을 멈추고 나는 몇 번이고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지금도 '자주 감자'를 부르면 내 가장 빛났던 시절이 생각나고 근심 걱정 없던 그 때가 떠오른다.  어릴 때 배웠던 동요 한 곡은 이렇듯 가슴에 남아 순수했던 옛날로  우리를  데려다 주기도 한다.  

   내가 아는 심교수는 화가 나면 자기가 아는 동요란 동요는 다 부른다고 한다. 그러면 화도 풀리고 마음도 밝아져 곧 불쾌했던 일을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일에 매달릴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이토록 경제적이고 빠른 치유법이 있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상담학을 전공한 박사도 학문적 이론보다는 동요로 마음을 다스린다니 동요는 바로 힐링 음악이 아닌가. 나도 실제로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30분 넘게 갇힌  적이 있었는데 그때 템포 빠른 동요를 부르면서 마음을 안정시킨 적이 있다.  자유방담식으로 얘기해도 이렇듯 동시나 동요나 주는 유익함은  끝이 없다. 

 

3. 때 묻지 않는 동심에 꽃수를 놓아주자.

 

   우리가 동시 한 편을 외운 게 언제이며 동요 한 곡을 불러본 게 언제던가.  그 보다 금쪽 같다는 내 새끼에게 동시 한 편 들려주고 동요 한 곡 가르쳐준 적은 또 언제던가. 돈을 세던 손으로 동요 테잎 하나 틀어주고 유치원 선생에게나 맡겨 놓았던 아이의 정서교육도 부모가 되찾아 와야 한다. 아이는 자라고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만나면 치고 박고 싸우고 그것도 모자라면 총으로 쏘아 죽여버리는 한인 청소년들의 실태와 걸핏하면 가정 폭력범으로 잡혀가는 가장들의 딱한 모습을 보면서 언제까지 혀만 차고 있을 것인가. 어린 날 때를 놓쳐버린 인성교육이 오늘의 험한 세상을 만들어 버렸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좋은 옷을 사 입히고 성장탕을 먹여 키를 늘여주고 혀끝을 잘라 영어를 잘 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인성교육이 아닐까. 옛날 얘기 해 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어느 새 커 버려 이제는 해 주고 싶어도 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찌 세월의 무정함에만 책임전가를 할 수 있겠는가.

   오늘밤은 우리 자신부터 마음밭을 갈아 잃어버린 동화를 찾아내고 별을 보며 아이들의 때 묻지 않는 동심에 한 뜸 한 뜸  꽃수를 놓아주자.

 

4. 좋은 동시 나누기

 

- 별을 보았다/깊은 밤/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이준관의 '별 하나')

- 들 길 위에 혼자 앉은/ 민들레/그 옆에 또 혼자 앉은/제비꽃/그것은/디딤돌/나비 혼자/딛/고/가/는/봄의/디딤돌

  (이준관의 '나비')

- 사탕 열 여섯 개를/너희들 넷이서 나누어 먹으면/몇 개씩 먹지?/....../세 개요/다시 한 번 생각해 봐/....../세 개요/딱!/굴밤 한대/네 개는/엄마 드리려고요/엄마는/ 나를/와락 끌어 안으시더니/우신다

  (김교현의 '나눗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