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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도 저물어 가고 조석으로 바람이 차다. 새벽 달리기 연습을 나갈 때도 긴 바지를 입을까 짧은 바지를 입을까 하고 잠시 망설이게 된다.
  마침, 일전에 허리 야광 밸트에 이어 이번에는 다양한 색상의 목 스카프가 나왔다. 여러 가지 색상 중에서 칼라풀한 색상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주저없이 그 스카프를 집어 들었다.
  레인보우처럼 다양한 색깔이 섞여 있어 어떤 티셔츠 하고도 어울릴 것같았다. 제각기 고유의 색깔을 띠고 바둑판처럼 네모 반듯반듯한 모습이 ‘다양성’의 아름다움과 ‘어울림’의 화두를 던진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색상을 가지고 있다. 원색처럼 강렬한 색도 있고 파스텔톤처럼 부드러운 색도 있다. 강렬한 색은 개성이 강해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확실한 믿음을 주기도 한다. 
  신호등의 빨강, 노랑, 파랑은 제 고유의 원색으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또렷이 제시해 준다. 만약, 부드러움이 좋아 희미한 파스텔 톤으로 신호등 색깔을 정했다면 어떻게 될까.
안개 낀 밤이나 낯선 곳에서는 낭패를 보지 않을까.
  아무리 강렬한 원색이라도 언제든지 부드러움과 섞일 여백은 가지고 있다. 흰색 한 방울만 떨어뜨려줘도 이내 부드러워진다. 연 핑크가 되고, 연노랑이 되고, 연파랑이 된다. 
이 한 방울의 흰색 물감!
  나는 감히 ‘사랑’이란 단어를 붙이고 싶다. ‘사랑’은 부드러움 중에서도 가장 말랑말랑한 거라 생각 된다. 특히, 인간 관계에서의 이 흰 색 한 방울의 힘은 대단하다. 한 마디의 부드러운 말, 슬쩍 묻는 안부 한 마디, 툭 치고 가는  어줍잖은 행동 하나, 엷은 미소, 농담 한 마디......  ‘흰색 한 방울’의 행위는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일찍이 이 흰색 한 방울의 힘을 믿었기에 ‘도도하고 건방진 남자’를 선호했던 기억이 있다. 아웃사이더의 고독함을 알기에. 개성 강한 원색을 파스텔 톤으로 바꿀 자신이 있기에. 지금도 나는 모두에게 친절한 ‘젠틀맨’을 내 남자로 선호하지 않으며 ‘지극히 여성적인’ 여인을 마음의 벗으로 삼지 않는다. 
  바른 말 잘 하는 나도 어찌 보면 원색에 가깝다. 누군가 나에게 와서 흰 색 한 방울만 떨어뜨려주면 나는 ‘미풍’이 될 터이다. 하지만, 내가 원색이라 하여 거부감을 일으키거나 피한다면 찔러도 피가 날 것 같지 않는 ‘삭풍’으로 나는 그에게 기억될 것이다. 나는 똑 같은 나일 뿐인데. 
  첫인상만으로 삭풍 취급을 받기 쉽상인 나도 파스텔 톤의 부드러움을 사랑한다. 눈과 마음을 평안으로 이끄는 부드러움을 어찌 거부하랴. 
  나는 봄날의 연초록과 연노랑을 사랑한다. 여리디 여린 잎을 사랑하고 완전한 노랑물이 들기 전의 산수유를 사랑한다.
연푸른 하늘을 사랑하고 옅은 갈색으로 물든 낙엽을 사랑한다. 
  특히, 리더의 제 1 자질로 꼽는 것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우유부당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내적인 강함은 있되, 모두를 두루두루 감싸 안는 부드러움이다. ‘똑똑한’ 엄마보다 ‘따뜻한’ 엄마가 되기를 꿈 꾸는 것도 아이에게 ‘좋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가끔, 파스텔 톤적인 부드러움이 타고난 천성인지 혹은 학습된 처세술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위선적 인간이나 내시형 인간상을 볼 때면 이 의심은 더욱 증폭된다. 
  이런 사람 중에는 내적인 허약함이나 남의 평가를 두려워 하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조금 섭섭하더라도 ‘원색의 한 방울’을 넣어줄 필요가 있다. 
  한 방울의 원색과 섞임으로 유약함을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프 러브’가 필요한 순간이다. 피하거나 비난하기 보다 때로는 따끔한 충고 한마디가 더 유익할 수 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상대방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해도 충고 방법이 잘못 되어 비난조로 들리면 상처 받기가 쉽다. 안타까워서 한마디 해 주려다 우정마저 금이 가게 된다. 역시 애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진정성이 나온다고 본다. 
  목 스카프를 다시 본다. 우리네 오색보를 닮았다. 모든 색상이 제 빛깔을 잃지 않고도 잘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오방색 우리 오색보. 사방이 열린 오색보는 매듭이 없어 모두를 아우른다. 
  내가 산 목 스카프도 둥근 모양에 질감이 부드러워 마음대로 형태를 바꿀 수 있다. 어떻게 내가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패션을 구사할 수 있다. 새벽 찬 공기를 피하기 위해 산 목 스카프. 밤에 하고 자면 목감기 예방도 된다고 파는 이가 전해 주었다.
  오늘 첫 시도로 목까지 올라오는 주황색 티셔츠 위로 V자 터틀 넥 패션으로 모양을 내 봤다. 뛰는 동안 모양이 흐트러질까 봐 눈에 보일 듯 말듯 자그마한 진주 꽃 브로치로 V자 포인트 끝을 살짝 눌러 주었다. 단색의 심플함에 다양한 색무늬로 꾸며진 목 스카프를 두르니 그럴 듯했다. 
  미학적 아름다움이란 ‘통일 속의 변화’라 했다. 모든 패션의 제 1원칙이 아닐까 싶다. 까만 벨벳 원피스에 실버 앤틱 브로치 하나를 단다든지, 진갈색 양복 안에 연미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줄무늬 넥타이로 액센트를 주는 일. 이 모두가 우리 눈을 호강시켜 주는 패션 감각이다. 
  컬러풀한 스판 천 조각에 채 1분도 걸리지 않고 드르륵 박았을 이 목도리가 잊고 있던 여심을 자극한다. ‘흠, 보기에 나쁘지 않네?’ 혼자 흐뭇해 하며 거울 앞에서 미소 지었다. 
  캘리포니아 따가운 햇살과 마른 바람에 주름살이 쪼글쪼글 해도 거울 앞에서 홀로 해 보는 패션 쇼는 즐겁기만 하다. 단돈 $10불에 산 목 스카프로 멋도 부리고 이렇게 수필 한 꼭지 사유도 할 수 있으니 이 아니 기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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