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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을 맞으며 걷는 이른 아침의 산책은 언제나 내게 많은 궁리를 하게 한다. 침잠된 어둠을 벗어나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나는 간밤의 세월을 생각하고 밝아오는 오늘을 궁리한다.
궁리(窮理)란 무엇인가. 사물 별개의 도리(道理)를 밝혀내고, 그 입장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던가.
밤사이 내 입장은 어떠했고, 비 오고 바람 부는 산책길 그 강변에는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첫새벽 가시덤불을 헤집고 얼굴을 내민 나팔꽃의 그 청초함은 어이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허망함인가.
풀잎에 맺힌 영롱한 아침이슬이 한갓 바람에 덧없이 스러져야 하는 까닭은 무엇이고, 물 고인 이랑을 벗어나 떠오르는 햇살에 몸을 뒤틀며 죽어가는 지렁이의 처절함은 그 무엇 때문인가.
 
가슴 벅찬 그것들의 환희와 애련한 그것들의 모습을 나는 진정 잊을 수가 없다. 황홀하고 비감한 그것들의 생과 종말은, 산책길 내내 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 길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삶 속에 그것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허무하게 살다 가는 것일까.
이런 애달픈 내 궁리들은 어느 날 비로소 끝을 맺었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사무치던 화두(話頭)에 나는 마침내 답을 얻은 것이다.
꽃은 피기 위해 시들고, 영롱한 아침이슬은 생명의 기()를 부르고 끝내 스러져갔다. 지렁이는 뜨거운 햇살에 스스로 몸을 사르며 한 점 거름을 남겼다.
그것은 숭고한 생의 자태요, 만물을 이롭게 하는 소신공양의 장렬함이었다. 그것은 생존의 몸짓이요, 순환(循環)의 몸부림이었다. 바람조차 비조차 그런 세월을 도왔다.
 
순환이란 면면히 이어지는 사물의 역사성을 말함이다. 밀어냄의 궁리이고, 받아들임의 도리이다. 장강(長江)의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고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것처럼 그것들은 순환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그것이 바로 삶이고 역사였던 것이다.
다만 느끼지 못했을 뿐, 어쩌면 그것들과 나는 일찍이 한통속이 되어 갖은 궁리와 조화(調和) 속에 그 도리를 함께 했을 것이다. 산책길의 내 온갖 자취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오늘도 궁리 속에 새벽길을 걷고 있다. 내 한 삶이 순환 속에 묻히고 그 도리 속에 내가 가고 있다. 덧없어도 내키지 않아도 정녕 가야하는 그 길은 바로 삶의 길인 것이다. 아무리 궁리를 거듭해도 그것은 결코 역린(逆鱗)일 수는 없다. 자연의 이법(理法)인 까닭이다.
 
살아도 죽어도 / 그것은 이미 내 몸이 아니네 / 앉아도 서도 그것은 벌써 내 뜻이 아니네.’
 
지은 이 알 수 없는 어느 고시(古詩) 처럼 말이다.  (2012년 한국수필 작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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