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발 특급. 좌석을 찾아가니 옆자리의 손님은 이미 와 있었다. 삼십을 훨씬 넘은 공무원풍의 신사. 조간신문을 펴들고 있었다.

묵중한 태도에 나는 우선 같은 자리에 앉은 동행으로서 다행을 느꼈다. 적어도 여러 시간 같이 가는 동행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일 때는 정신적 불행을 맛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신문을 보다가는 접어놓고 머리를 뒤로 기대고 눈을 감는다. 남에게는 일체 무관심 하는 것은 어쩌면 예의일 수도 있다. 귀찮은 이야기를 걸어오는 사람으로 해서 내 사색이나 내 아름다운 공상을 방해 당하는 일이 없으니 또한 좋지 않은가. 나는 집에서는 잘 읽지도 않는 신문을 보다가, 책을 꺼내 보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이런 인사쯤 있어도 좋겠지만, 서로가 다 그다지 그런 얘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창 쪽 자리라 식당엘 갈 때 또는 화장실에 갈 때, 말도 아닌 소리─ “조금 실례…” 하는 소리를 내는 둥 마는 둥 하면 그는 다리를 움츠려 길을 비켜주고… 두 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 우리는 말없이 그러면서도 아무런 불편이나 불쾌감 없이 같이 앉아 있었다.

삼랑진에서 나는 차를 내렸다. 진주행 차로 옮겨 탔다. 2등엔 빈자리가 많기에 좋은 데로 골라 앉았다. 내 옆자리에 한 젊은 여성이 와 앉는다. 얼핏 보니 얼굴이 환한 색이다. 연분홍 블라우스가 한결 그 얼굴을 밝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다행을 느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추한 손님과 같이 한 것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의 코, 그의 눈, 그의 얼굴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것 같았다. 나는 민망한 듯 그 여자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 한 10분, 그는 나의 가는 곳을 물었고, 갈아타야 하는 곳에서는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을 걱정해 주었다. 다행스런 그의 말, 그의 인정은 환한 살구꽃 같은 그의 얼굴과 잘도 조화되는 듯했다.

서로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얘기했고, 봄이 다 왔다는 얘기, 어디서는 꽃이 피었더라는 얘기, 도무지 기차가 심심치 않고 유쾌했다.

내가 내리는 곳까지 약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나는 그 여자에게 한 마디 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꼭 환하게 핀 살구꽃 같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좀처럼 입에서 나오지가 않았다. 잘못하면 과장된 찬사로 들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4월 초순 경부선 어디서는 마을의 살구꽃을 보았는데 여기도 그런 것이 보이면 창 밖으로 그 꽃을 가리키며 “꼭 당신이 저 꽃 같은 생각이 듭니다.”고 한 마디 해 주려고 아무리 살펴도 살구꽃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꽃나무를 심지 않는 농촌의 사정이 딱하기도 했지만 심심한 나는 하고 싶던 그 말 한 마디를 못한 채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차를 내렸다.

여섯 시간 가까이 같이 가도 말 없는 동행과 한 시간을 가도 더없이 정다워지는 동행. 나그네 길은 역시 생각할 일, 즐거운 일들이 많은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