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토요일. 그러지 않아도 바쁜 토요일인데 발렌타인즈 데이까지 겹쳐 더욱 바쁘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이벤트로 상대방을 끊임없이 감동시킨다. 사. 오 십년 함께 산 사람들도 한 사람과 영원히 사는 게 좀 지루하지 않느냐고 농담삼아 물어보면,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뛴다. 한결같이 'Every Day is New Day'란다.
그 날이 그 날인 우리네 삶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 건 젊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눈 감고 사는 남편이나 소식 하나 없는 옛사랑들은 모두 내 '로맨틱한 사랑' 목록에서 빠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주고 받고 표현하면서 사는 외국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사랑 표현에 무슨 나이가 필요 있으며, 애정 표현에 무슨 변명이 필요하랴. 사랑하면 '이유'가 먼저 떠오르는 게 아니라, '방법'이 먼저 생긴다. 오 제이 심슨 재판으로 유명한 변호사 밥 샤피로는 아내가 나비를 좋아하는 걸 알고, 이번 발렌타인스 데이엔 아예 나비떼를 구경시켜 주려고 허스트 캐슬 쪽에 호텔을 예약했다고 한다. 행복해 하는 샤피로 아내의 표정을 보니 내가 더 즐겁다.
모든 일이란, 할 수 없는 이유가 아홉 가지요, 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라고 한다. 이 한 가지 때문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진취적인 삶을 살아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가 이유와 변명이 많은 남자다.
왜 'Do It!' 하지 않을까. 젊은 애들 흉내를 내면 어디 아프기라도 하는가. 윤리에 억눌린 자아를 마음 깊이 쟁여두었다가, 이런 날 핑계삼아 안부 한 번 묻는 게 그리도 지탄받을 일인가. 이제는 모두 꽃의 향기가 아니라, 잎의 온기로 살아가는 연륜들이 아닌가. 너무 미국식인가.
오늘 같은 날은 사랑에 대한 주개념도 확장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패기만만하고 활기 있는 남자, 불가능에 주저하지 않고 가능성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가 좋다. 어디 남자 뿐이랴. 여자라도 그런 친구가 좋다. 에너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일에 흥미 있어 하고, 조그만 축일도 아껴가며 즐길 줄 아는 로맨티스트는 진정 꿈 속의 이야기런가.
여자들이 가끔 이런 하소연을 하면, 남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성토한다. 그러면, 여자가 먼저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건 조잡하고 비겁한 남자의 직무유기다. 엎드려 절 받고 싶은 여자는 세상에 없다. 차라리 안 받고 말지, 하는 게 여자들의 오기고 자존심이다.
남자는 능동, 여자는 수동. 남자는 해 주면서 만족을 느끼고, 여자는 받으면서 만족을 느낀다. 이건 지식도 아니고 보편적인 상식이다. 여자는 선물을 받거나 기념일에 해 주는 이벤트를 통해서 자기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한다. 사랑의 확인. 남자에겐 귀찮기만 한 일이 여자에겐 삶의 원천이고 생명수임을 어쩌랴. 때문에, 받는 물건에 흥미를 느끼는 게 아니라, 잊지않고 챙겨주는 그 마음에 감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동한 여자들이 받기만 하고 끝날까? 천만의 말씀이다. 감동에 젖은 여자는 계산없이 더 큰 사랑으로 되돌려 준다. 남자들은 왜 이런 것을 모를까. 우리 여자들은 말한다. "남자들은 바보"라고. 바보 아닌 남자랑 살고 싶은 게 여자들의 꿈이다.
이런 얘기를 한 번 했더니, 남편님 반성은커녕 분기탱천하여 "그러면, 그런 남자 찾아가면 될 거 아냐?"하고 대성일갈한다. 우는 애 기분을 만족시켜 주는 게 아니라, 운다고 굴밤 한 대 더 먹이는 격이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데, 과연 책임 질 수 있는 말일까. 정말 찾아 가면 어떨지, 그때 표정을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다. 억지 소리를 들은 이후로는 아예 말을 말자하고 '굳게' 결심했다.
세월은 어떤 '축일'도 없이 참 심심하게 잘도 흘러간다. 감동도 이벤트도 없이 살아온 게 아예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엎드려 절 받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싫다. 가슴이 없으면 머리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도대체 목 위에 얹혀있는 머리는 소리값 없이 모양새만 갖추기 위해 있는 '첫소리 이응'이란 말인가. 도대체 나이 타령만 하고 쓸 생각을 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떻게 일일이 가르쳐 주나.
내가 아는 미스터 강은 해마다 어김없이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다.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나는 감동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아내에게 꽃을 보낼 수 있느냐고. 참 자상하기도 하다면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랬더니, "형수님! 그게 아닙니다. 저는 아예 단골 꽃집에다 아내 명단을 올려놓고, 나대신 보내주라고 십 년치 꽃값을 선불로 줬습니다. 우리 남자들은 날짜 개념이 없어요. 그런 기념일만 세고 있는 여자들 비위를 어떻게 맞춰줍니까. 그래서 제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지요. 하하." 그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런 아이디어라도 귀엽다. 그를 두고 성의가 있니 없니 하고 따진다면 그런 꽃마저 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다. 그렇다.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주면 여자는 이내 감동한다.
오래 전, 우리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행복해 보이는 친구가 하던 푸념이 생각난다. "도대체, 감동이 있어야 살지!" 생활의 감동! 그건 돈만으로도 살 수 없다는 걸 그때 느꼈다.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못 훔쳐오는 건 또 우리 여자들의 잘못일 수도 있다. 이래저래 감동 있는 삶을 살기가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딸에게 꽃을 보내게 되었다. 보이 프렌드가 없어, 일류 멋쟁이 아가씨들만 모여 일하는 패션 컴퍼니에서 꽃 한 송이도 못 받고 있을까봐 안스러워 보내주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딸도 어김없이 내 직장으로 꽃을 보내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정서를 이해한다.
작년에는 양란 위주로 꾸며 보내주더니, 올해는 연핑크 튜울립을 주재료로 한 멋진 꽃장식을 보내왔다. 나보다 동료들이 예쁘다며 더 환호한다. 꽃을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 몇 장을 찍어 보내 주었다. 해마다 발렌타인즈 데이만 되면 딸과 주고 받는 우리의 연례행사다.
일 년 중 기념해야할 축일이 많기도 하건만, 그러려니하고 덤덤하게 지낸 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어느 해 발렌타인즈 데이에 자신의 엑스레이 사진을 부인 죠앤에게 보내며, "훔쳐간 내 심장(Heart)을 돌려주오"라고 한 폴 뉴먼의 익살이 그립다. 역시 헐리웃 잉꼬부부다운 유머다.
이벤트 없는 삶은 감동이 없는 삶이다. 감동없는 삶이 무슨 향기가 나랴. 축일이나 휴일이 오면 더 쓸쓸해진다. 비단, 나만 이런 감상에 젖는 것일까. 친구의 충고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꿈에서 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이가 들어가도 식지 않는 이 소녀적 감상을 어떻게 주체해야 하는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내 목 위에 얹혀 있는 머리도 소리값도 없이 모양새만 갖추고 있는 '첫소리 이응'인가 보다. 피장파장. Same sam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