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수요일 저녁 여덟 시. 연말 연초를 기해, 연 3주째 빠진 월요 골프 레슨을 오늘에야 받았다. 사실, 매주 월요일 쉰다고 해 봐야 일 하러 가지 않을 뿐, 여전히 바쁘게 지낸다.
여섯 시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들며 조간 신문을 읽고 청소나 빨래를 열 시 이전에 끝낸다. 그러곤 오전 열 시, 골프 레슨을 받고 혼자 남아 연습공 100개를 치고 와서는 점심을 먹는다. 이때쯤이면 대개 오후 두 시가 된다. 네 시까지는 자유시간. 네 시가 되면 슬슬 학교갈 준비를 한다. 네 시 반부터 수업을 시작해서 밤 열시가 되면 끝난다. 집에 오면 열 시 사십 분 정도. 보통 열 두 시에 잠이 든다. 남들은 언제 그걸 다 하고 글까지 쓰느냐며 놀란다. 하지만, 스케쥴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별로 바쁜 줄 모르고 지낸다. 아무리 바빠도 좋아하면 짬을 낼 수 있는 시간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방학을 할 땐, 남아도는 저녁 시간에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배워볼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학기 공부가 워낙 힘에 부쳐 좀 쉬고 싶었다. 대신, 머리를 식힐 겸 해서 골프 연습이나 더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늦게 시작한 주제에 가르쳐도 희망이 없으면 골프 선생이 얼마나 힘이 빠질까. 일단, 목표점은 있어야 되니, 우리 성당 여자 시니어 클럽에서만이라도 탑 10에 들고 싶다고 했다. 일 이년 안에는 가능하다며 희망을 준다.
나를 가르쳐주는 허프로는 자기 제자에 대한 애정도 강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무엇이든지 잘 하고 싶단다. 돈도 잘 벌고 살림도 잘 살고. 그녀는 정말 그렇게 살고 있다. 이십 년 전에 골프를 시작할 때도 '이왕 치는 거, 잘 치자!' 싶어 정말 열심히 쳤다고 한다. 내친 김에, 골프 티칭 프로그램도 끝내버렸다.
언젠가는 골프 어린이 장학 교실도 열 거란다. 그 꿈을 향해, 비지니스 우먼으로서의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며 함께 팀을 이룰 수 있는 멤버들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는 게 벌써 수 년 째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 나는 딸이나 손녀를 위해서 개인 레슨을 시킬 때는 돈을 더 주더라도 기술과 인격(정신력)을 겸비한 완전 프로를 택한다.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분의 정신과 삶을 함께 배우게 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기술만 뛰어난 사람의 교만을 나는 경멸한다.
진정한 프로는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들은 겸손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숭고한 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어찌 고개 숙여지지 않으리. 골프에 관심조차 없던 내가 한 번 배워보자고 마음을 낸 것도, 허프로에 대한 믿음과 치열한 프로 정신 때문이다.
나는 안다. 그녀가 돈을 위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얻기 위해 가르친다는 것을. 그런 마음을 알기에,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그녀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싶다. 기술이 아니라, 그녀가 추구하는 삶을 배우고 싶다. 깊이와 넓이,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과 추진력까지. 그리고 가끔은 그녀가 놓치거나 흘리고 가는 것을 주워 주고 싶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면 어떠랴. 내가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그녀는 저멀리 가 있는 것을. 결국, 멋진 만남이란 서로 상생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한번쯤 더 빠져도 될 법한데 안된다며 내일 일본 출장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시간을 내주었다. 오늘은 풀스윙의 세세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내 폼이 시원찮으면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긴 시간을 두고 내공을 쌓아온 그녀의 폼은 정말 멋진 예술품이다. 조금은 도도하고 건방진 태도, 그러면서도 흔들림 없이 탄탄한 버팀. 한 방에 날리곤 공을 응시하고 있는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만족스런 포만감에 짓는 환한 미소.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필드에 나가서 비싼 채를 들고 패션쇼를 하기에 앞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야 겠다.
누군가 친 연습공들이 염전의 소금처럼 하얗다. 저 곳에 내가 날린 공도 섞여 있겠지. 흐뭇하다. 배운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장갑도 다시 사야 할까 보다. 먼훗날엔 나도 아름다운 프로가 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