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1월 21일 수요일, 서상호 코치님이랑 첫 주중 연습을 했다. 마침, 사모님이랑 강병선 원장이 동참했다. 서코치와 강원장은 앞서가고 나는 조금 뒤쳐져 뛰었다.
코리아 타운 중심부에 있는 윌톤과 4가 길에서 만나 행콕팍을 향해 달리는 길, 새벽 여섯 시의 거리는 아직도 어둑했다.
언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새벽이 온 줄 어찌 아느냐?'는 물음이었다. 새벽 닭이 우는 걸 보고 안다느니 동이 터오는 걸 보고 안다느니 현자가 원하는 대답과는 먼 얘기만 한다. 현자가 말했다. 가까이 온 사람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으면 새벽이 온 거라고. 의미심장한 말이다.
아무리 가까이 왔어도 그가 누구인지 우리가 알아볼 수 없다면, 아직도 우리에겐 새벽이 오지 않은 거겠지. 안다는 건 이해한다는 것. 이해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어찌 겉모습이 눈에 들어온다고 속까지 안다 할 수 있으리오. 우리에게 새벽은 왔는지? 이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관계에 관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뛰는 시간, 조금씩 새벽이 밝아오고 일터로 향하는 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동에서 서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그 중엔 노란 스쿨 버스도 보인다. 새벽잠을 설치고 나왔을 아이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팍 라브레아까지 한바퀴 돌고, 다시 4가 길을 타고 오던 길로 되돌아 왔다. 왕복 5마일 길이란다. 나는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윌톤 가기 전에 있는 로즈모어 길로 빠졌다.
이 길은 옛날부터 자주 다녀 정이 든 데다, 추억을 가진 두 채의 집이 있어 향수를 느끼게 했다. 한 집은 우리 성당 사람의 저택으로 성가대 연습 뿐만 아니라, 어버이 행사까지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 준 곳이다. 주인이 바뀌자, 우리는 더 이상 별장 같은 그 집에 갈 수도 없고 갈 일도 없어졌다.
건너 편 콘도에는 옛날 가수 이장희가 살았던 곳이면서도 내 이민사에서 잊을 수 없는 '리타 보그단' 이 살았던 집이다. 직장에서 만난 그녀는 전직 루마니아 발레리나로 내겐 친어머니나 다름 없는 분이다.
팔십 즈음의 그녀는 지금 양로 병원에 누워 있다. 자식 없이 평생을 잉꼬부부로 살다가 남편이 죽자, 그녀는 바로 몸져 누웠다고 한다. 천부적인 유머 감각과 패셔너블한 멋쟁이에 정이 많던 나의 멘토, 리타 보그단. 그녀와 함께 지낸 이십 년 가까운 시간들이 흑백필름처럼 돌아간다.
로즈모어를 빠져나와 윌셔길에 이르니, 유서 깊은 건물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윌셔 이벨 극장과 스카티시 오디토리움,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이 멋있는 윌셔 감리교회까지. 건물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구한데, 내 사랑하는 벗님네는 다 어디로 갔는지.
오고 가는 세월 속에 계절은 어느새 봄의 길목에 들어섰는가. 거리의 가로수는 연초록 잎과 휘어진 가지들로 멋진 봄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건 웬 보너스인가. 계절을 앞당겨 피어난 연핑크 장미 한 송이가 환한 미소로 맞아준다.
어느 새 새벽이 물러나고 아침이다. 이때쯤이면, 이 집 저 집에서 왁자한 아이들 소리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나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먼 전설이 되어버린 아침 풍경이다. 문득, 우리 여섯 형제가 도래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던 어린 날의 정경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