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두 번은 급체로 생 고생을 하는데 바로 엊그제 일요일 밤이 '그 날'이었다. 짬뽕 속에 든 오징어나 닭고기를 먹고 체한 적은 있어도, 김치찌개를 먹고 급체를 한 건 또 생전 처음이다.
퇴근 길, <더 집밥>이란 간판을 보는 순간, 목살 김치찌개와 착하디 착한 아르바이트 학생이 생각났다. 아들 같은 생각이 들어, 팁도 넉넉히 주리라 생각하고 차를 돌려 그 집으로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다른 아이였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고 나왔다. 팁도 60% 주고 왔으니, 뒷꼭지가 부끄럽지도 않았다. 배는 부르고 쌀쌀한 밤공기가 얼굴을 간지럽히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행복이 별 건가, 하는 생각에 콧노래도 절로 나왔다. 기분좋게 운전하고 집에도 잘 왔다.
그런데, 이 무슨 변고람? 밤 한 시 경, 속이 더부룩한 게 꼭 토할 것만 같았다. 맛 있다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꾸역꾸역 넣은 게 잘못이다. 옆구리와 명치 끝은 손가락으로 누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침대에서 일어서려는데 천정이 빙글빙글 돌고 몸에 식은 땀이 쫙 흐른다. '홈리스 독거 노인들이 바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겨우 화장실 불은 켰으나, 변기 두껑을 열 힘도 앉을 힘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빙빙 돌려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만 같았다. 대리석 바닥에 머리라도 부딪히면 낭패다. 쓰러지더라도 카펫이 있는 방이나 침대에 쓰러지자 싶어 안간힘을 쓰며 침대에 이르렀다.
소리 칠 힘도 없어, 옆 방 룸메이트 전화 번호를 눌렀다. 밤 한 시 이십 분. 룸메이트 제시도 한밤중인지 대답이 없다. 절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싶으니 심장이 조여왔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심장병이 도졌다.
"제시! 제시!! 제시!!!"
숨 넘어가도록 제시를 불러재꼈다. 방문을 연 제시가 잠 오는 눈을 비비며 "언니, 왜?" 하고 물었다.
"응. 나 급체 왔나 봐! 빨리 손끝 좀 따 줘!"
나는 배를 움켜쥔 채 진땀을 흘리며 애원했다.
"으응, 바늘 가지고 올게!"
나는 아파 죽겠는데 , 잠이 덜 깬 제시는 동작도 느릿느릿했다. 아직 상황판단을 못한 듯했다.
"가만!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네?"
제시가 바늘로 손끝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그 와중에, 오래 전 어느 회식 자리에서 새침한 나더러 '찔러도 피도 안 날 것같은 우리 지선생님!'이라고 소개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피식하고 웃을 힘도 없다.
" 수지 침이 있으면 좀 쉬운데..."
서서히 잠이 깬 제시가 혼잣말처럼 뱉는다.
"으응, 저기 책장 밑 오른 쪽에 있어!"
다행히 얼마전에 이삿짐을 옮기면서 그것만은 눈에 띄는 자리에 놓아둔 게 생각났다. 다 사는 법이 있었다. 제시는 수지침을 들자, 능숙한 간호사마냥 쿡쿡 찔러 대더니 피도 꾹꾹 짜 낸다. 열 손가락을 다 따고, 씹어 먹으라며 건네준 약 두 알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씹어 넘겼다. 이때는 경험으로 봐서 정로환을 빨리 먹어야 되는데 약통을 찾을 길이 없다. 분명 이삿짐 속에 내 상비약으로 챙겨온 건 기억하고 있는데도.
"제시! 고마워! 이제 조금 나아졌어. 깨워서 미안해!
너무 급해서 그랬어, 빨리 가서 눈 붙여!"
제시한테는 정말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하지만, 계속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토할 것만 같다. 열이 나고 숨이 막혀 온다. 토하고 싶다. 하지만, 제시가 곧 잠 들텐데 싶어 쾍쾍거릴 수도 없다. 제시가 출근하는 아침 열 시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토하는 걸 참아야 한다. 음악을 약하게 틀자,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기가 오면서 냉골이 아프다. 두 발을 비벼보니 차가움이 느껴진다. 양 손도 차다. 이불을 하나 더 끌어다 덮고 배를 주무르며 잠을 청했다. 잊기 위해서 잠을 청하는 건 내 어릴 때부터 친한 버릇이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전쟁 후유증에다 일본으로 가신 아버님의 무소식이 겹쳐 극도로 가난했다. 할머니, 삼촌, 어머니, 그리고 우리 다섯 형제 자매들은 하루 한 두끼로 연명해야 했다. 배가 고플 때마다 나는 말없이 잠을 청했다. 잠을 청하면 밀려오는 아늑한 평온이 참 좋았다.
스물 여섯 젊은 어머니는 칭얼대지 않는 나를 착하다며 천사라 불렀다. 칭얼댈 힘조차 없었던 그때의 진실을 모른 채, 여든 셋 어머닌 날 천사딸로 기억하고 가셨다. 수심에 가득 차셨어도, 젊은 어머니가 머리맡을 지켜주었던 그때가 그립다.
나이 들어도 아플 때면 역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어머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늘 그렇듯이, 물 좋은 신고배를 깎아 주셨을 텐데. 어디가 아프든, 달고 시원한 신고배 몇 조각이면 거뜬히 일어나던 나를 어머님은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리라.
제시의 수고로 2-30%는 나아진 듯하나 통증은 여전했다. 밤은 깊고 새벽은 왜 그리 더디 오는지. 잠은 오지 않고 머릿 속 생각은 시공을 넘나든다. 날이 샐려면 턱없이 멀다. 구토를 잊으려고 애써 다른 생각을 했다.
살풋살풋 조는 사이, 배고팠던 시절에 보았던 통영 포구가 떠오르고 밤바다 물을 헤저으면 도깨비불처럼 번쩍대던 은빛 인광이 떠올랐다. 조개 파는 재미에 밀물이 온 줄도 모르고 열중하다, 양재기를 떠내려 보낸 적도 있었다. 그 양재기를 군함이 떠 있던 깊은 바다까지 헤엄쳐 가서 기어이 나꿔채온 오빠도 생각 났다.
초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오빠. 그는 어릴 때부터 물개였고, 커서는 귀신 잡는 해병이 돠었다. 훗날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선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소설과도 같이, 오빠는 서른 일곱의 젊은 나이에 용궁으로 왕노릇하러 가 버렸다. 날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해 준 오빠. 명치 끝 통증이 가슴까지 밀려왔다. 아프니, 마음까지 약해졌나. 왜 이리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지. 비몽사몽간에 새벽녘에야 살풋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해가 블라인드 사이로 기웃대는 아침 일곱 시다. 동생처럼 정 주고 지내는 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토와 통증을 참으며 제시가 출근할 열 시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약국이든, 마켓이든 제인더러 정로환을 좀 사오라고 일렀다. 남의 시간 5분이라도 땡겨 써야 할 정도로 바쁜 아침 시간에 제인을 불러재끼는 건 인사가 아님에도 어쩌랴! 가까이 있고, 군말없이 부탁을 들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염치없이 부탁했다.
화들짝 놀란 제인은 언제 구했는지 정로환은 물론이요, 활명수와 녹두죽까지 사 왔다. 정말 먹고 싶던 녹두죽이고 추억의 드링크 '활명수'다. 누룽지 좋아하는 줄 알고, 일어나면 삶아 먹으라며 누룽지까지 알뜰살뜰 챙겨준다. 꽃과 음악을 사랑하는 영원한 소녀, 제인다운 마음씨다.
바로 이것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원하는 것보다 '하나 더 해주는 것'이다. 부탁하지 않아도 사랑이 있으면 마음은 절로 우러난다. 이유나 핑계를 대기 전에, 방법이 생긴다.
사랑엔 인간의 셈으로 풀 수 없는 묘한 셈법이 있다. 싸늘한 냉골과 차갑게 식은 손발에 온기가 돌고, 붉은 피톨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심장이 빠르게 뛴다. 고맙다. 아니, 감동이다. 산다는 게 뭔가. 결국은 서로 정 주고 받다 가는 거 아닌가. 받을 때가 있으면 줄 때도 있겠지.
제인이 건네주고 간 녹두죽과 정로환을 먹은 뒤, 비로소 깊은 잠에 빠졌다. 아늑하고 평온한 잠이다. 어릴 때 청했던 그 잠만큼이나 달콤하다. 명치 끝을 찌르던 통증도 가슴을 아리게 하던 슬픔도 은하수 따라 멀리 멀리 떠나간다.
어느 새, 내 창엔 다시 어둠이 잦아든다. 천국의 사다리를 타며 오르락거리는 사이, 고통의 일요일 밤은 가고 평온한 월요일 밤이 오고 있다. 이렇게 또 하루, 해가 뜨고 해가 지며 세월이 간다.
아이구. 큰일날 뻔 했네요.
그럴땐 토하는 게 더 나은데...
아픈 덕분에 추억여행 잘 다녀왔네요. ㅎㅎ
그렇게 정 주고 살 한 사람 가까이 있으니 잘 살아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