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수필 쓰기는 ‘숨은 그림 찾기’이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사물의 아름다움을 찾고 그 의미를 읽노라면 대상에 대한 애정이 절로 솟는다. 아름다움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수필을 쓰면서 배웠다. 이런 의미에서 수필 쓰기란 하나의 청복이 아닌가 싶다. 굳이 작법이랄 것도 없지만,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나의 수필 쓰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재와의 만남(!)+사색+의미부여+작품 구상+퇴고+완성>
여기서 감성적 만남이란 심상에 각인된 느낌표라고나 할까. 자연이나 사람이나 어떤 사물이 내 심상에 하나의 느낌표로 찍히면서 사랑의 대상이 되면 그때부터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에 빠져든다. 그 다음, 나의 이 주관적인 느낌이나 경험이 어떻게 인생의 한 단면과 연결이 되어 보편성을 지니게 될 것인가를 고심하게 된다. 내 개인의 감동적 체험이 누군가와 나눌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신변잡기’와 ‘문학 수필’의 언저리에서 서성일 때가 많다. 다 필력의 문제지 싶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 작품 구상에 들어간다. 주제를 받쳐줄 예는 충분하고 타당한가. 구성에 있어 무슨 말로 첫 줄을 시작할까. 느낌부터 던질까, 아니면 시간대 별로 구성할까, 의식의 흐름에 따를까 등등. 효과적인 마무리와 여운을 남기기 위해 마침도 고려 대상이 된다. 대체로, 이야기 전개는 ‘항아리형’으로 하고 마침은 ‘수미쌍관법’을 씀으로써 처음과 끝을 잠금장치처럼 하나로 연결해준다. 퇴고 부분에 가서는 그야말로 ‘등심주물럭’이다. 고치고 또 고쳐 ‘곤야꾸’가 될 때까지 간다. 그렇다고 완전한 작품이 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완전한 작품이라곤 없다고 본다. 다만, 원고 마감일이 있을 뿐이다. 출판 기념회에 가서도 책을 받는 즉시, 또 고치고 있으니 이 불치의 병을 어쩌랴.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한 노력으로는, 시조집이나 고전 수필을 많이 읽고 편식을 피하기 위하여 철학이나 예술 분야의 책도 종종 찾아서 읽는다. 책은 ‘신체 장기’처럼 지니고 다니되, 아끼는 책은 어떠한 유혹에도 ‘장기 기증’ 하지 않는다. 자연이나 사람, 혹은 사물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면 의외의 글감을 얻게 된다. 앞으로, 문학 일기나 주제 일기를 써볼 참이다. 습작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0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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