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졸졸...
노래부르며 흐르는 평화로운 개울 마을에 장난꾸러기 햇살이 놀러 나왔어요.
"얘, 나 하고 노올자~"
햇살이 애기 같이 졸라댑니다.
개울은 갈 길이 바쁜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흘러 갑니다.
"얘, 나 하고 놀자구우~ 자꾸만 혼자 그렇게 가지 말구우~"
햇살이 따라오며 조릅니다.
마침, 개울물은 여울목을 돌면서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개울이 말을 합니다.
"나, 빨리 가야 된다구. 너 하고 놀 쉬간 없어!"
"뭐가 그리 바쁜데~ 놀다가 천천히 가면 안 돼?"
"안 돼! 난 만날 친구가 있어."
"뭐어? 나 말고 다른 친구가 또 있는 거야?"
"응!"
"아니, 그게 누군데?"
"말 해주면 화 낼려구?"
"아니! 이래뵈도 난 남자야!"
"그래? 사실은 나 지금 냇물을 만나러 가는 중이야."
"뭐어? 냇물? 야, 너 냇물 만나봤자, 물만 더 먹어. 그냥 나 하고 놀자, 응?"
"아니야. 만나기로 약속했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정말 안 가면 안 돼?"
"안 돼! 약속은 약속이야."
"나, 그러면 너 해꼬지 한다아~"
햇살은 짐짓 마음에도 없는 심통을 부려 봅니다.
"아니야. 넌 해꼬지 할 애가 아니야. 난 널 믿어!"
개울이 힘주어 말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데야 햇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개울은 이렇듯 맑고, 깨끗하고, 행실이 반듯했습니다.
그래서 햇살은 개울을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다음에 봐~ 안녕!"
개울은 급히 돌아 섰습니다.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에 더 빨리 가야 했습니다.
햇살은 아쉬운 마음에 안녕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 대신에, 그는 가만히 물살을 헤적였습니다.
마치, 옆집 아이 순이가 이사 가던 날 마당에 낙서만 하고 있던 돌이녀석처럼......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가만히 헤적인 물살에 너무도 아름다운 물무늬가 일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햇살이 생각난 듯 소리쳤습니다.
"얘! 잠깐 기다려! 우리 같이 가자!"
함께 가면서 개울에게 예쁜 물무늬 옷을 입혀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네? "
개울도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늘 햇살과 못 놀아준 게 미안했었는데 참 잘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울과 같이 간다는 생각에 햇살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습니다.
어디든지 개울이 가는 곳이라면, 지구 끝까지 따라가도 햇살은 좋기만 합니다.
햇살은 정말 신이 났습니다.
개울과 함께 소풍을 가다니요.
신이 난 햇살은 어떻게 해서든지 개울을 재미있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얘, 예쁜 개울아! 나는 물 속으로도 갈 수 있고 물 위로도 갈 수 있어. 보여줄까?"
"정말? 난 물 속으로밖에 못 가는데? 넌 재주도 좋네? 어디, 한번 보여줘 봐아 ~"
"그래, 자 잘 봐아~"
햇살은 호기롭게 큰 소리를 치고는 폼을 잡았습니다.
햇살은 물 속으로 갔다가 물 위로 갔다가, 길게 꼬리를 끌었다가 짧게 꼬리를 끊기도 하면서 온갖 재주를 부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개울은 너무도 아름다운 물무늬로 일렁였습니다.
요정이 요술을 부리는 듯, 마차를 타고 가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호피무늬 옷을 입어본 적은 더더구나 없었습니다.
"우리, 같이 잘 왔다. 그지? 혼자 오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고 좋은 걸?"
개울도 햇살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때, 햇살이 생각난 듯 물었습니다.
"너, 냇물하고 만난 뒤에는 뭐 할 건데? "
"으응, 우리는 같이 강물을 만나러 갈 거야. 우린 언제나 우리 둘이만 안 놀아. 강물 하고 셋이 같이 놀아!"
"아, 그렇구나! 물은 물끼리 논다, 이 말씀이지? 어른들이 말 하는 유유상종?"
"어머, 너는 어려운 말도 아는구나! 허긴, 넌 사방좌우로 여행을 많이 하니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많겠구나!
얘, 너가 부럽다야!"
"아니야, 너야말로 얼마나 행복하니? 친구도 많고, 늘 행복해서 졸졸졸 하고 노래를 흥얼대며 살잖니!"
"사실, 내가 노래 부를 수 있는 건 조약돌 때문이야! 조약돌이 없으면 돌돌돌 졸졸졸 하며 어떻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겠니?"
"야, 너는 마음씨도 어쩌면 그리도 맑고 고우니? 난 조약돌 때문에 걸려 넘어질까봐 싫어했는데 그게 아니네?"
"그럼~ 이 세상엔 필요 없는 건 아무 것도 없단다."
"어쭈? 오늘은 어른 같은 말씀만 하시네?"
"얘는 농담도 잘 해. 야, 우리 늦겠다. 빨리 가자!"
개울은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려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햇살도 개울에 맞추어 더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그럴수록 개울과 햇살이 어우러져 만드는 물무늬는 화가도 그려낼 수 없는 천상의 무늬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지나가던 바람이 둘이 노는 모습이 하도 귀여워 슬쩍 이파리 종이배 하나를 띄워 주었습니다.
맨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이파리 종이배는 갑자기 새 친구를 만나 신이 났습니다.
"얘, 너희들 어디로 가니?"
"으응, 우린 지금 냇물을 만나러 가는 중이야. 그리고 냇물을 만나면 다시 강물을 만나서 바다로 갈 거야."
"바다?"
산마을 속에만 살던 이파리 종이배는 그때까지 바다를 구경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너 바다를 몰라? 얼마나 넓은데...... 거기 가면, 섬도 만나고 수평선도 만나고 갈매기도 만날 수 있어.
그리고 배도 만나고... 또... 또... 또..."
재잘대는 개울물 얘기에 이파리 종이배는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넓은 세상이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만날 수 있는 친구가 그토록 많다는 것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파리 종이배 눈 앞에는 벌써 신천지가 펼쳐지는 듯 아득해 왔습니다.
촌닭 같은 이파리 종이배 표정을 보자, 개울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까르르 하고 웃는 개울의 해맑은 모습을 보자, 햇살도 덩달아 웃음이 터졌습니다.
햇살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갖가지 재주를 부렸습니다.
물 속으로 들어가서 개울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물살을 헤저으며 갖가지 무늬를 만들어 보였습니다.
개울도 갖가지 재주를 가진 햇살이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 새 냇물 마을에 들어 섰습니다.
제법 물살이 세고 빨라져 걱정이 되었는지, 멀리 냇물이 마중을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개울은 햇살 친구 덕분에 오늘은 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냇물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햇살도, 공작새가 그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듯 금빛 은빛 빛살을 펼치며 부지런히 따라 갔습니다.
그 뒤를 이파리 종이배도 팔랑이며 쫓아 갔습니다.
모두 모두 넓은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헤엄쳐 갔습니다.
냇물을 만나면 강물을 만나고, 강물을 만나면 다시 바다를 만나겠지요.
그들의 이 즐거운 여행은 바다를 만날 떄까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2013.2.21 - 내 생애 최초로 써 본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