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화씨 100도를 넘나드는 이 곳 캘리포니아 리틀락. 우리 집 레이디(져먼 쉐퍼드)가 여덟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았다. 에미 젖을 빨며 꼬무락거리고 있는 새끼들이 너무나 귀여워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런데 다음 날, 이 놈들이 어떻게 지내나 싶어 들여다 보니 아니, 이게 웬 일? 개 집이 텅텅 비어 있었다. 명색이 사납다고 소문이 난 져먼 쉐퍼드가 제 새끼들을 들짐승에게 빼앗겼을 리는 없는데...... 참 이상했다. 새 집부터 시작해서 닭장과 염소, 오리, 거위, 돼지 우리 등 우리란 우리는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카터를 타고 급히 농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래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창고 밑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 들여다 보니, 엎드려도 겨우 들어갈까 말까한 낮은 틈새에 시커먼 새끼들이 모여 있었다. 영리한 레이디가 제 새끼들이 더워하는 것을 보고, 한 마리씩 물어다가 여름 피서를 시킨 것이다. 짐승이 영물이라더니 영물은 영물이다.
한, 두 주쯤 지났을까?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이제 피서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제법 자란 여덟 마리의 새끼들을 다시 제 집에 들여앉혀 놓았다. 아무리 큰 개집이라도, 아홉 식구가 지내기에는 좀 불편하겠다 싶어 좀더 큰 장소를 물색했다.
이리 저리 찾다가, 부엌 옆에 새로 지은 '덴'이 생각났다. 300스퀘아 피트나 되는 '덴'은 넓기도 하지만, 지붕도 있고 쿨러가 있으니, 좁고 더운 제 집 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똥, 오줌은 레이디가 핥아서 해결해 주니 오물 걱정은 안 해도 될 터이다. 큼직한 담요를 하나 깐 뒤, 조심스레 한 마리씩 옮겨 놓았다. 등도 하나 켜 주고 밥그릇과, 물그릇을 갖다놓고 보니 훌륭한 보금자리가 됐다.
새벽에 일어나, 궁금해서 창문 밖 '덴'을 드려다 보니, 아홉 식구가 서로 엉킨 채 곤히 잠들어 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찾았나 보다고 생각하니, 내 집이라도 마련한 듯 흐뭇했다.
그런데 웬걸? 오전 열 시쯤 되어 따가운 햇살이 '덴'을 데우기 시작하자, 또 한번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입으로 아래, 위를 다 핥아준 뒤 한 마리씩 물어 시원한 창고 밑 흙집으로 다시 옮겨 놓는다. 여덟 번을 왔다갔다 해야 되니 입심이 풀렸는지 마지막 놈은 물고 가다 떨어뜨렸다. 그래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다시 물어 옮겨 놓더니 저도 새끼 곁에 자리를 잡고 비스듬히 드러눕는다. 새끼들은 이때다 싶은지 낑낑대며 젖을 파고 들었다. 올라타다가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젖 빨기에 여념이 없다. 여덟 놈이나 되니, 동작이 느리거나 힘이 없는 놈은 젖 먹기도 쉽지 않다. 제 더위 하나도 견디기 힘들텐데, 어미가 된 레이디는 아랑곳 없이 이런 새끼들을 말없이 내려다 보며 젖을 물리고 있다.
동물을 키우다 보면, 인간 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모성애 또한 찐하게 느낄 때가 많다. 벌써 4개월이 지났는데도, 새끼에게 머리로 쿵쿵 받쳐가면서도 아픈 내색 없이 젖을 빨리고 있는 어미 염소, 다른 놈들은 먹이를 찾아 넓은 농장을 활개치고 다녀도 새끼를 보겠다고 이 무더위에도 꼼짝 않고 알을 품고 있는 암탉. 그 중에서도 더위를 견디다 못해 잠시 물을 먹으러 나왔다가 아홉 개나 되는 알을 들쥐에게 다 도둑 맞은 거위의 모습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애처롭다. 놀라 허둥대며 알을 찾던 거위는 아직도 둥지를 떠나지 못하며 꺽꺽 울고 있다.
'하물며 동물도 저러한데...' 하는 생각에 종종 눈시울이 더워지곤 한다. 새끼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본능일진데, 그 본능마저 저버리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자식 문제마저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어른'을 볼 때마다 어른이 된 내가 참 미안하다. 그래서 옛말에 '짐승 보다 못한 놈'이라는 호된 꾸짖음이 있었나 보다. 이 더위에도 불구하고 젖을 빨리며 누워 있는 레이디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