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한국 이름은 박동미다. 동녘 ‘東'에 아름다울 ‘美’로 몸도 마음도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닮아 고심 끝에 지어준 이름이다.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딸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영어 이름을 지어달라고 졸랐다. 친구들이 동미라고 부르지 않고 자꾸만 “똥미! 똥미!”하고 놀려서 싫다는 거였다.
나는 왜 동미라고 지어주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가 딸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했다. 그래도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놀림을 받아 기분이 많이 나쁜 것 같았다. 내가 지어준 그 이름을 쓰지 않으면 엄마가 준 귀한 선물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진데 괜찮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딸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거 같더니 알았다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땐 나도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이미 영어 이름을 하나 만들어 쓰고 있었다. 내 마지막 이름자인 ‘선’에 ny를 붙여 Sunny라고. 손님들은 가게에 올 때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꼭 너 닮았다며 밝고 명랑한 Sunny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가끔, 한국 이름은 뭐냐고 물어오면 ‘희선’이라고 알려주며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는 ‘희선씨’라고 불러야 된다는 주문도 덧붙였다.
그러면 손님들은 입을 오물거리며 내 이름을 몇 번이고 연습한 뒤 “희손씨!” 하고 크게 부르며 환하게 웃곤 했다. 의외로 발음이 정확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반가워 한국에 갔다 온 적이 있느냐, 한국 친구들이 많으냐 하며 대화의 물꼬를 틀기도 한다. 한국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내 이름 ‘미닝’이 뭐냐며 물어오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이 나서 내 이름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계집이란 말은 천박하고 아가씨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 나는 굳이 계집 '희' 대신 딸아이 ‘姬’에 신선 ‘仙’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Daughter of God’이라고나 할까, 하며 짐짓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열에 열 명이 “와우! 그레이트 네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렇게 우리는 이름 때문에 종종 즐거운 담소를 나누곤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렇게 즐거운 담소거리가 되는 현지이름이 재일교포에게는 슬프고도 아픈 이름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재일교포 시인 왕수영이 일본식 이름인 오오슈우에이로 불리며 사는 비애에 대해 쓴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이렇게 피 토하듯 쓰고 있었다.
<...나는 밤이면/잠자리에서/소멸해 버린 왕수영이/그리워 목이 메인다/이십 여년 오오슈우에이로/살아온 나는 어느 날/누군가가 왕수영이라고/불러도 대답을 못할 것이다/그것은 내 상실이다/나는 누구인가/어디로 갔는가/왕수영이는 조국땅에서/내가 돌아오기를/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내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름에 슬픈 역사가 얹힌 재일교포들의 비애에 대해서 창씨개명을 해본 적이 없는 나도 가슴이 먹먹해져 옴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딸아이 영어 이름이 다시 이슈로 등장한 건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하루는 집으로 전화가 왔다.
“크리스티 이즈 데어?”
새벽 종소리 같이 맑고 깨끗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노우, 유 갓 롱 넘버.”
나는 전화를 끊었다. 집에서는 보통 한국말을 쓰는데 상대방이 영어로 물어오니 자동적으로 내 입에서도 영어가 튀어나왔다.다시 삼십분 뒤 쯤 다른 목소리의 소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크리스티 이즈 데어?”
나는 딸아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유 크리스티?”
“노우!”
아이는 강한 어조로 부정했다. 나는 잘못 걸었다며 다시 전화를 끊었다. 딸아이의 표정이 심상찮다. 이 애가 제 영어 이름을 혼자 지었나,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곧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또 얼마 있지 않아 제 또래 여자 아이의 목소리로 크리스티를 찾는 전화가 왔다. 나는 딸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 띵크, 유 아 크리스티. 라잇?”
“예스, 아이 니드 잉글리쉬 네임.”
아이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오케이!”
나는 흔쾌히 대답하며 딸아이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딸애도 이제 중학생이다. 제 이름 하나 정도는 스스로 지어도 된다. 크리스티란 이름이 낯설긴 하지만, 미국에 어느 정도 살고 보니 나도 굳이 한국 이름을 고집하고 쉽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딸아이는 친구 사이에서 ‘크리스티’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스펠링으로는 ‘kristee’였다. 물론, 나는 여전히 ‘동미’로 불렀다. 내게 ‘동미’란 이름은 천 번을 불러도 언제나 정다운 딸의 이름일 뿐이다.
아무리 미국 물이 들었어도 영어 이름은 손님 편의상 쉽게 지었지만, 국적만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꾸기 싫어 이십 여 년이 지나도록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 성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은 채 고유의 ‘지희선’이란 이름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민권 신청비가 해마다 급속하게 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100불 남짓하던 수수료가 어느 새 675불까지 치솟았다. 식구수대로 신청하자면 그 가격도 만만찮았다. 미국에 산 지 28년 만에 시민권 신청을 했다. 이때, 한 가지 혜택은 이름을 바꾸어도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는 거였다. 보통 서류상 이름을 바꾸려면 수수료가 250불 정도는 든다. 딸아이가 서류상으로도 완전히 크리스티로 바꾸고 싶다면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우!”하고 강하게 부정하며 고개까지 흔든다.
‘크리스티’는 그냥 닉네임으로 쓰고, 아이덴티티를 위해서라도 자기 I.D에 있는 이름을 그대로 쓰겠단다. 더욱이 엄마가 준 귀한 선물인데 어찌 버릴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제 스스로 초등학교 때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 낸 모양이다. 나는 딸아이 마음이 갸륵하기는 했지만, 15년 동안 써온 이름을 버리는 게 아깝지 않을까 싶어 절충안을 내놓았다. 미들네임으로 있던 ‘Agnes’ 대신 ‘Kristee’를 넣어도 된다고. 그런데 영세명인 아그네스도 버리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결국은 처음부터 I.D로 갖고 있던 ‘Dongmi Agnes Park’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로써 딸아이 영어 이름은 일단락을 맺게 되었다.
나는 여태까지 고수하던 ‘Heesun Joanna Chi’ 대신 영세명이 있던 미들네임 자리에 내 처녀성인 ‘Chi’를 넣고 남편 성인 ‘Park’을 넣었다. 미국 오면 남편 성을 쓰는 관례에 따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아 큰 맘 먹고 성을 바꾸었다. 시민권자가 된 나의 신분증 이름은 ‘Heesun Chi Park’으로 바뀌었다.
딸의 영어 이름인 ‘Kristee’와 나의 영어 이름인 ‘Sunny’는 앞으로도 닉네임으로 제 소명을 다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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