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해가 지면
다시 돌아드는 남루한 마음 앞에
조심 된 손길이
켜서 밝혀놓은 램프
유리는 매끈하여 아랫배 불룩한 볼륨
시원한 석유에 심지를 담그고
쁜 듯 타오르는 하얀 불빛!
쬐이고 있노라면
서렸던 어둠이
한 켜 한 켜 시름 없는 듯 걷히어 간다
아내여, 밥그릇을 바지런히 섬기는
그대 눈동자 속에도 등불이 영롱하거니
키 작은 그대는 오늘도
생활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얼빠진 내가
길 잃고 먼 거리에 서서 저물 때 저무는 그 하늘에
호호 그대는 입김을 모았는가
입김은 얼어서 뽀얗게 엉기던가
닦고 닦아서 더 없는 등피!
세월은 덧없이 간다 하지만
우리들의 보람은 덧없다 말라
굶주려 그대는 구걸하지 않았고
배불러 나는 지나가는 동포를 넘보지 않았다
램프의 마음은 맑아서 스스럽다
거리에 동짓달 바람은 바늘같이 쌀쌀하나
우리들의 밤은 조용히 호동그라니 타는 램프!
날마다 켜지던 창에
오늘도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앉았다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
램프를, 그 따뜻한 것을 켜자
얼어서 찬 등피여 호오 입김이 수심되어 갈앉으면
석윳내 서린 골짜구니 뽀얀 안개 속
홀로 울고 가는
가냘픈 네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전쟁이 너를 데리고 갔다 한다
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은 어디냐
안개와 같이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지는 내 그리운 것아
싸늘하게 타는 램프
싸늘하게 흔들리는 내 그림자만 또 남는다
어느 새 다시 오는 밤 검은 창 안에 -
<주> 전쟁이 가져온 슬픈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