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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산에 오른다. 태고의 정적을 맛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느 곳 하나 사람의 발길이 거쳐가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때는 도시의 소음보다 더 시끄러운 산을 대하게 되고 어느 곳은 쓰레기 하치장보다 더 지저분하다.

내가 그리던 산은 어디로 가고 앙상한 산의 잔해(殘骸)만이 나를 슬프게 한다. 어린 시절 산에 나무를 하러 올라가면, 무덤가에 수줍게 피어 있는 봄의 할미꽃을 대하게 된다. 어느 한 손길도 닿지않은 그 꽃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곤했다.

여름이면 계곡의 시린 물에 발을 담그고  푸른 숲속에 누워 흘러가는 흰구름을 보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다. 감나무 잎이 갈색으로 물드는 가을이면 초동(樵童)의 마음은 설레인다. 산귀래(山歸來)열매를 입에 물고 가끔 나룻배에서 만났던 교복입은 소녀를 생각한다. 겨울은 낮이 짧아 나무꾼에게 바쁜 계절이다. 그러나 삭정이를 꺾어다가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 때문에 겨울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고향 마을 뒤켠에 길게 누워있는 야트막한 산은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마당이요 동산이요 정원이었다. 솔방울 전쟁놀이도 숨바꼭질도 그 곳에서 했다. 나는 그 산의 훈기로 자란 것이다. 해풍이 몰아치는 다복솔 사이를 거닐면서 먼 나라처럼 생각되는 도시를 그렸다.

바다에서 불어오던 바람으로 꽃이 피던 산, 어느 곳 하나 인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 솔바람 소리가 수평선 건너 멀리멀리 사라지던 그 고향의 산....

이제 그 산도 나무가 베이고 땅이 깎여 옛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자리엔 멋대가리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채워졌고 조선소의 발동기 소리와  시커먼 매연만이 근대화란 푯말을 감싸고 있다.

10여 년 전 L형이 중심이 되어 조그마한 등산 동인회를 만들었다. 많을 때는 7-8명이, 어떤 때는 혼자서 서울 근교의 산을 찾아  오르곤 하였다. 가파른 천마산(天摩山) 등성이를 오르기도 하고 백운동 계곡을 따라 수락산(水落山) 정봉(頂峯)에 올라 아름다운 조국의 강산을 조망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끔 북으로 뻗은 산의 맥(脈)이 끊긴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오한(懊恨)에 젖기도 하였다. 어둠이 깔린 조용한 하산길은 나를 번고(煩苦)하는 철인이 되게도 하고 망명지의 유랑민이 되게도 한다.

나는 산에서 묵시(默示)의 대화를 한다.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서, 민족의 영원성에 대해서, 사랑의 가변성(可變性)에 대해서 묻고 대답한다.   그러나 산은 이제 본래의 모습을 잃고 시장이요 전쟁터가 되어 가고 있다. 나만이 은밀하게 알았던 밀어의 장소도 모두 공개되었고, 나만이 거닐던 산책로도 이제는 공유의 것이 되어 버렸다.

산, 그러나 나는 정월과 8월의 산에서 산의 산다움을 잠시 맛본다. 실뿌리도 잠든 정월의 산, 산사(山寺)에서 들려 오는 목탁 소리 에 나뭇 가지 위에 얹힌 흰눈이 떨어져 머리칼 위에 날리고, 하얀 눈 위에 찍힌 산새의 발자국이 원시(原始)의 산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벌레 소리도 지쳐 버린 무더운 8월의 산에 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져 사계(四界)가 단절된 깊은 숲속에서 나는 원색의 푸르름을 맛본다.  

산은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결코 망각하지 않는 침묵으로 숱한 사연을 안으로 삭이고 있다.

산은 짓밟혀도 침묵한다. 그리고 조용히 서서 흰구름이 오고감을 지켜 볼 뿐이다.



윤형두 <1935~ >

수필가. 범우사대표. 일본 고오베에서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