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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아동문학의 어느 장르로도 등단하지 않은 제가, 작년 아동문학 세미나에서 ‘동시가 인성에 미치는 영향’이란 거창한 제목의 원고 청탁을 받고 발표한 것도 민망한데, 오늘 또다시 아동문학가의 모임에 발표자로 나서게 되어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도 젊은 할머니로서 키우는 손녀가 있고, 제 가슴에도 잊혀지지 않는 동화와 즐겨 부르던 동요가 상기 남아 있었기에 함께 나눈다는 생각으로 먼지 묻은 책을 뒤적여 원고를 준비했습니다. 원고 준비를 위해 동시를 읽으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맞어! 나도 그랬어”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동요 한 소절 노래로 부르고 동시 한 구절 가슴으로 읽으면서 함께 공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동요와 동시가 존재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시로써 정서를 길러주고, 정감어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며, 그것을 통하여 조국애와 감정의 순화를 도모하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요. 작년 세미나 원고에서도 제가 주장했듯이, 교도소에 들어가야 할 책은 어쩌면‘성경’이 아니라 한 권의 ‘동시집이나 '동화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은 믿지 않는 수인들을 더욱 큰 죄인으로 만드는 위화감을 주지만, 동시집이나 동화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회개하라고 큰 목소리로 강조하지만, ‘동시집이나 동화책’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합니다. 성령은 누구에게나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지만, 어린 날 불렀던 동요 한 소절은 누구에게나 추억을 불러와 눈시울을 적십니다. ‘성경'을 쥐어주는 사람과 받는 수인은 수직관계에 놓이지만, 동시집이나 동화책 한 권을 선물하는 사람과 수인은 수평관계가 됩니다. 바로 친구가 되는 친밀성이 있지요. 한 소절의 동요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한 편의 동화가 사회를 변혁시킨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이런 의미에서, 아동문학의 작품 한 편 한 편이 갖는 힘이 얼마나 위력적이며, 동시에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밤,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아동문학가로서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자신을 재점검하고, 좋은 동시와 동요를 다시 음미해보면서 우리 스스로도 그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한번 빠져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함께 나누는 몇 편의 작품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지천에 들꽃처럼 늘려있는 소재를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고운 노래를 지어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천심인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우리 스스로도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습니까. 오늘은 비록 손님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저도 제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서라  언젠가는 여러분과 함께 진정한 아동문학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하겠습니다.  

(2) 동시의 종류
  

동시에는 두 가지 동시가 있습니다. 형식상으로는 정형시인 동요가 있고, 자유시인 동시가 있습니다. 그 다음, 쓴 작가에 따라서 아이가 쓴 아동시가 있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동시라고 부르는 어른 동시가 있습니다. 아동시는 표현면에서 묘사가 부족하지만 그 솔직성에 있어서는 어른 동시가 쫓아가지를 못합니다. 그에 비해서 어른 동시는 묘사와 함축미가 있으며 기교가 있어 매끈합니다. 아동시가 투박한 질그릇이라면, 어른 동시는 뽀얀 백자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질그릇은 질그릇대로 그 맛과 멋이 있고, 백자는 백자대로 아름다움과 깊이가 있습니다. 몇 편만 고르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좋은 동시들이 많이 있지만, 시간 관계상, 약간 다른 맛이 나는 동시를 골라봤지만 역시 제 취향에 맞는 주관적인 것이기에 좋아하실지 좀 주저되는군요. 좋은 작품은 봄날의 들꽃처럼 흐드러지게 많이 피어있고, 하늘의 별만큼 눈 초롱초롱 뜨고 독자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좋은 작품 한 편 만나는 것은, 산야나 강가를 해종일 헤매다가 수석 하나 발견한 것  못지않는 기쁨을 줄 것입니다.
  
(3) 동시 감상

a) 아이가 쓴 아동시-이오덕 선생이 엮은 <일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ㄱ.담배 심기(안동 대곡분교 3년;김태운-1970년작)
    담배를 심는데/구덩이를 잘못 파서/엉덩이를 얻어맞았다/내가 하하 허허 웃었다/일월산 보고 웃었다.

ㄴ.빨래(안동 대곡분교 3년;김경화-1968년작)
    비누를 갈면 거품이 나온다/거품이 나오면 무지개가 나타난다/노랗고 빨갛고 파랗다/ 참 색이 곱다/  물에 떠내려 갈라고 하면 하도 고와서/한 번 더 보고 떠내려 보낸다.

ㄷ.나뭇잎을 끌어내며(상주 청리 6년;유태하-1965년작)
    연못에 들어 있는/나뭇잎을 쓸어내다가/나도 모르게/일하기 싫어졌다/비를 들고 서서/동화 이야기를 생각하다가‘문득/바보 이봔을/생각하였다/아무리 아파도/일을 한다는/바보 이봔/바보 이봔을 생각하면서/      다시 나뭇잎을/깨끗이 끌어내었다.

ㄹ.눈물(안동 대곡분교 3년;남경자-1969년작)
    아침을 먹다가/동생이 날 보고 머라 해서/눈물이 나온다/어머니가/“눈물도 썩어 빠졌다.”고마 눈을 콱  쑤셔 불라.”/하니 할머니가/“눈을 쑤시면 눈물이/더 나오라고?”하신다/나는 눈물이 썩어 빠졌다.

ㅁ.눈물(안동 대곡분교 3년;배옥자-1969년작)
    어머니는 언니에게/방아를 찧으러 가자했다/언니는/돈 백 원 주면 간다 하니/어머니는 돈도 안 주면서/      언니의 머리를 콱 쥐어박았다/나는 눈물이 막 났다.

ㅂ.아버지의 병환(안동 대곡 분교 3년;김규필-1969년작)
    우리 아버지가/어제 풀 지로 갔다/풀을 묶을 때 벌벌 떨렸다고 한다/풀을 다 묶고 나서/지고 오다가/성춘네 집 언덕 위에 쉬다가/ 일어서는데/뒤에 있는 돌멩이에 받혀서/그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풀하고  구불어 내려와서 도랑 바닥에 떨어졌다/짐도 등다리에 지고 있었다/웬 사람이 뛰어와서/아버지를 일받았다/앉아서 헐떡헐떡하며/숨도 오래 있다 쉬고 했다 한다/내가 거기 가서/그 높은 곳을 쳐다보고 울었다.

ㅅ.할머니(문경 김룡 6년;여학생-1972년작)
    아버지는 술만 잡수시고/할머니가 찾으로 가서/야야, 너는 집 일은 조금도 보지 않고/술만 먹고 앉았나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아버지는/그래도 먹고만 있었다/할머니는 집에 와서/우리가 무엇을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방에 앉아만 있다/할머니는 아픈 중에/소리 없이 죽어 가는 것이다.

ㅇ.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지은이-어려움을 당할까봐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했음)
    아버지는 술만 잡수시고/일을 하지 않는다/어제는 쌀 한 되 가지고 가서/ 그 쌀로 술을 사 먹었다/나는  울었다/아버지는 술을 먹고 와서/나를 때렸다.

ㅈ.까만 새(안동 대곡분교 3년;심필련-1968년작)
    까만 새는/눈이 조그마하지/꼬리는 길다랗지/무엇을 먹고 살까/까만 열매를 먹고 살지/까만 새는/까만  새끼리/살지/노란 새, 빨간 새, 파란 새하고는/놀기도 싫지/까만 새들은/떼를 지어/산에 다니며/까만 열매를 따먹지.

ㅊ.누나(상주 청리 4년;김진복-1964년작)
    누나는/형님 따라/서울로 식모살이를 갔다/내 마음은 언제나/울고 싶은 마음/교실에서 산을 바라보면/ 내 눈에는 서울이 보인다/그러면 눈물이 나올라 한다.

ㅋ.보리 매미(안동 대곡분교 3년;김순희-1969년작)
    일일......총일일...... 총 일총일총...... 일총일총일총 총총총총 그러다가 오줌을 싸 놓고 옷이 젖으니 옷 입으로 뒷산으로 간다.

ㅌ.소나무(안동 대곡분교 3년;김용팔-1968년작)
    산에는/소나무가 사람 같다/소나무가 바람이 부니/총을 미고 달아나는 것 같다/큰 소나무가 조그만 소나무를/줄을 지어 놓고 싸우라고 한다.

ㅍ.소나무(안동 대곡분교 3년;정부교-1968년작)
    소나무가/옷이 다 떨어졌다고/벗어 내던진다/내년에 또 사 입지 뭐, 하고/내던진다.

ㅎ.나비(안동 대곡분교 3년;김태복-1970년작)
    나비 두 마리가/미술 한 장 꿔 달라고 하고/안 준다 하고/둘이 막 싸우며/하늘로 날아간다.

ㄱ-1.산과 안개(안동 대곡분교 3년;정부교-1968년작)
    산이/안개를 푹 덮어썼다/하얀 이불같이/덮어썼다/밤에는 푹 덮고/날이 새면/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선다.

ㄴ-1눈물(상주 청리 5년;이달수-1963년작)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다가오면/나는 눈물이 난다/그래도 동무들이 보는 데는 울지 않아도/나 혼자 울  때가 있다/우리 집에는 양식이 없어/밥을 먹지 않을 때가 많다/집에 돌아와 보면 동생들이/배고파서  울쌍을 하고 있다/점심도 나물죽을 끓어 먹기 때문에/그런 것이다/산수 예습을 하면서 나는/공부만 잘  하면 제일이라고 생각했지만/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나의 눈에는/또 눈물이 비 오듯 하는 것이다.

b)어른이 쓴 동시-<동시. 동요. 시조를 찾아서>와 <참 좋은 동시60>을 중심으로

ㄱ.꽃씨(최계락)
    꽃씨 속에는/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꽃씨 속에는/빠알가니 꽃도 피어있고/꽃씨 속에는/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ㄴ.아기와 나비(강소천)
    아기는 술래/나비야 달아나라/조그만 꼬까신이 아장아장/나비를 쫓아가면/나비는 훠얼훨/“요걸 못 잡아?”/아기는 숨이 차서/풀밭에 그만 주저앉는다/“아기야, 내가 나비를 잡아줄까?”/길섶의 민들레가/방긋      웃는다.

ㄷ.어머니(김종상)
    들로 가신 엄마 생각/책을 펼치면/책장은 그대로/푸른 보리밭/이 많은 이랑의 어디 만큼에/호미 들고       계실까/우리 엄마는/글자의 이랑을/눈길로 타면서/엄마가 김을 매듯/책을 읽으면/싱싱한 보리 숲/글 줄      사이로/ 땀 젖은 흙냄새/엄마 목소리.

ㄹ.어린 고기들(권태웅)
    꽁꽁 얼음 밑/어린 고기들/해님도 달님도/한 번 못 보고/겨울 동안 얼마나/갑갑스럴까/꽁꽁 얼음 밑/어      린 고기들/뭣을 하고 노는지/보고 싶구나/빨리빨리 따슨 봄/찾아오너라.

ㅁ.분이네 살구나무(정완영)
    동네서 제일 작은 집/분이네 오막살이/동네에서 제일 큰 나무/분이네 살구나무/밤 사이/활짝 펴 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ㅂ.산 위에서(김원기)
   산 위에서 보면/바다는 들판처럼 잔잔하다/그러나 나는 안다/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고기들의 설렘을  /산 위에서 보면/들판은 바다처럼 잔잔하다/그러나 나는 안다/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을/산 위에 서 있으면/나는 어쩔 수 없이 순한 짐승/그러나 너는 알거야/한 마리 새처럼 날고 싶은/     내 마음의 설렘을.

ㅅ.살구꽃 핀 마을(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뉘 집을 들어서 본들 반겨 아 니 맞으리.

ㅇ.봄편지(서덕출)
   연못가에 새로 핀/버들잎을 따서요/우표 한 장 붙여서/강남으로 보내면/작년에 간 제비가/푸른 편지 보고요/조선 봄이 그리워/다시 찾아옵니다.

ㅈ.참 잘 했지(엄기원)
    울 밑에 심심풀이로/꽃씨 몇 알 뿌려 놓고/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어느 새 싹이 트고/줄기가 자라/봉숭아꽃 분꽃이/고맙다고 웃는다/그 때 꽃씨 뿌리길 참 잘 했지/날마다 메우는 나의 일기/쓰면서 쓰면서/ “에이, 일기는 뭣하러 쓴담?”/투덜댔는데/먼 훗날/그 일기 읽어 보니/온갖 기억 되살아난다//그 때 /일기 쓰길 참 잘 했지.

ㅊ.별 하나(이준관)
    별을 보았다/깊은 밤/혼자/바라보는 별 하나/저 별은/하늘 아이들이/사는 집의/쬐그만/초인종/문득/가만히/누르고 싶었다.

ㅋ.주춧돌(김종상)
   땅에 배를 깔고/온 몸으로/기둥을 받치는 돌/기둥이 바로 서야/집이 튼튼하지/돌이 받쳐주지 않으면/ 어떻게 튼튼히 서랴?/제일 낮은 자리에/엎드려 있기 때문에/모두를 높여 줄 수 있는/집을 받치는 주춧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