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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소가 간밤에 새끼를 낳았다. 엄마 아빠가 하얀 염소는 그 역시 그들의 자식임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 하얀 몸체를 지니고 있었다. 엄마 다리에 있는 몇 개의 밤색 점박이 무늬까지 닮았다. 갓난아기와는 달리 새끼 염소는 신기하게도 하루만에 뛰어다닌다. 엄마 염소도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스스로 풀을 뜯어 먹으며 일상의 생활로 돌아왔다. 의기소침해 있던 집안에 갑자기 활기가 넘친다.
   한 장의 떡잎이나 한 마리의 나방이라 할지라도,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특히 이번 하얀 새끼 염소의 탄생은, 어미와 애비 흑염소를 졸지에 잃어버린 후라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었다.
  
  몇 년 동안 키우며 정들었던 흑염소는 어이없게도 유순하기만 했던 우리 집 져먼 쉐퍼드한테 변을 당했다. 어떻게 그 높은 담을 뛰어넘어 우리 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곤히 잠든 사이, 흑염소는 제 새끼를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다가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죽은 어미 염소의 상처가 더 참혹한 걸 보니, 애비 염소를 먼저 죽인 뒤 어미 염소를 공격한 것 같았다. 얼마나 목숨 걸고 새끼를 지켰으면, 자신은 만신창이 몸이 되고 애기 염소만 살아남았을까. 다행히 애기 염소는 상처가 심하긴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 이후, 혼자 노는 애기 염소를 볼 때마다 나는 어미 염소가 생각나 서둘러 우리를 떠나곤 했다.
    어미 염소는 살았을 때도, 애비 염소와는 달리 제가 먹기 위해 새끼를 뿔로 내쳐버리는 법이 없었다. 풀을 뜯어 먹으려 하다가도 새끼가 영악스럽게 파고 들어와 고개를 디밀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곤 했다. 비켜선 어미 염소는 구름 한 번 쳐다보다가, 오물거리고 먹는 새끼 한 번 쳐다보다가 할 뿐 무심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김태길 교수의 ‘흐르지 않는 세월’에 나오는 ‘무심 선생’ 을 연상케 했다. 그때는 사슴보다 더 귀족적이고 기품 있게 보였다.
   하루 밤 사이에 엄마 아빠를 다 잃고 고아가 되어버린 애기 흑염소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가 버린 목숨의 대가로 그나마 죽지 않고 초죽음 상태로 발견된 애기 염소는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만 있을 뿐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후에야, 어느 정도 충격이 가셨는지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철망 사이를 들락거리며 장난치는 법도 없고, 내딛는 발걸음도 힘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외로운 애기 염소를 위하여 뒷집에 넘겨주었다. 혼자 사는 염소들끼리 정 나누며 살라는 염원도 함께 담아 보냈다. 그리고 다시는 짐승에게 정을 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빈 염소 집은 쓸쓸했다. 그럴 때면 ‘공연한 짓을 했구나!’ 하는 후회와 함께 나도 모르게 발꿈치를 세워  뒷집 마당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홀로 남아 있던 애기 염소의 외로운 모습을 상기하며 다시 마음을 고쳐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사는 태국 사람이 장기간 휴가를 가게 되었다며 자기 집 염소를 사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흰 염소 가족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풀을 뜯어 먹고 노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우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미와 애비 그리고 새끼까지 세 놈을 몽땅 사왔다.
   흑염소보다 귀엽기도 하고, 노는 것도 점잖아 슬슬 정이 들던 참이었다. 이쁜 놈은 골라가면서 이쁜 짓만 한다더니 이번에는 새끼까지 낳아서 기쁨을 더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새끼가 젖을 빨 때마다 자꾸만 어미젖을 들이받았다. 분명히 젖이 받히면 아플 텐데, 어미 염소는 아프다는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젖을 물리고 있었다. 애기가 젖을 물면, 철썩 엉덩이를 갈기면서 내치던 우리네 엄마들과는 판이했다.    
    
   요즘 들어 따스한 모정은커녕, 남보다 더 비정한 엄마들을 많이 본다. 제 아기를 낳아서 쓰레기통에 슬쩍 넣어버리고 다시 파티장으로 가는 여대생 엄마가 있는가 하면, 남자 친구와 애정행각을 위해서 어린 두 아들을 차와 함께 깊은 호수에 처넣어버린 젊은 엄마도 있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들 생각이 나서 더 이상 호수에서 낚시를 못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는데, 그 젊은 엄마는 법정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나이께나 먹은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자기들 키우면서 욕 봤는데, 이제 와서 왜 손자 손녀들을 또 봐줘야 하느냐며 펄쩍 뛴다. 그러면서 사우나 다니고, 취미생활 하면서 ‘품위 있게’ 늙으려 애쓴다. 한술 더 떠, ‘꺼진 불도 다시 지펴보자’며 남자 친구랑 데이트하기 바쁜 엄마들도 많다고 한다. 어찌 보면, 맹목적인 모성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린 듯하다. 이제는 오히려 ‘맹목적인 부성시대’가 도래된 듯, 오히려 아빠들의 가정 지키기가 눈물겨울 정도다. 시대의 흐름이 슬픔을 동반하는 건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제 새끼를 지켜준 흑염소와, 자신의 아픔이나 배고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가슴을 열어주는 흰 염소를 보며 잃어버린 모정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