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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같은 죽음 앞에 서서
싸늘한 석문 붙들고 아무리 불러 호곡한들
내 소리 네가 들으랴
네 소리 내가 들으랴

천 년 만 년 살아 주리라 믿었던 어머니!
이제 여든 셋에 멈추어버린 어머니의 봄날은 정녕 어디 가서 찾아야 합니까?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했던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4월 26일 새벽 6시 30분. 이제 저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죽을 땐 다들 이름 하나씩 받아 간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어머니!
평소엔 욕심이 없으시던 어머니가 어쩐 일로, ‘위암’이란 이름 하나도 모자라 ‘폐렴’이란 이름까지 덤으로 얹어 떠나셨는지요.
어머니!
어머니는 무엇이 바빠 입원하신 지 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셨습니까. 밤새 5분마다 얼음을 찾고 혀를 적시며 목마름을 다스리시던 어머니. 답답하다며 하얀 시트도 차버리고 환자복도 자꾸 벗으려하던 어머니. 어머니는 차버리고 나는 덮어주며  우리들 4월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습니다. 아, 그것이 마지막 밤이 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어머니는 물 묻은 막대 스폰지로 타들어가는 혀를 닦고 얼음으로 마른 목을 축이셨지만, 저는 그리움으로 타는 이 목마름을 무엇으로 축여야 합니까?
언제나 ‘홀로서기’를 주문처럼 외우며 외로움을 삭히신 어머니!
어머니의 벗은 무심했던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꽃과 금붕어 그리고 흙이 있는 채마밭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정성껏 가꾸시던 보랏빛 양란은 탐스런 꽃송이로 창문을 갸웃거리고, 어머니께 기쁨을 주던 금붕어는 저들의 용궁에서 활개 치며 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채마밭에서도 손수 심으신 상치며 부추, 깻잎들이 봄비 속에서 또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요.
어머니, 밭에 물 주러 갈 시간인데 어머니는 어찌 누워만 계십니까.
아파서야 귀염을 받았던 어머니!
이제 장례식이 끝나면 어머닌 재가 되어 푸른 솔 밑에 수목장으로 묻히십니다. 임종을 지켰다는 것만으로 위로받지 못하고, 자주 찾아뵈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적 슬픔은 위로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그토록 사랑하셨던 ‘베고니아’ 꽃 이름을 닮은 <베로니카>란 본명까지 받으셨으니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리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몹쓸 병명을 받고 떠나신 게 아니라, <베로니카>란 이름을 받고 다시 태어난 멋진 분이십니다. 이젠 슬픔에서 벗어나, 어머니를 고이 보내드려야 할 시간입니다.
학구파에 ‘예쁜 할머니’란 별명을 가진 어머니!
부디 근심 걱정 없는 천국에서 편안히 쉬시고, 먼저 간 오빠와 손자,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만나셔서 더 이상 외롭지 않는 세상을 사십시오.
어머니! 어머니가 제 어머니여서 감사했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둘째딸<희선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