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jpg                                            

      '생명의 전화' 제 10기 수강생을 뽑는다는 기사를 보다가, 문득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우연히 건 한 통의 전화가 친구의 생명을 살리게 된 사연이다.
   1983년 봄쯤으로 기억된다. 이민 짐을 싸기 위해 물건을 정리하다가 해묵은 수첩을 발견했다. 거기엔,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여러 사람의 이름과 전화 번호가 씌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몇몇은 이민을 떠나기 전에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뜨인 건 초등학교 단짝 친구였다. 오래 전, 길에서 우연히 부딪친 뒤로 한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라 그동안 시집을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소한 이사는 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따르릉.... 따르릉..." 한, 일곱 번쯤 벨이 울렸을까. 마음을 접고 막 수화기를 놓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여보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맥이라곤 하나도 없는 목소리. 그야말로, 다 죽어 가는 목소리였다. 자칫하면 놓칠 뻔했던 그 가느다란 목소리를 감으며, 급히 친구 이름을 댔다. 그러자, 저쪽에서 폭죽이나 터진 듯 놀라며 생기에 찬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누고?" "희선이!" "뭐어?" "야, 너 시집 안가고 거기서 뭐하노?" "그렇게 됐다!" "야! 지금 당장 만나자. 곧 미국으로 이민 간다." "뭐, 이민? 그래, 지금 바로 나가께." 단답식 대화가 탁구공 튀듯 몇 번 오고간 뒤, 우리는 역 앞 '아리랑 관광 호텔 커피샵'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리랑 관광 호텔 커피샵.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떠나보낸 곳이었다. 회전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한 사람은 들어오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 밖으로 빠져나갔다. 같은 문, 좁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시선은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방향도 저와 같지 않을까 싶었다. 밀폐된 좁은 공간을 향한 시선과 넓은 세상을 향한 시선. 거기에 따라 펼쳐지는 인생도 제각각 달라지리라.
    한 십 분쯤 지났을까. 친구가 회전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녀는 몰라보도록 세련되게 변해있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쌍꺼풀 수술까지 한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다만, 말을 아끼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어릴 때 습성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나는 금방 초등학교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재잘거렸다. 나이 서른에 이미 다 겪어버린 산전 수전 이야기와 백혈병으로 어린 아들을 잃었다는 얘기도 술술 나왔다. 여지껏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내 손을 꼭 쥐더니,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나, 사실 말이야, 조금 전에 손바닥에 약 올려놓고 입에 털어 넣기 직전이었어. 유서도 다 써 놓았구... 그런데, 곧 끊기겠지 했는데 전화벨이 계속 울리는 거야. 할 수 없이 기어나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설마, 너가 전화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자살이라니. 아니, 생명이 어떤 건데 그렇게 홀대해도 된단 말인가. 네 살배기 아들의 '오늘'을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피가 말랐는지 이 친구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우유를 사 달라고 하다가, 창 밖에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아, 참. 비가 와서 못가겠제? 내일 사 줘."하고 마음을 고쳐먹던 내 아이. 그 '내일'이 되기 전날 밤, 아이는 우유도 먹지 못하고 갔다. '오늘'이란 시간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또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그런데, 친구가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을 느낀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 두 시간에 끝날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아 친구의 소매를 끌고 거리로 나왔다.    
    봄날의 거리는 따사로웠다. 거리 어디에도 겨울의 잔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삶의 무게가 얹힌 우리의 마음만이, 연노란 나비의 가벼운 날개 짓과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 그녀 성격에 아픈 속내를 이토록 풀어내 보이는 것도 처음이지 싶었다.
   탄탄대로였던 그녀의 인생길이 꺾여지기 시작한 것은, 중매결혼을 한 이후였다. '아나벨리'를 원문으로 외우는 멋쟁이 남편은 그녀에게 카페인 없는 커피와 생활의 낭만을 요구했다. 커피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지만, 낭만은 하루 이틀에 대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녹아덴' 대신, 초등학교 때 배웠던 단시조를 읊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초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돌아누워 버렸다. 남편은 밥상 위에 장미꽃 한 송이라도 꽂기를 원했으나, 꽃꽂이 사범을 지낸 그녀로서는 된장국이 오르는 자개 밥상에 꽃꽂이를 해 올릴 수가 없었다. 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레엄 그린이 그랬던가. 사랑의 종말은 사소한 다툼에서 온다고. 다툼은 잦아졌고 등돌리며 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게다가, 삼대독자 집안에 '쓰잘 데 없는' 딸을 낳아버렸으니... "쓸 데 없는 인간, 인류에 보탰다"는 모진 말을 남기고 남편은 휑하니 나가버렸고, 한 집에 살던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말은 송곳이 되어 꽂혔다. 급기야 의리파 고모의 손에 이끌려 그 집을 나올 때, 등에 업혀 있던 아기 마저 뽑혀버렸다.
   그 이후로 그녀는 두 번 다시 아기를 만날 수 없었다. 아기가 보고 싶어 날마다 그 집 주변을 서성이고, 등기편지도 수없이 보냈건만, 돌아오는 것은 이혼해달라는 전갈뿐이었다. 절망을 느낀 그녀는 언젠가부터 수면제를 모으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곡기를 끊은 지도 거의 일주일째, 집안 식구가 다 외출한 바로 그 날 자살의 기회를 잡았다. 하필이면 그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기대한 것도 아니고, 계획한 것도 아닌 그 운명의 전화는 진정 그녀를 사랑하는 신의 메신저가 아니었을까.
   역에서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한 시간을 걸었나, 두 시간을 걸었나. 봇물처럼 쏟아내는 그녀의 이야기에 시간 개념도 없어지고 말았다. 어느 새, 해는 서산에 얹히우고 구름은 서녘 하늘에 아름다운 색채를 풀어 '오늘'이 가는 길을 꽃다이 수놓고 있었다.  
   간 길을 되짚어 오며, 나는 인생의 한 은유로 다가왔던 '회전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넓은 세상, 넓은 마음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자고. 우리를 '대한의 딸'이라 부르며, 한 뼘 집 앞마당을 쓸더라도 지구 한 귀퉁이를 쓴다고 생각하라던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겨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기에 초등학교 친구 그것도 내일 모레면 이 땅을 떠날 친구를 통해서 생명을 유예시켜 놓은 게 아니겠느냐며 되물었다. 내 절절한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아니면 서녘 하늘에 펼쳐진 아름다운 노을 때문이었을까.
   드디어 친구가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희선아, 나 배고프다. 우리 '묵자 골목'에 가서 실컷 묵자." " 야, 나도 배고프고 다리 아파 죽겠다. 우선 다방에 들어가서 반숙 하나 시켜 묵고 좀 쉬었다 가자."  나도 활짝 웃으며 되받았다. 그 날 '묵자 골목'에서 실컷 배불리 먹었던 친구는, 오늘도 인기짱 교사로 잘 살고 있다.
   그때 일을 떠올릴 때마다, 필연이 되어버린 '우연'과 전화 한 통의 의미를 되새겨보곤 한다. 인간은 '우연'을 만들지만, 신은 '필연'을 만든다. 생명운동이 따로 있나. 열린 귀에 마음문만 열면, 신이 알아서 해 주실 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죽음을 부활로 환원하는 이는 오직 그 분이시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귀를 열어두어야 겠다.
   이번만은, 남가주  '생명의 전화' 수강생 모집에 꼭 참석하려 한다. 지금이야 나도 전화를 받아주는 봉사자 입장이 되겠지만, 언젠가는 내가 '생명의 전화'에 다이얼을 돌리게 될 지 누가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