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맞아, 모처럼 대청소를 했다 사실, 풀타임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겐 연휴가 쉬는 날이 아니라 집안 대청소 하는 날이다. 부엌에 가면 부엌 일이 즐비하고, 방에 가면 방 일이 널브러져 있다. 다 끝났나 싶으면 또 거실 일이 기다리고 있다. 실내 화분들도 빼꼼히 쳐다본다. 모두가 내 손길 닿기만을 기다리니,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한 일이 거의 저녁 아홉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것도 오늘 하루 할 일이 끝난 거지, 해야 할 일이 다 끝난 게 아니다. 남자들 눈엔 안 보여도 여자들 눈에는 세세하게 보이는 게 집안일이 아닌가 싶다.  

    나는 집안일을 할 때 후딱 해치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부엌살림 정리는 대체로 빨리 하지만, 방이나 옷장 청소는 꼼지락꼼지락 하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도 거의 열 두 시간 가사노동을 치루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옷은 계절별로, 색깔별로, 용도별로 분리해야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 자주 입는 옷과 가끔 입는 옷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쉬이 끝낼 수 없다. 유행이 지났거나 일 년에 한 두 번밖에 안 입은 옷은 버림직하나 그 또한 추억 때문에 못 버리는 경우가 있다. 뿐인가. 글감을 찾을 수 있으려나 하고 신문이나 잡지책에서 오려 놓은 종이들도 확인하고 버리게 되니, 이래저래 시간이 걸린다.  

   내친 김에 어머니 장롱까지 정리하게 되었다. 값진 가구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유품이기에 안방에 들여놓고 어머니 보듯이 하고 있다.  그 속엔 어머니께서 육필로 쓰신 노래수첩과 영어 공부 노트, 내가 만들어 드린 푸른 일기장, 우리가 보내준 카드와 사진 등이 있으며 미처 못 쓰거나 못 다 입고 가신 속옷 세트까지 그대로 있다. 검버섯이 보기 흉하다며 차이나타운까지 가서 사 오신 '명약'도 열 통 중에 두 통만 쓰고 가셨다.  

   보건센터에서 '예뿐이 할머니'로 통하는 어머니는 돌아가시던 여든 셋의 연세에도 당신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꾸미셨다. 원래 '고성 삼대 미인'중의 한 명으로 불리던 어머니라, 장례식에서 영정사진을 본 친구들이 나더러 친딸이 맞느냐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허긴, 어머니 인물 반만 닮았어도 여난이 아니라 남난이 심했거나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며 어머니 장롱 정리를 하다가, 영어 공부 노트 속에 '간직되어' 있는 인쇄물을 보았다. 노트 앞표지를 넘기면 바로 펼쳐지는 겉표지 2에 하얀 봉투를 테이프로 붙이시고 그 속에 고이 접어두신 글이었다. 

   제목은 'Tomorrow Never Comes.' 

    If I knew it would be the last time that I'd see you fall asleep,   I would tuck you in more tightly and pray the Lord, your soul to keep...... 으로 시작되는 작자 미상의 글이었다. 아름답고도 슬픈 글이었다. 이런 문장도 있었다.  

    If I knew it would be the last time I'd hear your voice lifted up praise,  I would record each word and action, and play them back throughout my days. 

   If I knew it would be the last time, I would spare a minute or two,  To stop and say "I love you," instead of assuming that you knew. 

   십 년을 한결같이 다녔던 노인 센터 영어 강좌에서 받은 글인 듯싶었다. 분명히 번역도 해 주었으리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라는 당부의 글이었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 수만 있다면, 설령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더라도 후회 없는 오늘이 될 거라고 했다.  하필이면, 그 글 뒤편에는 어머니의 장례 보험 및 장례절차에 관한 내용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어머니가 하얀 봉투에 넣어 곱게 간직한 것에서 죽음을 예비하셨던 어머니 마음을 엿볼 수 있어 코끝이 찡했다. 글 끝 구절은 이랬다. 

   So hold your loved ones close today, and whisper in their ear,   That you love them very much and that you'll always hold them dear.  Take time to say "I'm sorry", "please forgive me", "thank you", "it's okay", or "I love you."  And if tomorrow never comes, you'll have no regrets about today.   

   정말 내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말들이다.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괜찮다고,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어제도 오늘도 또 내가 갖지 못할 내일까지도 내 영혼을 담아- 

   어쩌면, 한 편의 영시가 이토록 내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해줄 수 있는지 놀라웠다. 사실, 우리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 말이 무에 그리 많겠는가. 마음을 담은 말, 진실이 담긴 사랑의 고백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역시, 우리가 오늘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일밖에 없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그 사랑을 100% 신뢰하는 충만한 삶. 충만하여 더 이상 소유의 욕망을 느낄 이유조차 없는 그런 무소유의 참삶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울까. 버려서 텅 비운 무소유는 차원 높은 사람들의 몫일 뿐, 평범한 소시민인 나는 보롬달 같이 꽉 찬 무소유의 삶을 원한다. 철학 시간에 배웠던 행복의 퍼센트 공식도 욕망분의 충족 곱하기 100이 아니었던가. 

   사랑으로 채워진 충만한 삶은 누구나 꿈꾸는 복된 삶일 게다. 하지만, 모두가 꿈꾼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삶은 아니리라. 그만큼 희생과 노력과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인내심도 필요하고 때로는 오-랜 기다림까지 요구할지도 모른다.  

   어둑어둑 저녁이 오더니 이내 밤이 되었다. 카카오 스토리를 쓰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 바람이 전해준 기별이랄까. 어머니의 영혼이 한 줄기 바람처럼 불어와 싸- 하니 일러주고 가신 듯하다.  

   장롱을 닦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병상을 지키는 나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 말을 하실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간호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셨다. 어머니가 생시에 간직했던 이 아름다운 시는 오늘 어머니께서 진정 딸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의 말씀이 아닐는지.    

   오늘 힘들어도 대청소를 하긴 잘 했다. 더 정리할 것이 없었던 어머니 장롱을 다시 닦고 정리한 것은 더욱 잘한 일이다. 4년 만에 눈에 띠인 이 아름다운 시가 마치 내게 전해주려는 어머니의 말씀처럼 가슴에 울려온다. 한줄기 바람이 영혼의 숨결이라면, 나도 풍경이 되어 함께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싶다. 어머니가 계시는 저 천국까지 들릴 수 있게 높고 맑은 청아한 목소리로.                  

(5월 30일, 월요일. 날씨는 맑고 바람 좀 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