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일요일. 샌디에고 락 앤 롤 마라톤 대회의 여명이 서서히 어둠을 밀어내며 다가오고 있다. 2016년 들어 두 번 째로, 총 다섯 번째 하프 마라톤 도전이다. 작년에 풀 마라톤을 신청해 두었으나, 연습부족으로 그냥 하프에 도전하기로 했다. 무리를 하면 병이 나고 부상을 당한다. 난 늘 무리하지 않고 내 속도대로 뛸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13.1 마일은 내게 언제나 멀고 험하다.
  우리 팀 참석 인원이 20명 남짓한 것에 비해 대회 참가 인원은 32,000명. 국제 대회는 아니지만 참가 숫자만큼은 국제적 수준이다. 대회 첫 출발이 새벽 6시 15분이라, 어제 오후에  LA에서 와 하룻밤 자고 오늘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다. 불안함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어둑어둑한 거리에 러너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출발선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도 낯선 길이라, 긴 행렬 꽁무니에 붙어 따라갔다. 셔틀 버스를 타고 갈 정도로 먼 거리였으나, 워밍업 하는 셈 치고 계속 걸어서 가기로 했다. 
  출발선 근처에 이르자, 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마라톤의 열기가 훅 다가왔다. 가슴이 뛰고 흥분된다. ㄷ자 모양으로 멋있게 꾸민 출발선 장식문을 보자, 가슴이 더욱 벅차올랐다. 입가에 함박 웃음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러너들. 제 돈 내고 먼 길을 힘겹게 뛰는 마라톤의 매력은  새벽을 가르며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UPS 차량들이 우리 소지품을 받아주길 위해 알파벳 순서대로 줄 지어 서 있었다. 봉사자들의 손길이 바쁘다. 나는 내 라스트 네임 첫 글자 P가 있는 22번 차량에 짐을 맡기고 출발선을 향해 이동했다. 우리 팀 멤버들은 거의 스무 명이 왔으나, 여기저기 흩어져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마라톤은 군중 속에 섞여 홀로 뛰는 경기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다만, 함께 같은 길을 뛰다 보면 서로 의지가 되고 외롭지 않을 뿐이다. 응원 해 주는 사람 없는 인생길도 헤쳐나왔는데, 거리 곳곳에서 떠들썩하게 응원해 주는 마라톤쯤이야! 
  최영호 코치로부터 카톡이 들어 왔다. 하프와 풀 코스가 나눠지는 8마일 지점에서 기다렸다 사진을 찍을 테니 표정 관리 잘 하란다. 고맙다. 본인은 정작 무릎 재활 중이라 뛰지도 못하면서 새벽부터 봉사하러 나오셨다. 성실과 따뜻함의 표상이다. 이런 봉사자들이 있기에 모든 모임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리라.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자, 모두 입을 모아 함께 외쳐댄다. Five! Four! Three! Two! One! 출발! 와아-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지고 커트 라인별로 1000명씩 뛰쳐 나간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부지런히 뛸 일만 남았다. 힘들긴 해도 분명 끝나는 시간이 있으니 희망적이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계속 뛰기만 한다면 미리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21번 출발선에 서다 보니, 풀 마라톤 4시간 40분  페이스 메이커가 있는 21 corral에서 신현 씨랑 같이 뛰게 되었다. 신현씨는 마라톤 교실 14기 동기로 이미 풀마라톤을 뛰어본 사람이라 목표를 풀 마라톤 4시간 45분으로 잡고 있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다.  나는 하프를 2시간 30분에서 45분 정도 예상한다. 마일 당 12분대로 뛰는 셈이다.
  함께 출발한 신현씨가 미리 양해를 구한다. 1~2마일 지점에서 먼저 치고 나갈지 모른다고. 난 당연히 그러셔야죠, 하며 흔쾌히 수락했다. 시합 때는 아는 사람과 함께 뛰는 것보다는 혼자 뛰는 게 좋다. 늦거나 빨라도 부담이 없다.  
  샌디에고 코스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으며 fun run을  했다. 이번 대회는 LA 러너스 공식 대회라 스무 명 가까이 출전한데다가 타 도시에서 뛰게 되니 주변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골프 투어하듯이, 나도 내심 마라톤 투어를 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운동삼아 뛰지만, 각 대회마다 코스와 주변 경치가 달라 흥미롭다.
  4마일 지점에서 노지니씨를 만났다. 그녀는 타고난 마라톤 체질이다. 언제나 남자들과 선두팀에서 뛴다. 작년에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1년이나 남았으니 열심히 연습해서 풀 마라톤에 도전해 보자며 덜렁 풀에 신청했었다.
  하지만 웬걸? 1년이 하루같이 지나가 버리고 우리는 대책없이 대회당일을 맞게 되었다. 연습이 부족한 몇 명의 선수가 출발전에 속닥거렸다. 힘들면, 풀과 하프가 갈라지는 8마일 지점에서 하프로 들어서라고. 그런 뒤, 풀과 맞추어 적당히 시간 조절하면서 달려오다가 풀 마라톤 피니시 라인으로 들어오라고. 그렇게 하면, 풀 완주 메달과 자켓을 받을 수 있다고. 
   이런! 이럴 수가 있나? 운동하는 사람은 건전한 생각을 소유한 사람들이라 기대하고 러너스 클럽에 조인했는데. 나는 "예끼! 여보슈! 여기 매달하고 자켓 타러 왔소? 뛰러왔소? 댁이나 자알 해 보쇼!" 하고 짐짓 큰 소리 치며 귀 씻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은 깔깔대면서 웃었다. 
  변칙은 우리 클럽의 스토리 메이커 장세인씨 전매 특허다. 어느 새 몇몇 사람도 물들었나 보다. 하긴, 펀 런이 목표니, fun한  헤프닝이 많이 일어나는 것도나쁘진 않다. 변수가 있어야 더 뚜렷한 추억이 된다.
  4마일에서 만난 노지니씨가 자기도 연습 부족이라며 하프만 재미있게 뛰자고 한다. 나는 재미로 뛸 수 있지만, 노지니씨는 하프 기록도 단축할 수 있는 실력자다. 그녀는 롱비치 첫 하프 마라톤에서 2시간 6분대로 뛰어 모두를 놀래킨 사람이다. 본인은 빈혈이 일어나고 9마일에서 주저앉고 싶은 고통을 겪으며 겨우 들어왔으나, 그 기록은 어떤 여성 선수도 못 깨고 있다. 
  그런 노지니씨기에 하프만 뛰어도 기록은 나온다고 하니, 이왕 뛰는 거 하프 기록 단축이나 하라며 앞서 뛰어가라고 했다. 노지니씨가 방긋 웃으며 "그럴까?"하더니 속도를 내며 치고 나갔다. 
  다시 나 혼자 남았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홀로 뛰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자유를 만끽하며 뛴다. 연습 부족인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뛰니, 컨디션도 좋다. 푸른 하늘엔 흰구름 무늬가 예쁘기도 하다. 
 피니시 라인이 가까워질수록 응원의 열기가 대단하다. 마시는 것, 먹는 것도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봉사자들의 손길도 더욱 바빠진다. 멀리 피니시 사인이 보이고 힘내라는 응원이 스피커로 나온다. 응원해 주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려고 나도 마지막 힘을 내어 달렸 다. 
  드디어 피니시 라인이다. 내 시계로 보니 기록 시간이 2시간 36분이다. 사진까지 찍으면서 왔으니 나쁘지 않는 기록이다. 먼저 온 멤버들이 박수로 맞이해 준다. 메달을 걸고, 사진도 찍고, 잔디밭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풀 완주자들을 기다렸다. 
  한 명, 두 명, 환한 얼굴로 들어오는데 여섯 시간이 지나도 노지니씨와 황반장이 들어오지 않는다. 알고보니, 18마일 지점에서 쥐가 내려 생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프만 뛰겠다던 노지니씨가 풀로 바꾸었나 보다. 가서 도와줄 수도 없는 일. 패잔병일지라도 무사귀환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늦어도 너무 늦다. 도로  통행을 막은 싸인도 다 걷고,대회가 끝나면 회식으로 활어 횟집으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도 예약이 취소되었다. 이게 뭐람! 왜 욕심을 부려 민폐를 끼쳐! 두 시간 넘게 기다린데다가 활어 회식까지 취소되니,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나온다. 
  드디어 황반장과 노지니가 핏기 가신 얼굴로 들어온다. 쯧쯧, 그러게 왜 욕심을 부리나. 크게 화도 내지 못하는 우리들 앞에 두 사람은 머리를 조아린다. 이것도 하나의 교훈이다. 뛸 것같은 마음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한다. 활어 대신 햄버거를 먹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이것도 추억이다. 
  LA로 달려오는 두 시간 남짓한 드라이브가 즐거웠다. 북창동 순두부를 먹는 것으로, 내 다섯 번째 하프 마라톤 도전도 막을 내렸다. 다음은 10월에 있을 롱비치 마라톤이다. '날짜만 받아 놓으면 뭐 하나, 연습도 해야지.'하고 내 착한 마음이 속삭인다. 어휴, 창피.
6월 5일 일요일. 샌디에고 락 앤 롤 마라톤 대회의 여명이 서서히 어둠을 밀어내며 다가오고 있다. 2016년 들어 두 번 째로, 총 다섯 번째 하프 마라톤 도전이다. 작년에 풀 마라톤을 신청해 두었으나, 연습부족으로 그냥 하프에 도전하기로 했다. 무리를 하면 병이 나고 부상을 당한다. 난 늘 무리하지 않고 내 속도대로 뛸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13.1 마일은 내게 언제나 멀고 험하다.
  우리 팀 참석 인원이 20명 남짓한 것에 비해 대회 참가 인원은 32,000명. 국제 대회는 아니지만 참가 숫자만큼은 국제적 수준이다. 대회 첫 출발이 새벽 6시 15분이라, 어제 오후에  LA에서 와 하룻밤 자고 오늘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다. 불안함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어둑어둑한 거리에 러너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출발선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도 낯선 길이라, 긴 행렬 꽁무니에 붙어 따라갔다. 셔틀 버스를 타고 갈 정도로 먼 거리였으나, 워밍업 하는 셈 치고 계속 걸어서 가기로 했다. 
  출발선 근처에 이르자, 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마라톤의 열기가 훅 다가왔다. 가슴이 뛰고 흥분된다. ㄷ자 모양으로 멋있게 꾸민 출발선 장식문을 보자, 가슴이 더욱 벅차올랐다. 입가에 함박 웃음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러너들. 제 돈 내고 먼 길을 힘겹게 뛰는 마라톤의 매력은  새벽을 가르며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UPS 차량들이 우리 소지품을 받아주길 위해 알파벳 순서대로 줄 지어 서 있었다. 봉사자들의 손길이 바쁘다. 나는 내 라스트 네임 첫 글자 P가 있는 22번 차량에 짐을 맡기고 출발선을 향해 이동했다. 우리 팀 멤버들은 거의 스무 명이 왔으나, 여기저기 흩어져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마라톤은 군중 속에 섞여 홀로 뛰는 경기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다만, 함께 같은 길을 뛰다 보면 서로 의지가 되고 외롭지 않을 뿐이다. 응원 해 주는 사람 없는 인생길도 헤쳐나왔는데, 거리 곳곳에서 떠들썩하게 응원해 주는 마라톤쯤이야! 
  최영호 코치로부터 카톡이 들어 왔다. 하프와 풀 코스가 나눠지는 8마일 지점에서 기다렸다 사진을 찍을 테니 표정 관리 잘 하란다. 고맙다. 본인은 정작 무릎 재활 중이라 뛰지도 못하면서 새벽부터 봉사하러 나오셨다. 성실과 따뜻함의 표상이다. 이런 봉사자들이 있기에 모든 모임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리라.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자, 모두 입을 모아 함께 외쳐댄다. Five! Four! Three! Two! One! 출발! 와아-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지고 커트 라인별로 1000명씩 뛰쳐 나간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부지런히 뛸 일만 남았다. 힘들긴 해도 분명 끝나는 시간이 있으니 희망적이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계속 뛰기만 한다면 미리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21번 출발선에 서다 보니, 풀 마라톤 4시간 40분  페이스 메이커가 있는 21 corral에서 신현 씨랑 같이 뛰게 되었다. 신현씨는 마라톤 교실 14기 동기로 이미 풀마라톤을 뛰어본 사람이라 목표를 풀 마라톤 4시간 45분으로 잡고 있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다.  나는 하프를 2시간 30분에서 45분 정도 예상한다. 마일 당 12분대로 뛰는 셈이다.
  함께 출발한 신현씨가 미리 양해를 구한다. 1~2마일 지점에서 먼저 치고 나갈지 모른다고. 난 당연히 그러셔야죠, 하며 흔쾌히 수락했다. 시합 때는 아는 사람과 함께 뛰는 것보다는 혼자 뛰는 게 좋다. 늦거나 빨라도 부담이 없다.  
  샌디에고 코스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으며 fun run을  했다. 이번 대회는 LA 러너스 공식 대회라 스무 명 가까이 출전한데다가 타 도시에서 뛰게 되니 주변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골프 투어하듯이, 나도 내심 마라톤 투어를 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운동삼아 뛰지만, 각 대회마다 코스와 주변 경치가 달라 흥미롭다.
  4마일 지점에서 노지니씨를 만났다. 그녀는 타고난 마라톤 체질이다. 언제나 남자들과 선두팀에서 뛴다. 작년에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1년이나 남았으니 열심히 연습해서 풀 마라톤에 도전해 보자며 덜렁 풀에 신청했었다.
  하지만 웬걸? 1년이 하루같이 지나가 버리고 우리는 대책없이 대회당일을 맞게 되었다. 연습이 부족한 몇 명의 선수가 출발전에 속닥거렸다. 힘들면, 풀과 하프가 갈라지는 8마일 지점에서 하프로 들어서라고. 그런 뒤, 풀과 맞추어 적당히 시간 조절하면서 달려오다가 풀 마라톤 피니시 라인으로 들어오라고. 그렇게 하면, 풀 완주 메달과 자켓을 받을 수 있다고. 
   이런! 이럴 수가 있나? 운동하는 사람은 건전한 생각을 소유한 사람들이라 기대하고 러너스 클럽에 조인했는데. 나는 "예끼! 여보슈! 여기 매달하고 자켓 타러 왔소? 뛰러왔소? 댁이나 자알 해 보쇼!" 하고 짐짓 큰 소리 치며 귀 씻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은 깔깔대면서 웃었다. 
  변칙은 우리 클럽의 스토리 메이커 장세인씨 전매 특허다. 어느 새 몇몇 사람도 물들었나 보다. 하긴, 펀 런이 목표니, fun한  헤프닝이 많이 일어나는 것도나쁘진 않다. 변수가 있어야 더 뚜렷한 추억이 된다.
  4마일에서 만난 노지니씨가 자기도 연습 부족이라며 하프만 재미있게 뛰자고 한다. 나는 재미로 뛸 수 있지만, 노지니씨는 하프 기록도 단축할 수 있는 실력자다. 그녀는 롱비치 첫 하프 마라톤에서 2시간 6분대로 뛰어 모두를 놀래킨 사람이다. 본인은 빈혈이 일어나고 9마일에서 주저앉고 싶은 고통을 겪으며 겨우 들어왔으나, 그 기록은 어떤 여성 선수도 못 깨고 있다. 
  그런 노지니씨기에 하프만 뛰어도 기록은 나온다고 하니, 이왕 뛰는 거 하프 기록 단축이나 하라며 앞서 뛰어가라고 했다. 노지니씨가 방긋 웃으며 "그럴까?"하더니 속도를 내며 치고 나갔다. 
  다시 나 혼자 남았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홀로 뛰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자유를 만끽하며 뛴다. 연습 부족인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뛰니, 컨디션도 좋다. 푸른 하늘엔 흰구름 무늬가 예쁘기도 하다. 
 피니시 라인이 가까워질수록 응원의 열기가 대단하다. 마시는 것, 먹는 것도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봉사자들의 손길도 더욱 바빠진다. 멀리 피니시 사인이 보이고 힘내라는 응원이 스피커로 나온다. 응원해 주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려고 나도 마지막 힘을 내어 달렸 다. 
  드디어 피니시 라인이다. 내 시계로 보니 기록 시간이 2시간 36분이다. 사진까지 찍으면서 왔으니 나쁘지 않는 기록이다. 먼저 온 멤버들이 박수로 맞이해 준다. 메달을 걸고, 사진도 찍고, 잔디밭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풀 완주자들을 기다렸다. 
  한 명, 두 명, 환한 얼굴로 들어오는데 여섯 시간이 지나도 노지니씨와 황반장이 들어오지 않는다. 알고보니, 18마일 지점에서 쥐가 내려 생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프만 뛰겠다던 노지니씨가 풀로 바꾸었나 보다. 가서 도와줄 수도 없는 일. 패잔병일지라도 무사귀환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늦어도 너무 늦다. 도로  통행을 막은 싸인도 다 걷고,대회가 끝나면 회식으로 활어 횟집으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도 예약이 취소되었다. 이게 뭐람! 왜 욕심을 부려 민폐를 끼쳐! 두 시간 넘게 기다린데다가 활어 회식까지 취소되니,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나온다. 
  드디어 황반장과 노지니가 핏기 가신 얼굴로 들어온다. 쯧쯧, 그러게 왜 욕심을 부리나. 크게 화도 내지 못하는 우리들 앞에 두 사람은 머리를 조아린다. 이것도 하나의 교훈이다. 뛸 것같은 마음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한다. 활어 대신 햄버거를 먹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이것도 추억이다. 
  LA로 달려오는 두 시간 남짓한 드라이브가 즐거웠다. 북창동 순두부를 먹는 것으로, 내 다섯 번째 하프 마라톤 도전도 막을 내렸다. 다음은 10월에 있을 롱비치 마라톤이다. '날짜만 받아 놓으면 뭐 하나, 연습도 해야지.'하고 내 착한 마음이 속삭인다. 어휴, 창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