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라스베가스 여행 초대를 받았다. 선남선녀가 있어 서로 연결시켜 주었더니 보답을 하려는듯 처녀 어머니랑 나를 초대했다. 우리도 흔쾌히 축하해 주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일정은 2박 3일. 12월 23일(화) 저녁 여덟 시에 출발하여 25일(목) 오후에 돌아오는 걸로 짧게 잡았다. 다들 일 하는 사람인데다가 연말이라 시간에 쫓겼기 때문이다. 코리아타운에서 라스베가스까진 차로 겨우 다섯 시간 거리지만, 특별히 갈 일이 없다보니 거의 5-6년만에 간다. 기프트샵을 할 때, 라스베가스 쇼에 갔다오곤 처음이다.
  밤에 출발해서 바깥 구경은 포기하고 대신 잠을 좀 자 두기로 했다. 잠시 졸았나 싶었는데 어느새 네온이 불야성을 이루는 라스베가스다. 마음이 벌써 붕 떤다.
  우리가 든 곳은 2008년도에 신축한 Palazzo 호텔로 오성 특급 Venetian 호텔과 붙어있었다. Palazzo 호텔 객수는 3,068, Venetian 호텔 객수는 4,049 개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Venetian 호텔이 이태리 명화로 화려하게 치장한 반면, Palazzo는 공작을 주제로 모든 실내장식을 꾸몄다.
  우리 집에 공작을 기르고 있어 유난히 눈에 친근하게 들어왔다. 원래 공작은 색깔에 따라 백 팔십 다섯 가지로 분류되지만, 우리 집엔 열 네 가지 뿐이다. 미국 동부에 공작 협회가 있어 전문 분양자 명단이 나오는데 캘리포니아 안에서는 우리를 위시해서 열 여덟 명이다. 색깔별로 콜렉션하는 사람들은 서로 연락해서 사고 판다. 잡지도 격월간으로 나오고 일 년에 한번 컨퍼런스가 있어 세미나나 모범 농장 방문도 가능하다.
  Palazzo는 오직 흰색 공작으로만 장식을 했다. 흰색이 섞이면 모든 공작새 이름 끝에 '파이'가 붙는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화려한 공작새는 '인디안 불루'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흰색 깃털이 섞이게 되면 '인디안 불루 파이'가 된다.
  공작 이름도 다 외우기 전에 잡지사에서 우리 집에 취재를 와, '공작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남편 사진과 함께 기사가 크게 났다.  팔십 마리 공작이 죽고 팔고 하는 사이, 이제 이 삽십 마리만 남아, 지금은 '공작의 아버지'란 말듣기가 무색하다. 잠시, 아름다운 공작 장식에 홀려 공작 이야기가 길어졌다.
  라스베가스는 밤의 도시다. 1905년 사막에 신기루처럼 세워진 라스베가스는 그야말로 사막의 기적이다. 저마다 독특한 양식의 호텔 네온사인이 눈부시다. 더우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장식은 여늬 때보다 화려하다. 오가는 사람들도 각종 인종들로 섞여 마치 거대한 어항 속 열대어 같다. 밤의 열기와 오가는 사람들의 생동감에 휩싸여 무슨 대박이라도 터뜨릴 조짐이다.
  거의 밤 한 시가 다 되어 가지만 우리는 부푼 꿈을 안고 슬랏머신 앞에 앉았다. 같이 간 처녀 엄마 제인은 이 머신 저 머신 옮겨다니며 아주 즐기는 눈치다. 십 년만에 처음이란다. 언제 다시 여기 오겠느냐며 새벽 네 시가 되도록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카지노에서는 오래 앉아 있다고 많이 잃는 것도 아니다. 1센트 짜리로 밤새껏 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같이 속전속결을 하는 사람은 $1짜리 머신 앞에 앉아 잃든 따든 빨리 끝난다. 얼마를 Palazzo에 '도네이션' 하고 왔는지는 잠시 비밀에 붙여두기로 하자.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자는 둥 마는 둥 아침 일찍 프리미엄 아웃렛 샤핑길에 나섰다. 가방으로 유명한 MK 선그라스 하나와 티 셔츠 두 장, 털모자 두 개를 샀다. 말은 안 해도 쇼핑을 먼저 했으면 물건이라도 남았을 텐데... 하는 눈빛이 서로 역력하다.
  그러나 환락과 도박의 도시에 놀러와서 환락은 몰라도 도박(?)을 한 번도 안 해보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독특한 양식의 호텔과 바람에 나부끼는 팜트리를 보며 오이스터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해물 요리를 먹었다. 사람들 앞에서  직접 음식을 해 주는 요리사 손놀림도 일품 구경거리였다.
  휘황찬란한 네온 거리에 사람들이 물결처럼 밀려오고 물결처럼 밀려간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진다. 잠시 꿈만 같고, 꿀맛 같은 2박 3일간의 휴식. 라스베가스의 짧은 여행은 또 하나의 추억을 안겨준 채 차창 뒤로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