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 디, 어- 결전의 날이다. 2015년 2월 1일 일요일. 헌팅톤 비치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 공기는 맑고 춥지도 덥지도 않아 달리기 딱 좋은 날씨다. 새벽 네시 반, 뱅크 오브 아메리카 주차장에 모여 삼삼오오 카풀로 대회장을 향해 출발했다. 설레고 떨리는 맘, 가눌 길 없다. 하프 마라톤 2만명, 풀 마라톤 5천 명이 출전한단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다. 한결같이 설레는 표정이다. 우리 런클팀은 하프와 풀 합해서 열 두명, 오붓한(?) 편이다. 회원수 300명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지 러너팀은 출전 선수만 150여 명이란다. 본부로부터 텐트 칠 자리도 스타트 라인 가까운 곳으로 얻어 부러움을 샀다. 다행히 우리도 함께 텐트를 사용하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끝나고 난 뒤에는 오뎅국까지 들고 가시라며 권한다. 한인 마라토너의 진한 우정이다.
  풀 마라톤은 여섯 시 삼십 분에 출발하고, 하프 마라톤은 일곱 시 삼십 분에 출발한다. 마침, LA에서 New York까지 대륙횡단에 도전하는 강명구선생 환송식이 있었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장장 3,150마일을 달리는 대장정이다. 그것도 홀로, 자기가 고안해 낸 유모차 카트에 초간단 생필품만 싣고 달릴 거란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경이롭게 쳐다보는데, 그의 표정은 흥미로운 듯 여유만만하다. 미소 띤 얼굴이지만, 결의 또한 굳은 표정이다. 우리는 기념 사진을 찍고, 그 분의 무사귀환을 위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이지 러너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최영호님이 KT 테잎을 발바닥과 무릎에 붙여주었다. 에너지 젤도 두 개 주셨다. 처음에 하나 먹고, 9마일 쯤에 하나 먹으라고 이른다.
  여섯 시 삼십 분, 드디어 미국 국가가 새벽 하늘에 울려퍼졌다. 자못 분위기가 엄숙하다. 국가가 끝나자, 이내 "와아-"하는 함성이 하늘을 찌른다. 연이어 풀 마라톤 선수들이 출발 신호와 함께 일제히 뛰쳐 나간다. 가슴이 두근두근, 열기가 화기가 되어 오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침뜸을 두 번이나 맞아가며  아픈 부위도 어느 정도 다스렸겠다, 준비는 끝났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몇 시간 뒤에는 이 또한 '끝나 있으리라' 하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재깍재깍. 쿠웅쿠웅. 시간은 일곱시 반을 향해 잘도 간다. 잡담을 나누며 애써 딴청을 부려보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일곱 시 삼십 분. 하프 마라톤 출발 시간이다. 다시 한 번 미국 국가가 울려퍼졌다. 2시간 45분 페이스 메이커를 찾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2시간 3,40분대로 뛸 회원을 위해 페이스 메이크로 나선 황반장님이 옆에 있어 마음이 놓였다. 미국 국가가 끝났다. 출바알! 우우-소떼처럼 선수들이 몰려 나간다. "천천히 뜁시다, 저 사람들, 처음엔 저리 빨리 뛰어 나가도 나중에는 힘들어서 다 걸어요." 황반장님이 평소에 워밍업하듯 천천히 뛰며 격려해주신다. 쿵덩거리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1마일쯤 뛰어가니, 응원 군중 속에 딸아이와 손녀가 보였다.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번쩍 들어 굳은 결의를 표했다. 저희들도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기도 하지만, 생애 최초로 하프 마라톤에 도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했었다.
  이젠 앞만 보고 뛰어가야 한다. 내 앞으로 누가 뛰어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속도대로 뛰었다. 뛸 만했다. 물은 2마일마다 마시기로 했다. 푸른 파도는 넘실대고 하얀 포말은 춤추듯 출렁인다. 기분이 상쾌하니 나도 슬슬 워밍업이 된다. 그런데 겨우 2마일 지났는데, 벌써 걷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조랑말 깡충대듯 즐기며 뛰는 사람도 있다. 같은 길 다른 표정이다.
  한참 뛰다보니, 어느 새 반환점을 돌아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언덕이 완만해서 다행이다. 나도 반환점을 돌았다. 약간의 내리막길로 해안길이다. 소금기 묻은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같은 클럽 멤버 중, 장세인씨는 흔적이 없고 저만치 앞서 전홍준씨가 걸어가고 있다. 7마일까지는 엄청 빨리 뛰고 그 다음부터는 주로 걷는다더니 벌써 지친 것인가. 황반장님이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전홍준씨랑 같이 뛰어줄 모양이다.
  이제부터 혼자만의 고독한 독주다. 8마일 지점부터는 어느 정도 속도가 붙었다. 9마일 지점에서 에너지 젤과 물을 마신 뒤, 속도를 올렸다. 땀이 흐를 만하면,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불어와 씻어 주었다. 땀을 닦으려고 끼고 왔던 장갑도 벗어버렸다. 더 이상 검은 장갑의 여인이 아니다.
  10마일 지점까지 2시간 15분짜리 페이스 메이커보다 더 빨리 뛰었다. 물을 마시고 있는데, 페이스 메이커는 물도 마시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순간, 따라 붙을까 하다가 "아서라, 욕심은 금물! 아직도 3마일이나 남았잖냐?"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너무 빨리 들어가면 다 까무러칠 일,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다시 마일당 12분대로 뛰었다.
  피니쉬 라인에 가까울수록 거리의 응원수도 늘어나고 응원소리도 우렁차다. 음식 역시, 바나나도 나오고, 오렌지도 나오고 먹을 게 점점 더 많아진다. 오렌지 두 쪽을 먹으니 입 안이 개운했다. 물과 드링크를 마시면서 뛰어서 그런지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다. 선수들은 마지막 속도를 올리며 내 옆을 스쳐갔다.
  1마일쯤 남았을까, 오른 쪽 응원석에서 딸과 손녀 모습이 보였다. 손을 번쩍 들어 장갑을 흔들며 무사귀환(?)을 알렸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왼쪽 군중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외쳐 부른다. 우리 클럽의 양회장님 부부와 노지니씨 내외다. 환히 웃으며 응원에 답했다. 군중 속에 묻혀오는 노란 모자가 얼마나 반가왔을까. 롱비치 마라톤 응원할 때의 애타던 내 마음과 똑 같겠지.
  드디어 피니쉬 라인이다. 오른 발을 내밀어 힘차게 밟았다. 2시간 31분 55초. 쓰러질 줄 알았는데 멀쩡하다. 영광의 무사귀환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76세인 홍사일님은 자기 연령대에서 2위를 했고 서상호 코치외 여러 분이 종전의 개인기록을 갱신했다. 72세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81세로 자기 연령대 1등을 한 백인 할머니도 만났다.  그 분 기록은 하프 마라톤 2시간 14분이었다. 여든 한 살에 하프 완주하는 것도 대단한데 연령별 일등이라니. 정말 경이롭다.
  역시 '고통은 잠시나 긍지는 영원하다!' 2015년 2월 1일. 미꾸라지가 용 되고, 용이 승천한 오늘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  

  대회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다. 한결같이 설레는 표정이다. 우리 런클팀은 하프와 풀 합해서 열 두명, 오붓한(?) 편이다. 회원수 300명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지 러너팀은 출전 선수만 150여 명이란다. 본부로부터 텐트 칠 자리도 스타트 라인 가까운 곳으로 얻어 부러움을 샀다. 다행히 우리도 함께 텐트를 사용하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끝나고 난 뒤에는 오뎅국까지 들고 가시라며 권한다. 한인 마라토너의 진한 우정이다.
  풀 마라톤은 여섯 시 삼십 분에 출발하고, 하프 마라톤은 일곱 시 삼십 분에 출발한다. 마침, LA에서 New York까지 대륙횡단에 도전하는 강명구선생 환송식이 있었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장장 3,150마일을 달리는 대장정이다. 그것도 홀로, 자기가 고안해 낸 유모차 카트에 초간단 생필품만 싣고 달릴 거란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경이롭게 쳐다보는데, 그의 표정은 흥미로운 듯 여유만만하다. 미소 띤 얼굴이지만, 결의 또한 굳은 표정이다. 우리는 기념 사진을 찍고, 그 분의 무사귀환을 위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이지 러너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최영호님이 KT 테잎을 발바닥과 무릎에 붙여주었다. 에너지 젤도 두 개 주셨다. 처음에 하나 먹고, 9마일 쯤에 하나 먹으라고 이른다.
  여섯 시 삼십 분, 드디어 미국 국가가 새벽 하늘에 울려퍼졌다. 자못 분위기가 엄숙하다. 국가가 끝나자, 이내 "와아-"하는 함성이 하늘을 찌른다. 연이어 풀 마라톤 선수들이 출발 신호와 함께 일제히 뛰쳐 나간다. 가슴이 두근두근, 열기가 화기가 되어 오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침뜸을 두 번이나 맞아가며  아픈 부위도 어느 정도 다스렸겠다, 준비는 끝났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몇 시간 뒤에는 이 또한 '끝나 있으리라' 하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재깍재깍. 쿠웅쿠웅. 시간은 일곱시 반을 향해 잘도 간다. 잡담을 나누며 애써 딴청을 부려보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일곱 시 삼십 분. 하프 마라톤 출발 시간이다. 다시 한 번 미국 국가가 울려퍼졌다. 2시간 45분 페이스 메이커를 찾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2시간 3,40분대로 뛸 회원을 위해 페이스 메이크로 나선 황반장님이 옆에 있어 마음이 놓였다. 미국 국가가 끝났다. 출바알! 우우-소떼처럼 선수들이 몰려 나간다. "천천히 뜁시다, 저 사람들, 처음엔 저리 빨리 뛰어 나가도 나중에는 힘들어서 다 걸어요." 황반장님이 평소에 워밍업하듯 천천히 뛰며 격려해주신다. 쿵덩거리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1마일쯤 뛰어가니, 응원 군중 속에 딸아이와 손녀가 보였다.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번쩍 들어 굳은 결의를 표했다. 저희들도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기도 하지만, 생애 최초로 하프 마라톤에 도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했었다.
  이젠 앞만 보고 뛰어가야 한다. 내 앞으로 누가 뛰어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속도대로 뛰었다. 뛸 만했다. 물은 2마일마다 마시기로 했다. 푸른 파도는 넘실대고 하얀 포말은 춤추듯 출렁인다. 기분이 상쾌하니 나도 슬슬 워밍업이 된다. 그런데 겨우 2마일 지났는데, 벌써 걷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조랑말 깡충대듯 즐기며 뛰는 사람도 있다. 같은 길 다른 표정이다.
  한참 뛰다보니, 어느 새 반환점을 돌아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언덕이 완만해서 다행이다. 나도 반환점을 돌았다. 약간의 내리막길로 해안길이다. 소금기 묻은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같은 클럽 멤버 중, 장세인씨는 흔적이 없고 저만치 앞서 전홍준씨가 걸어가고 있다. 7마일까지는 엄청 빨리 뛰고 그 다음부터는 주로 걷는다더니 벌써 지친 것인가. 황반장님이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전홍준씨랑 같이 뛰어줄 모양이다.
  이제부터 혼자만의 고독한 독주다. 8마일 지점부터는 어느 정도 속도가 붙었다. 9마일 지점에서 에너지 젤과 물을 마신 뒤, 속도를 올렸다. 땀이 흐를 만하면,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불어와 씻어 주었다. 땀을 닦으려고 끼고 왔던 장갑도 벗어버렸다. 더 이상 검은 장갑의 여인이 아니다.
  10마일 지점까지 2시간 15분짜리 페이스 메이커보다 더 빨리 뛰었다. 물을 마시고 있는데, 페이스 메이커는 물도 마시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순간, 따라 붙을까 하다가 "아서라, 욕심은 금물! 아직도 3마일이나 남았잖냐?"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너무 빨리 들어가면 다 까무러칠 일,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다시 마일당 12분대로 뛰었다.
  피니쉬 라인에 가까울수록 거리의 응원수도 늘어나고 응원소리도 우렁차다. 음식 역시, 바나나도 나오고, 오렌지도 나오고 먹을 게 점점 더 많아진다. 오렌지 두 쪽을 먹으니 입 안이 개운했다. 물과 드링크를 마시면서 뛰어서 그런지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다. 선수들은 마지막 속도를 올리며 내 옆을 스쳐갔다.
  1마일쯤 남았을까, 오른 쪽 응원석에서 딸과 손녀 모습이 보였다. 손을 번쩍 들어 장갑을 흔들며 무사귀환(?)을 알렸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왼쪽 군중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외쳐 부른다. 우리 클럽의 양회장님 부부와 노지니씨 내외다. 환히 웃으며 응원에 답했다. 군중 속에 묻혀오는 노란 모자가 얼마나 반가왔을까. 롱비치 마라톤 응원할 때의 애타던 내 마음과 똑 같겠지.
  드디어 피니쉬 라인이다. 오른 발을 내밀어 힘차게 밟았다. 2시간 31분 55초. 쓰러질 줄 알았는데 멀쩡하다. 영광의 무사귀환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76세인 홍사일님은 자기 연령대에서 2위를 했고 서상호 코치외 여러 분이 종전의 개인기록을 갱신했다. 72세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81세로 자기 연령대 1등을 한 백인 할머니도 만났다.  그 분 기록은 하프 마라톤 2시간 14분이었다. 여든 한 살에 하프 완주하는 것도 대단한데 연령별 일등이라니. 정말 경이롭다. 나와 동갑이면서 두 시간 십 칠분 대를 끊은 우리 팀의 호프  임정숙씨를 불러 그 분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둘 다 내 마라톤의 멘토로 삼고 싶어서였다. 역시 '고통은 잠시나 긍지는 영원하다!' 

  2015년 2월 1일. 미꾸라지가 용 되고, 용이 승천한 오늘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