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일요일 낮 열 두 시, 대한 장의사. 다시 어머니를 뵈었다. 친구 아버님 연도 바치러 왔다가 뵙는 길이다. 도심 속에 누워 있는 어머니. 눈은 감으셨지만, 가슴으로 지상의 소리를 듣고 계신다. 삶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소리, 저벅이는 발자욱 소리와 아스팔트를 구르며 달려가는 차량소리를 어머니는 퍽도 사랑하셨다. 색채 없는 그림자처럼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가 거두어진 노년의 삶을 어머니는 그렇게 홀로 이겨내셨다.

   "홀로서기,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주문처럼 외울 때마다 내 가슴엔 비수가 꽂혔다. 어머니의 그 다짐은 생을 달관한 노스님의 법문이 아니라, 킬리만자로에 홀로 사는 표범처럼 처절한 고독의 절규로 들렸다.
 

  어머니는 딱 한 번, "너희들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 죽고난 뒤에 후회할 끼데이-"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가 퍽 낯설었다. 어머니는 자식들 가슴에 못 박는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 줄로 알았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바쁜데 이렇게 와 줘서 고맙데이!" 해야 맞다. 아니, 바쁘면 자주 안 와도 된다고 해야 진짜 우리 어머니다. 누구보다 희생 정신이 강하고 일생을 자식 위주로 살아오신 어머니가 아니던가. 반성은커녕, 미국 와서 어머니가 변하셨나 싶어 오히려 내가 서운했다.
 

  섭섭다 못해 터져나온 어머니의 일성은 결국 예언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 문구가 맞았다. '나무는 쉬고자 하나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은 효도를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건 우리가 공자 맹자를 알기 전부터 어머니가 즐겨 읊던 문구다.
 

  우리가 방치하고 방심한 사이, 어머닌 어느 새 먼 길 차비를 하고 계셨던 거다. 늙으면 다 산 귀신이 된다더니, 어머닌 당신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 못함을 알고 계셨나 보다. 청개구리가 비 오는 날만 우는 게 아니라, 마른 하늘 아래서도 운다는 걸 그때사 알았다.
 

  어머니를 바람결에 뿌리기엔 너무 아쉬워 수목장을 하기로 했다. 소나무와 장미로 둘러쳐진 화원 안이라 예쁘기도 하고 평소에 꽃을 사랑하셨던 분이라 어머니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더우기, 동판에 이름까지 새겨준다니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큰 위로가 된다. 어머니도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동의하셨다.
 

  평소에 건강했던 어머니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이십 여년간 돌보아주던 주치의는 병명이 판명나기 전까지 소화제만 줬다. 배를 누르면 아프다는 하소연에 "나도 누르면 아파요"하는 핀잔만 주더란다. 그러나 어머니는 의사가 조금 변한 거 같다는 말만 하셨을 뿐, 크게 원망하진 않으셨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주치의에게 의지하셨다. 다른 의사를 통해 위암이란 판정을 받고도, "갈 때는 다 이름 하나 받고 간단다"하고 애써 서운한 마음을 감추셨다. 그게 바로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어머니의 인성이요, 참모습이다.
 

  아, 나는 끝까지 불효막심한 청개구리다. 어머닌 왜 내가 짜 놓은 '착한 어머니' 프레임에 꼭 맞아야 하느냐구. 어머니도 외로움 타는 소녀였고 사랑 받고 싶은 여자였다는 걸 왜 몰랐을까. 하지만, 가슴을 치면 무엇하나. 바람에 나무는 흔들리고 부모는 가고 없는데.
 

  그러나,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일이다. 병원에서 생활한 그 한 달간은 어머니와 함께 지낸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만약'이란 가정하에, 이승의 숙제를 다 풀고 가셨다. 장례 방법이며, 수의며, 부고를 알려줘야 할 친구들까지. 그리고 덧붙이셨다. 고생 시켜서 미안하다고. 대신, 만약에 내가 죽으면 천국에서라도 '따따불' 복을 주겠다고. 나는 그 약속만은 꼭 지켜달라며 농으로 받았다. 어머니의 희미한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생전엔, 빛도 이름도 없이 살다 간 우리 어머니. 돌아가셔서는 '무명용사'가 되어 비석에 이름 석 자 남기셨다. 어머니 이름을 점자 더듬 듯, 가만히 짚어 본다. Soo Yon Chi. 당신의 한국 이름, 김수연이 아닌 남편 성을 따른 이국의 낯선 영어 이름으로. 2년 사이, 어머니 뒤로도 무명용사들 이름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고요할 뿐이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어머니의 문구만 나무에 걸린 연처럼 가슴에서 팔랑댄다. '나무는 쉬고자 하나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은 효도를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