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타이밍이다. 그로부터 결별 권유를 받은 날, 하필이면 '세상의 모든 명언'이 '사랑'이란 키워드를 들고 나를 찾아 왔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흐르는 거'란다.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실체를 보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보고 사랑한 것이다.'
  '이별의 슬픔은 다른 사랑으로 치유가 가능하다.' 
 
   이별의 슬픔이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 될 수 있다는 말은 퍽이나 희망적이다. 하지만, 그건 슬픔이나 아픔을 희석시켜주는 위안에 불과할 뿐, 시간에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어 있으니까. 
   절반의 희망과 절반의 절망이 공유하는 하루. 혹시나 하고 기웃대다, 역시나 하고 돌아설지라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희망에 승부수를 둔다. 20년간의 서툰 사랑은 연습 게임이었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는 나의 권유는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그의 귓등을 스쳐갔다. 

   잘 살아보자고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외롭게 만든 건 절반의 책임이다. 난 늦게나마 그 절반의 책임을 지고 싶었다.  하지만, 기울어 버린 사랑의 저울. 몸도, 마음도, 하나뿐인 심장까지도 '새 사랑' 몫이다. 이제 만난 지 겨우 2개월 남짓, 그들에겐 바로 허니문 시즌이다.

   사실, 연애란 감정은 알몬드 꽃처럼 언제나 피고 지다 바람이 불면 꽃잎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이라 믿었다. 대신, 가정이란 뿌리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거기 있는  '존재의 믿음' 그 자체라 생각했다. 가정이란 중심축을 두고 함께 타던 시이소오. 삐걱거릴  때가 왜 없겠는가.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 갈 때도 있지만, 늘 같이 타던 시이소오요 놀이터였다. 그러다, 해질 무렵이면, 함께 들어서던 '우리 집'이었다.  어둠이 오고, 이 집 저 집 전등불이 켜지면 어둔 맘에도 촛불 하나 밝혀져 또 하루가 평화로이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시이소오 놀이도 그만하잔다. 절망을 느낄 때면, 내가 먼저 그런 말을 꺼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화가 많이 났나 보다!' 하고  넘어가던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당부했었다. 살다가 다툴 일이 생겨도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말자고. 
늘 낭만적 사랑의 환상에 잡혀있던 내겐 좀 뜨악하게 들렸다. '좋아서 살자고 만났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담! 이해하면 되지!'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역전된 상황. 
    처음에는 수용할 수 없었지만, 상황은 이해가 갔다. 직장 거리 관계로 집을 떠나 있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까.그는 넓은 땅이 로망이었기에,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을 은퇴 이후의 터전으로 잡았다. 한편, 난 은퇴를 십 년이나 멀리 둔 처지이고 내 직장은 특성상 고급 도심에 있었다. 
   25년간 다니던 직장 터전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터.  아침 저녁 4시간의 운전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그 즈음, 개스비는 갤런당 4불 50전을 오르락거리고 시외 기차삯은 한달에 400불을 육박하기 시작했다. 기차 출근으로 바꾸어 새벽 6시 30분에 나가 밤 11에 오는 생활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그때 마침, 동갑내기 성당 친구가 여분의 방이 있다며 룸메이트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 왔다. 
렌트비도 기차삯 정도만 받겠단다. 위치도 직장 20분 거리에, 우리 성당 바로 옆이다. 그는 주일마다 성당에 오니, 얼굴은 매 주 보게 되는 셈이다.  미사 끝나고, 밥 먹고, 마켓 보고 집에 들어가면 된다. 
별로 마다할 이유가 없는 조건으로 서로 합의 하에 주말 부부가 되었다. 이렇듯, 상황의 시작은 별 거 아니었다. 

   2년이란 생활이 흘렀다. 그 사이, 주말이 아니라 2주 부부가 되기도 하고 가끔 이벤트가 있을 때면 주일까지 반납하고 3주 혹은 한 달 부부가 돼야할 때도 있었다. 불만이라면 그것이 불만이었을까. 하지만, 우리 나이쯤 되면, 부부란 꽃의 열기가 아니라 잎의 온기로 살아가는 거 아닌가. 강 하류에 이른 부부인만치 '믿거니'하고 사는 거지, 뭐 그리 원초적 본능에 매달려 사나 싶어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건 나만의 소녀적 감상이요 낭만적 믿음이었나 보다. 
   1차 열애 사건은 작년에 터졌다. 이중 국적 문제를 핑계삼아 한국에 두 달간 나가 있는 사이,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를 50년간 해바라기 해 온 순정파 여자다. 만나서 놀고 온 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카톡 사랑을 해 온 둘은 매년 오월의 만남까지  예약해 둔 상태였다. 1차 열애 사건은 한국 나가는 걸 포기하는 조건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이중 국적 서류 문제로 계속 비밀 전화를 이어갔다. 믿음이 깨진 부부 사이엔 점차 틈이 벌어졌다. 악재는 단체 입장이라던가. 
   2차 열애 사건은, 올초에 일어난 일이다. 옛날에 같이 살자고 그에게 목숨 걸었던 여자를 35년만에 뜻밖의 모임에서 만나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인생 마지막 선물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유부남이면 어떻고, 유부녀면 어떠랴, '운명적 사랑'이라며 살갑게 다가오는 여자. 게다가, 식당을 운영할 정도로 음식솜씨가 뛰어나다. 바둑으로 쳐도, 그녀의 완벽한 불계승이다. 
   그런데 1차 사건이 있은 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다시 2차 열애 사건이 일어나니, 심경에 변화가 왔다. 마귀의 현혹함인지, 아니면 신의 선함인지 알 수가 없다. 왠지, 상황에 대한 정상 참작이 되는 거였다. '외로웠나 보다!'하는 측은지심이 생겼다, 한 편으론, ‘그가 연애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행위에 빠진 것에 나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자책감이 생겼다. 문득, 이준관의 <나비>라는 동시가 떠올랐다.  
 
- 들길 위에/ 혼자 앉은 민들레/ 그 옆에/ 또 혼자 앉은 제비꽃/ 그것은 디딤돌/ 나비 혼자 딛고 가는/ 봄의 디딤돌 - 
 
   아름다운 꽃도 나비에게 있어 한갖 디딤돌이라는 자해석이 들었다. 짧은 동시에 세 번이나 들어간   '혼자'라는 단어도 퍽 쓸쓸히 들렸다. 그래, 어쩌면 이런 일련의 사건들도 삶을 건너가는 디딤돌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왠지 모든 게 사소하게 여겨졌다. 
   삶은 참 유쾌한 코미디다. 심각한 히치콕 영화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그런 카메오같은 코미디. 1차 열애 사건 때도 남편의 넉살에 폭소를 터뜨렸다.  ‘내 심장은 그대 곁에 있는 거 알지?’하고 카톡에 속삭인 그의 고백을 가지고 놀리자,  "아, 소설도 못써?" 하고 냅다 일격을 가했다.
   사랑의 위대함이여! 무딘 사람이 순발력도 고수요, 소설가가 되는 것도 한 순간이다. 첫사랑에게 심장까지 소포로 부쳐 버린 남자. 심장 없는 남자가 옆에서 코 고는 소리 요란하니,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없다. 이런 남자에게 가정의 중요성을 일러준들 무엇하며, 두 가정을 깨는 건 악이라고 도덕 군자 같은 말을 한들 무엇하랴. 다만, 외롭게 만든 건 미안한 일이니 마지막 노력이라도 한 번 해 보자 싶었다. 하지만, 사랑에 눈먼 맹인에겐 지팡이도 필요 없나 보다. 
   " 한 번 생각해 볼게!"  영혼 없는 말 한 마디 남기고 그는 일터로 갔다. 멀리 있는 한국 민들레는 물 건너 가고, 이제 이 ‘흰나비’는 제비꽃으로 옮겨 앉았다. 다음엔  어느 꽃에 가 앉으시려나. 
   첫사랑을 잃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던 결심은 봄눈 녹듯 녹아버리고 새순처럼 돋던 새로운 사랑. 누군들 경험하지 않았으랴. 잊을 만하면 봄풀처럼 돋아나는 싱그러운 단어, 사랑. 70중년의 나이에도 유효하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이 봄날, 꽃들은 계절을 앓고 사람들은 사랑을 앓고 있다. 아몬드꽃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소나무는 푸르른 채 사시장철 제 자리다. 사랑도 이와 같으리. 누구는 아몬드 꽃잎 같은 사랑을 바람에 날리고, 또 어떤 이는 늘 푸른 소나무 사랑으로 키워 가겠지. 이별도 만남도 신의 섭리라면 받아 들여야 겠다. 
   주인 속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연히 푸른 하늘을 이고 선 우리 집 아몬드꽃과 소나무. 이젠 이들에게도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 왔나 보다. 하필이면, 아몬드 꽃말이 ‘기대, 희망, 진실한 사랑’이라니! 이것도 코미디다.

   "눈송이처럼 날리는 아몬드꽃을 나는 참 사랑했었니라. 널 푸른 소나무야, 너도 퍽 사랑했느니라.’

   왠지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