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꺾이는가 싶더니, 해도 짧아졌다. 
퇴근하는 ,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천천히 걸어 차로 향한다. 
신호등 앞에 선다. 
사방 열린 십자길이다. 
빨간 불이 켜진다. 
모든 차량이 멈춰 선다. 
건너편 신호등은 푸른 등으로 바뀐다.
편에 차들은 기다렸다는 , 잽싸게 향방을 향해 달아난다. 
빨간 불과 파란 그리고 호박등 같은 노란 등이 교대로 바뀌며 켜졌다 꺼졌다 한다. 
바쁠 것도 없는 나는 신호등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가야 길과 가지 말아야 길을 가늠해 본다. 
가고 싶은 길과는 다른 길이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가야할 길을 제대로 걸어 왔던가.
아니면, 가지 말아야할 길들을 많이 걸어 왔던가. 
그도 아니면, 향방을 정하지 못한 노란 불이 바뀌어도 서성이고만 있었던가. 
살아오면서 발자국을 남긴 길들을 헤아려 본다. 
또박또박 걸으며 자세를 고쳐 보지만, 과연 제대로 걸어 길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스스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삐뚤거린 발자국들.
파도는 말없이 모래펄에 새겨진 발자욱을 지워주고 , 눈발은 따라오며 삐뚤거리는 발자국을 지워주었지.
많이도 흘러간 세월.
열린 길은 아득한데,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일들. 
얼마나 서성이며 망설이며 가고 싶은 가지 못하고  돌아서서, 가야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할까. 
서성이는 동안, 날은 더욱 어둑해지고 거리의 가로등 하나 켜진다. 
흐린 시야 너머로 호박등 들고 기다리는 어머니도 보이고, 낮은 언덕 위론 오래 전에 떠난 옛님의 모습도 흐릿하게 보인다.
허리를 돌아 마을을 덮던 는개와 같이 가물거리는  그리운 풍경들. 
잡을 수도, 데려올 수도 없는 젊은 날의 소묘여!
사라진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은 늦가을 느낌을 준다.
거리의 풍경은 네온 아래 화려하나, 그리운 풍경들은 점점 멀어져가고  우체통 하나 외딴 섬처럼 홀로 있다.
어느 , 날은 더욱 어두워지고 새도 깃을 찾아 숨어든다.
지금 앞에 펼쳐진 길은 사방으로  열린 십자길.
가야만 하는 길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가고 싶은 길은, 붉은 기 곳곳에 꽂혀 수가 없기에...
신호등은 여전히 붉고 푸른 번갈아 켜며 어서 가라고 등을 떠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