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반쪽 잃은 무(2).jpg

 

 <반쪽 남은 무>

저 높은 곳에서 늘
지켜봐 주신 당신,
오늘은 키 낮추어
날 눈여겨 보십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
측은하다는 듯이...
애썼다는 듯이...

그러나

저는 봅니다.
당신의 깊은 눈망울에서
샘물처럼 찰랑이는
사랑을 ...

그토록 잡으려 애쓰던
지푸라기마저 놓아버리고
이제,
가장 낮은 자세로
당신 앞에 섰습니다.

당신은 나의 사공,
나는 빈 나룻배.
저를 온전히 맡깁니다

맑고 바람 불어 파도마저 살랑이는 날
그 어느 하루를 택하여
당신 곁으로 날 인도해 주소서.

저는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겉은 검버섯이 피고 속은 바람이 들어 숭숭 구멍이 난 무. 이젠 더 이상 쓸 수가 없어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무.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오고 가벼운 전류가 흐르듯 찡- 해 왔다.
   검버섯 때문이었을까. 한 70 아니면 80쯤 되어보이는 우리의 어머니가 떠오르고, 바람이 들어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고 상한 모습은 혼자 속을 삭여온 뭇어머니의 속내를 보는 듯했다. 허긴,상처를 받으면서도 혼자 아픔을 감내해 온 사람들이 어디 어머니 뿐이겠는가.
   그런데, 위에서부터 밑둥까지 세로로 잘린 모습 때문이었을까. 누어 있는 모습이 마치 나룻배 같았다. 지상의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는 고향의 포구에 누어 안식을 취하고 있는 만신창이 나룻배.

   주변에는 여기저기 지푸라기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평생을 잡으려고 발버둥쳐 온 지푸라기도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듯 손을 놓아버린 무욕의 모습이다. 빈 들엔 바람마저 스쳐가기 미안한 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누구도 범치 못할 경건함마처 감돌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눈빛을 보았다. 마치, 측은하다는 듯이, 수고했다는 듯이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는 눈빛 하나. 그 눈빛은 샘물처럼 사랑으로 찰랑이고 있었다. 천상의 상급을 평안으로 보상해 주는 이. 나는 사랑과 연민으로 넘치는 주님의 그윽한 눈빛을 보았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주님의 그윽한 눈빛에 담긴 그 마음 하나로 지상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평안을 얻었으니-  
   비록 버려진 무 반쪽에 불과하지만, 강 하류에 도착한 강물처럼 그렇게 평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모든 지상의 고통이 끝나고 '그 분'의 사랑 하나로 완전한 평화를 얻게 된 반쪽 무. 내 마지막 날에도 이런 마음 평화 하나 얻을 수 있을런지.
   찡- 했던 연민의 마음은 결국 기도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언제 불러도 좋다는 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