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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임응식 "구직" 서울 명동(1953년 작) 1953년 서울 명동>


   추억이 있으면 한 줄의 시도 그 의미를 더한다. 내가 처음 ‘유정’의 <램프의 시>를 접한 건 P의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멀리 밤배는 호박색 등불을 켠 채 조을 듯 떠 있고 파도도 잠이 든 듯 다소곳한 초겨울 밤이었다. 우리는 태종대 야외 카페에 앉아 말없이 밤바다를 보고 있었다.  하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머잖아 나는 미국으로 떠나야 했고 한 사람은 남아야 했다. 기약 없는 이별에, 감상적인 생각은 안개처럼 우리를 에워쌌다.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천히 밤바다를 끼고 돌았다. 시간이 아이스크림이라면 이 시간만큼은 조금씩 아껴먹고 싶었다. 자연히 걸음이 느려졌다. 얼마쯤 걸었을까. 조용하던 밤바람이 드세지고 파도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미동도 없이 떠 있던  밤배도 호박색 등불을 내건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곧잘 <떠나가는 배>를 불러주던 그가 오래전부터 들려주고 싶었다며 오늘은 <램프의 시>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내게는 '유 정'이란 작가도 낯설고 시 제목도 낯설었지만  <램프의시>는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아다지오로 연주되는 첼로의 저음처럼 조금은 쓸쓸하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실려 시는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루해가 지면/다시 돌아드는 남루한 마음 앞에/조심 된 손길이/ 지켜서 밝혀놓은 램프
    유리는 매끈하여 아랫배 불룩한 볼륨/시원한 석유에 심지를 담그고/기쁜 듯 타오르는 하얀 불빛!
    쬐이고 있노라면/서렸던 어둠이/한 켜 한 켜 시름없는 듯 걷히어 간다

   -아내여, 바지런히 밥그릇을 섬기는/그대 눈동자 속에도 등불이 영롱하거니
    키 작은 그대는 오늘도/생활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얼빠진 내가/ 길 잃고 먼 거리에 서서 저물 때
    저무는 그 하늘에/호호 그대는 입김을 모았는가
    입김은 얼어서 뽀얗게 엉기던가/닦고 닦아서 더 없는 등피!

      임응식  작가의  ‘구직’이란 사진 작품이 떠오르며, 어느 새 내 눈앞엔 시 속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구직’이란 글자를 가슴에 붙인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사진 속의 남자. 전후의 실직자의 마음을 이 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작품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유정의 시는 한 술 더 뜨는 것 같았다. 하루종일 일자리를 구하려 돌아다니다가 끝내 얻지 못하고 힘없는 걸음으로 돌아왔을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을 맞으며 생활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 키 작은 아내. 누추한 삶이지만 구차하게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이 동화 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여기서 ‘키 작은 아내’는 우리 조선의 어머니를 대변하는 상징어겠지만, 내 키가 작아서인지 동일시되어 더 정감있게 들려왔다.
  
    -세월은 덧없이 간다 하지만/우리들의 보람은 덧없다 말라
    굶주려 그대는 구걸하지 않았고/배불러 나는
    지나가는 동포를 넘보지 않았다

   -램프의 마음은 맑아서 스스럽다/거리에
    동짓달 바람은 바늘같이 쌀쌀하나/우리들의 밤은
    조용히 호동그라니 타는 램프!

   그의 낭송은 여기서 끝났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나를 휩싸고 돌았다. 특히, ‘거리에 동짓달 바람은 바늘같이 쌀쌀하나 우리들의 밤은 조용히 호동그라니 타는 램프’라는 마지막 구절이 좋았다. 마치, 우리 두 사람이 동짓달 바람소리를 들으며 호동그라니 타는 램프 아래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 동화 같은 이야기. 비릿한 슬픔이 해풍처럼 스쳐갔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도 가슴이 시릴 때마다 태종대 밤바다와 함께 <램프의 시>가 떠올랐다. 급기야, 고향으로 가 버린 그와 완전히 소식이 두절되자, 그의 분신이라도 되는 듯 나는 그 시에 애착이 갔다. 인터넷을 쓰지 않던 때라, 신문사 기자로 있던 친구에게 <램프의 시> 전문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전쟁이 가져온 슬픈 상황을 노래한 시’라는 설명과 함께 보내온 <램프의 시>는 전에 그가 들려주었던 마지막 구절에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져 갔다.  P가 의도적으로 거기서 끊었는지, 아니면 내가 듣고도 생각에 잠겨 잊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뒷부분이 무척 생소했다.    

   -날마다 켜지던 창에/오늘도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앉았다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램프를
    그 따뜻한 것을 켜자

   -얼어서 찬 등피에/호오 입김이 수심되어 갈앉으면
    석윳내 서린 골짜구니/뽀얀 안개 속
    홀로 울고 가는/ 가냘픈 네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전쟁이 너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은 어디냐
    안개와 같이/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지는 내 그리운 것아
    싸늘하게 타는 램프/싸늘하게 흔들리는 내 그림자만 또 남는다
    어느 새 다시 오는 밤 검은 창 안에.

   그가 외워준 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일까. 시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앞에서 아내를 지칭하던 ‘그대’가 후반부에서는 아래동생을 부르듯 ‘너’로 바뀐 것도 이상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이어 쓴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피’라는 단어가 들어오니 낭만적이고 쓸쓸했던 분위기도 선득선득한 느낌이 들었다. 톤도 맞지 않고 품격마저 낮아진 시에 나는 적이 실망했다. 아니 봄만 못하였다.
   하지만, 그와도 영영 소식이 끊겨 살아생전에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판국이 되고 보니 마지막 구절이 다시 감상적으로 날 몰아갔다. ‘안개와 같이/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지는 내 그리운 것아.’
   그래, 그도 안개와 같이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져 그리운 사람이 되고 말았구나. 내 사연과 마지막 구절이 겹치자, 그 절절함이 다시 사무쳐왔다. 어느 새 다시 오는 밤, 나는 검은 창안에 앉아 30년 전 밤바다와 아다지오로 흐르던 첼로의 저음을 떠올리고 있다. (09-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