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K로부터 전화.

어젯밤 이야기가 잘 되어 오해를 풀고 다시 원위치로.

잘 된 일이다.

부부가 헤어지고 가정이 깨어지면 모양새도 모양새지만 노후가 어찌 되겠나.

늙기도 추한데 얼마나 궁상스럽겠나. 불가항력으로 먼저 가고, 뒤에 가도 보기가 딱한데...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 대나무가 한 마디 한 마디 커갈 때마다 아픈 매듭이 생겨야  한다는 진리.

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나이들어가며 감정 싸움 해봤자 골만 깊어질 뿐, 뭐 그리 성숙해질 일이 있으며

남은 날도 얼마 없는데 대나무가 커 봤자 얼마나 키 자랑을 하겠나.

서로에게 깊은 앙금만 남을 뿐이다.

나이들수록 조금은 현명해지거나 바보가 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화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조금씩 축적해 두었으면 한다.

오늘 신문에서도 화를 못참아 75세된 한국 노인이 위층에 사는 젊은 부부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한다.

위층 콘도에 사는 사람의  강아지 오물이 자기 발코니로 떨어지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고 관리인에게 얘기를 했지만, 아무런 조처가 없어 극도로 화가 나 그냥 총으로 쏴 죽였단다.

그것도 아이 다섯이나 둔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를.

다섯 아이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일은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다행히도 K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출근하니 마음도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그러면서 또 한고비 넘어가는 거지 뭐.

 

오늘, 미주문협 수필분과 위원장이 된 조정희씨를  만났다.  오늘이 두 사람의 첫 개인 만남이다.

소설가로서 더 잘 알려진 분이기에 수필분과 위원장 추천을 받았을 때는 저으기 당황했으리라.

하지만 알고보니, 수필로 등단을 했고 이번에 산문집 <사랑의 메일박스>를 출간한 저력있는 수필가였다.

수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그를 보필하는 간사로서의 역할을 맡았다. 뺀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맡은 이상,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전국구로 흩어져 있는 미주문협 소속 수필인들의 결속에 힘을 쏟고 싶다.

아니, 미주문협 수필가들 뿐만 아니라, 수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아름다운 소통을 하고 싶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 아니겠는가.

수필인들이야말로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아껴주는 문인의 표본으로 앞장서야 할 터,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샤부샤부의 집 '징키스칸'에서 맛있는 저녁을 들며 열심히 떠들었다. 수필 이야기만 하면 나는 신이 난다.

조용하고 차분한 조정희씨는 아마 정신이 없었을 거다. 그래도 미소를 띠고 잘 들어주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나더러 2월 28일(목)에 있을 올 들어 첫번째 종합 토방에서 사회를 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선천적, 후천적으로 나는 마이크 울렁증이 있다.

그래도 간사라서 내가 꼭 해야 한다고 한다. 전화를 걸었더니 문인귀 회장님도 거두절미하고 내가 해야 한다고 한다.

"하세요. 그래야 늡니다. 일단 하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회장님의 말씀은 완고했다.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무슨 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날이 그 날인 나에게 특별히 좋은 일이 뭐가 있겠는가.

설마 '미주문학상'을 준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아닐테고, 훗훗.(욕심도 없지만.)

"좋은 일은 몰라도 좋은 남자가 생긴다면은 혹시 모르죠...?" 농담과 함께 말꼬리를 흐리며 승낙하고 말았다.

벌써 몸이 어실어실, 한기가 든다. 어떡하지? 기차를 타고 오면서도 내내 걱정만 하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몸이 안 좋다며 남편에게 사실직고를 했다.

남편은 한 술 더 뜬다.

"떨린다, 떨린다 하면서도 막상 하면 잘 해!" 완전 인증샷이다.

사면초가. 내 편은 한 명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이번 기회에 모두 놀래켜  한번 스타가 되어 봐?"

농담에 한번 호탕하게 웃고났더니 몸이 좀 풀린다.

내일 일은 내일 일. 사이트에 들어가서 댓글이나 좀 달아야겠다.

 

참! 오늘의 수확!

시조시인 박경호 선생님이 드디어 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셨다.

작품도 깔끔하고 작품 보는 눈도 예리한 분이라 시조에 관해서는 내가 무릎 꿇고 배워야할 분이다.

정말 반갑다. 내 사이트를 통해서라도 시조가 좀더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

미주 시조문단이 너무 죽어 있다. 동면인가, 내가 문외한인가.

나는 시조 초보자에 불과하지만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야 겠다.

 

지금은 밤 12시 30분. 사방에 기척이라곤 없다.

강아지들은 밖에서 잠 들고, 남편은 방안에서 잠 들었다.

가끔은 둘의 잠자리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지만,

무얼 믿고 그러는지 나에게 확실한 인정샷까지 날려주었으니 오늘은 나도 착한 척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