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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 우는 소리가 새벽을 깨우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기운이 온천지를 뒤덮기 시작하면, 힘차게 울어대는 동물의 목소리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힘을 얻게 하고 하루를 열어준다.
  요즘은 휴대폰 모닝콜 음이 새벽을 알리고 자명종의 명랑한 소리가 잠을 깨우지만,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한적한 동네에서 안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새벽이슬에 바지가랑이를 적시고 싶을 때가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첼리스트 장한나는, 오늘의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그 주체 자체를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의 “네 스스로의 음악세계를 열어나가라”는 한 마디 말이었음을 고백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되,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그의 음악세계는 영원한 이류(二流)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0여 년의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3대 뮤지컬의 도시로 우뚝 선 한국인의 힘은 타고난 열정과 끈기, 내재된 십인십색의 천재성의 결과다.
  마당놀이는 이처럼 우리 전통의 열린 무대로 관객과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을 보여준다.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울고 웃으며 관람하고 - 돌아가는 길에도 눈물나게 우스워 풍자를 통한 해학의 묘미를 재음미하곤 한다.
  수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세계를 열어갈 때, 자신만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가정과를 전공한 초보주부에 의해 저울과 스푼으로 측정되어 만들어진 음식 맛은, 어머니가 손으로 대충 버무린 나물 맛에 미치지 못한다.
  수필쓰기에서도 구성이나 소재, 주제에 대해 디테일한 강의를 하지 않는 것은, 선험의 이론 없이 열린 마음으로 글을 쓰라는 의도다. 각자 좌충우돌의 시도로 천신만고 끝에 얻어진 작법은, 자신만의 노하우와 천재성으로 타인의 글과 비교될 수 없는 특색을 갖게 된다.
  수필은 다루지 못할 소재가 없고 건드리지 못할 주제가 없다. 자기 목소리를 확실하게 낼 수 있을 때까지 몰두하며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정신만이 가장 솔직하게 내면을 보여줄 수 있다.
  작가에겐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이 필요하다.
  개성적인 글의 세계를 열기 위해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작품 속에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이 배어난다.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독자를 흡인시키는 힘이 생긴다.
  ‘유능한 작가에겐 전체를 보는 눈, 부분을 보는 눈, 대상을 종합 분석적으로 보는 눈, 세 개의 눈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연과 사물과 사람과의 폭 넓은 만남으로 교감하며 공감대를 쌓아가게 되면, 떫은맛을 없앤 감처럼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작가는 다원화되고 다양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론과 이론이 충돌하는 가운데 파생되는 변화를 찾아내어 다양함을 추구해야 한다. 이때, 보다 더 발전적이고 풍부한 이론이 대두되기 때문에, 그 과정은 수필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피카소의 그림 ‘우는 여인’에는 화폭 한 가운데를 지배하는 한 개의 커다란 눈이 있다. 두 개의 눈을 갖고도 세상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한 개의 눈으로도 세상을 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눈은 개성적인 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에 따라 세상은 광활한 우주이거나, 좁고 깊은 크레바스와 같은 암흑세계가 되기도 한다.
  작은 것에서도 감동을 얻고 공감대를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 글은 성공한 것이다.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 우려내고 걸러낸 맛이야말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향미를 풍기게 된다.
  2,010년이면 수필가 만 명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만큼 수필가가 양산되고 있다. 그 현상을 보더라도 앞으로 자신의 출신 잡지나 동인회에만 국한하는 좁은 시야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적극적으로 함께 어울리고 한마당으로 어우러지는 수필시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수필발전을 위해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며, 보다 나은 수필환경을 위해 애정 어린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다.
  마당놀이(廣場劇)는 연출자와 출연자, 관객이 구분 없이 흥겹게 하나가 되는 화합의 마당이다. 우리수필도 안방에서 뛰쳐나와 한마당 ‘얼~쑤!’ 어깨를 걷고 신명나게 춤사위 판을 벌여야 한다. 놀이판에서 추임새를 넣는 고수가 있어야 명창의 소리가 돋보이는 것처럼, 수필도 신바람을 몰고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마당놀이가 되어야 한다.
  전후의 암울한 현실에서 50년대의 서울거리는 피폐하고 어두웠다. 예술인들은 배고픔을 참으며 명동(明洞)으로 모여들었고,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예술 혼을 불살랐다. ‘시절은 암울했지만 예술인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명동시대는 아름다웠다’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다방과 선술집, 음악 감상실, 화구점이 창작의 산실이 되었고 열악한 환경을 딛고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며 전시회를 가졌다.
  작가는 다방 한구석을 데스크 삼아 원고를 쓰고 잡지를 구상하며 밤을 지새워도 거리에는 낭만이 넘쳐흘렀다. 간혹 얄팍한 고료라도 받으면 동료의 술값으로 날리고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때를 일컬어 ‘명동시대’ - 추억의 장으로 사라진 한 시대를 그리워하듯, 우리도 후세에게 그리움으로 남겨질 ‘수필시대’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한적한 농가에서 새벽운무를 가르는 수탉의 고고성이 심금을 울리었듯, 우리 함께 어깨춤을 추며 ‘얼~쑤!’ 장단을 맞추는 그 때, 수필의 르네상스 전주곡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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