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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파도는 말없이 와서 '사랑'을 지우고 갑니다.
사랑은 모래밭에 적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기는 것이라고. <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요한복음 15, 12.
 
 무엇이 사랑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가요?
여기 한 송이 장미가 있습니다. 이 장미가 좋은 사람에게는 향기를 뿜어주고 나쁜 사람한테서는 향기를 거두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등불을 밝혀들고 밤길을 걸어가는데 그가 악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에게서 빛을 거두는 등()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등이 더 이상 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빛을 거둘 수 있겠지요.
보십시오, 한 그루 나무가 얼마나 속절없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젊은이와 늙은이, 고상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 여자와 남자,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 저를 도끼로 찍어 넘기려 하는 자에게조차, 제 그늘을 선선히 내어주고 있는지!
 
이것이 사랑의 첫 번째 성질(quality)입니다. 사랑은 대상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이런 아버지의 자녀답게 사랑하며 살 것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장미와 등불과 나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맑고 순결한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거기서 당신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그런 사랑을 해보려고 무엇을 시도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하든, 억지를 부리게 마련이고 결국 가짜 사랑을 날조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놓아버릴 것은 있지요. 당신이 사람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성자와 죄인 따위로 구분하여 보지 않고, 아직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못한 무명(無明)의 존재로 보는 순간 당신에게 어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십시오. 당신은 깨어난 사람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깨어남의 빛(the light of awareness) 아래에서는 아무도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죄는,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듯이, 악의(惡意, malice)에서 빚어지는 게 아니라, 무명(無明, ignorance)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를 바로 아는 데서, 장미와 등불과 나무가 보여주는바 상대를 구별하지 않는 순진한 사랑이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두 번째 성질은 보상(報償)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처럼, 장미처럼, 등불처럼 그냥 내어줄 뿐 그에 대한 보상으로 무엇을 돌려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결혼하는 남자가 신부 집에서 가져올 지참금과 혼수품만 보고 여자를 고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은 아내를 사랑한 게 아니라 아내 때문에 생기는 부산물을 사랑한 거예요. 그런데 만약 당신이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따돌린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당신이 기대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마음을 열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심하거나 문을 닫아버린다면, 그 신랑과 당신이 어떻게 다르다 하겠습니까?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을 하기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눈을 뜨고 보는 것입니다. 그냥 보세요! 당신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교묘하게 이기심과 탐욕을 그 속에 감추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말고, 그냥 보는 겁니다. 그것이 사랑의 두 번째 성질을 품게 되는 한 걸음입니다.
 
사랑의 세 번째 성질은 스스로 사랑한다는 의식이 없는(unself-consciousness)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제가 사랑하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등불은 빛을 비추는 데 골몰하여 제 빛이 남에게 무슨 혜택을 주는지 마는지 그런 것에는 아예 생각이 미치지를 않는 거예요. 장미가 향기를 뿜어내는 것은, 그 향기를 맡고 좋아하는 누가 있든 말든, 향기를 뿜어내는 일 말고 다른 무슨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그늘을 내어주는 것도 그렇고요.
향기도 빛도 그늘도, 누가 다가오면 생겨났다가 아무도 없으면 거두어지는 그런 것들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있느냐 없느냐,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상관없습니다. 사랑이 그렇지요. 사랑은 그냥 거기 있습니다. 사랑에는 목적(object, ‘상대또는 목표로 읽을 수도 있음-역자)이 없어요(Love simply is, it has no object). 향기도 빛도 그늘도, 누가 저희들한테서 무슨 혜택을 입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냥 거기 그렇게 있습니다. 자기네가 무슨 좋은 일을 한다든가 누구에게 무슨 덕을 끼친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그것들의 왼손은 정말로 제 오른손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사랑의 마지막 성질은 자유(freedom)입니다. 강제, 지배, 투쟁, 알력 따위가 발을 들이는 순간 사랑은 죽습니다. 장미와 등불과 나무가 얼마나 당신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는지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땡볕에 노출되어 쓰러지기 직전인 위험한 상태에 있어도 나무는 당신을 제 그늘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아무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어둠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억지로 빛을 비춰주는 등불이 있던가요? 누구의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들으려고, 또는 누구를 잃지 않으려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에게 억지를 부리고 상대를 통제하려 애쓰는 우리 모습을 잠시 돌아다봅시다.
 
그렇게 억지를 부리고 누구를 통제하려고 애쓸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순진한 사랑의 능력을 파괴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남이 자기에게 하도록 허락한 일 말고는 남에게 해줄 수 없으니까요. 당신이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에게와 남에게 무슨 억지를 어떻게 부리고 있는지 잘 지켜보십시오. 그렇게 지켜보면 억지도 강제도 떨어져 나갈 것이고, 그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은 되살아날 것입니다. 자유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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