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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어김없이 교내 총격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죽인 이나 죽은 이나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총기규제도 필요하지만, 우선 마음의 병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나에 대한 성찰과 너에 대한 배려만 있다면 쉬이 '우리'가 되련만. 정녕 '우리'가 되어 함께 나아갈 '행복의 길'은 멀기만 한 것일까. 새삼, 2007년도에 있었던 조승희 사건을 떠올려 본다.                                                    
  

   따가운 햇살 속에 밤톨처럼 익어가던 가을도 낙엽 속에 이울고, 성긴 눈발 날리듯 여기저기서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다. 어느 새 겨울이 오고 또 한 해가 가는 길목에 섰음인가. 몸도 마음도 스산해진다. 때론 울고 때론 미소로 눈물을 말리며 보낸 나날들. 올해도 역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사건도 많았고 사고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4월 16일 아침에 일어났던 버지니아텍의 총기난사 사건은 가장 충격적이었다. 지성과 젊음의 상징인 상아탑에서 그렇게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다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가해자가 한국 애라서 그런 것일까. ‘끔찍했던’ 사건이지만 나에게는 지금도 ‘가슴 아픈’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성적이기 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사건 당일 저녁 뉴스만 하더라도 가해자가 중국계라 해서 그런지, 참 안됐다는 마음과 함께 대형 총기 사건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연 실색하고 말았다. “에이, 나쁜 놈의 새끼, 한국 놈이래!” 하고 남편이 분통을 터뜨리며 신문지를 탁자 위에 팽개쳤다. “어머나! 한국애래? 어머, 어떡해......” 신문을 집어 들기도 전에 눈물부터 피잉 돌았다. 기사를 읽어가면서도 죽은 애들보다는 이상하게도 죽인 ‘나쁜 놈’이 더 불쌍하게 생각됐다. 한창 젊음을 구가하며 인생 찬가를 부르고 있어야할 아이가 무엇에 이토록 분노를 느껴 총질까지 하고 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말이 없고, 친구가 없었다는 아이의 외로움이 내 뼈 속 깊이 스며들어 삐죽삐죽 눈물이 나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역정을 냈다. 무고하게 죽은 놈들이 불쌍하지, 그 놈이 왜 불쌍하냐고.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당연한 말도 때로는 섭하게 들릴 때가 있다.
  범죄가 나쁘다는 것은 나도 안다. 서른 두 명이나 죽인 잔인한 범죄에 무슨 변명이 있으며 당위성이 있을 것인가. 조승희가 살아있으면 나도 크게 꾸짖어 주고 싶다. 앞으로 희망이 창창하게 젊은 놈이 외로움도 참고 분노도 삭일 줄 알아야지 총질은 무슨 총질이냐고. 하지만, 그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의 외로움과 아팠던 마음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이 짠했다. 게다가 내 자식하고 똑 같이 생긴 ‘동안’의 한국 아이가 아닌가. 남편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이유도, ‘왜 하필이면 한국놈이야!’하는 안타까움이 깔려있어서일 게다.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조승희를 동정했고, 어떤 사람은 ‘나쁜 놈’이라고 욕을 했다. 조승희 개인의 문제라고 가볍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보복성 범죄가 뒤따르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지로 동부에서는 많은 애들이 언어의 폭력과 얼굴에 침을 맞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숙한 미국 시민들은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사과하는 것을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다.
    사건 이후, 버지니아 대학 본관인 버러스 홀 앞엔 서른 세 개의 추모석이 놓여졌다. 서른 두 명의 희생자와 조승희까지 포함된 추모석 숫자였다. “과연, 미국은 미국이구나!”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아픔과 분노를 뒤로한 채 죽은 영혼 앞에 겸손한 그들을 보고 또 한 번 코끝이 찡해왔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미국의 일등 시민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른 세 개의 추모석. 그것은 바로 사랑과 용서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었다. 사건 일주일 뒤 23일에 열렸던 추도식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조승희의 추모석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치워지고, 추도 타종도 서른 두 번만 울렸다. 학교 상징색인 적갈색과 오렌지색 풍선 1000여개가 하늘로 올라갈 때, 흰색의 추모 풍선도 오직 서른 두 개만 떠올랐다. 대신 그의 추모석이 놓였던 자리에는 “조, 너는 우리를 과소평가했다. 너는 우리의 가슴을 찢었지만 정신을 깨뜨리진 못했고 결국 사랑이 승리할 것”이라는 쪽지가 놓여졌다. 죽어서도 소외되어야만 했던 한 개의 추모석과 한 개의 하얀 풍선. 무거워서 한 개의 추모석을 더 놓지 못한 것도 아니요, 돈이 비싸서 한 개의 풍선을 더 살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허허 웃고 용서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그 날 이후, 조승희란 이름도 캠퍼스 내에서는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그의 온전한 이름은 산산이 부서지고 오직 '총잡이(Shooter)' 혹은 '그 놈(The Guy)'이나 그저 ‘조(Cho)'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나마 그 이름조차 거론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이름이 부정된다는 것은 존재의 부정이다. 모두가 잊고 싶어 하고 잊어야 될 이름, ‘조, 승, 희’. 이제는 낱자로 흩어져 허공중에 맴도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한국 아이들만은 그를 기억하고 욕된 이름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우정 어린 노력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더욱 조신한 행동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물론, 죽은 친구들이 생전에 했던 자원 봉사자 일까지 인터넷으로 찾아내 릴레이식으로 대신 해주고 있다고 한다. 조승희를 대신해서 빚 갚는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다. 어찌 우리 아이 뿐이겠는가. 아직도 싱싱한 풋사과 같은 아이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선하다. 대학 신문 사설을 통해 조승희 부모님께도 다른 희생자 가족처럼 18만불의 위로금을 나눠주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조승희 부모님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야말로 다른 희생자 부모들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을 거라는 배려에서였다. 용서만 해줘도 고마운데 위로금이라니, 어른들 생각으론 어림도 없는 얘기다. 조승희의 빈 추모석 위에 놓였던 분노의 쪽지도 지금은 사랑의 쪽지로 바뀌었다. “우리는 너를 용서한다. 너는 틀림없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했을 거야.” 그도 이제야 친구들의 우정을 알고 저 천국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리라.        
   얼마 전에 버지니아 대학에서는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Lost in time)'란 타이틀로 ‘아시안 축제’가 열렸다. 위축된 마음을 뛰어넘어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고 싶어서였단다. 우리 한국 아이들은 시험 기간인데도 열심히 연습해서 신명나는 사물놀이 한판을 올렸다. 잊어버리고 털어내기 위해서 사물놀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출연자와 관객이 소리에 휘감겨 한판 축제를 벌였을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졌다. 한편으론 그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꼭 조승희와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 같은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그날, 혼신의 힘으로 사물놀이를 공연한 우리 아이들 이름은 김율이, 이윤경, 황동민, 나석호라고 전한다. 굳이 아이들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주고 싶은 것은 잊혀지지 않는 이름으로 기억해주고 싶어서이다. 쌀에 겨 같이 눈에 거슬려도 ‘그’라는 대명사 대신 계속 ‘조승희’란 풀네임으로 글을 써내려간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이제 꾸중을 들어야할 조승희는 가고 없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도 가고 없고 한때는 조승희를 괴롭혔을 아이들도 가고 없다. 월탄 선생의 말처럼 지금은 ‘악한 이나 선한 이나 다 자고 가는 저 구름’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건도 역사 속에 묻힐 것이고, 마음의 상처도 세월의 더께 속에 딱지가 앉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잔인하지만, 또 너그럽다고 하지 않는가. 한 해의 끝이 있고 새 날의 시작이 있음도 아픈 만큼 성숙해지라는 신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사랑과 용서의 성자, 아기 예수가 오신다고 캐롤이 울려 퍼진다.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 마음엔 이미 서른 세 개의 추모석이 놓여 있고, 서른 세 개의 하얀 풍선이 하늘 높이 날고 있다. (2007년 ‘미주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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