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jpg
 
(1) 꽃은 시다.

꽃은 어린이요. 꽃은 소녀요. 꽃은 시다. 그리고 꽃은 그리워하는 임의 상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가냘픈 여인은 꽃이 되고 싶어 하고, 사랑의 마음이 싹트면 자기 자신만의 귀여운 꽃을 갖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꽃이 되고 싶어 한다.

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청초하고 귀여운데 향기를 지녀 錦上添花(금상첨화)의 칭송을 덤으로 받는다.

또 향기를 찾아서 나비와 벌들이 모여들고 더욱더 큰 사랑을 생명들로부터 받는다. 그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이 나도 그대를 불러 그의 꽃이 되어 아낌없는 사랑을 가득 받고 싶어 하는 소박한 염원들이다.

꽃은 분명 미요, 순수요, 예술이며, 사랑인 동시에 詩(시)다.

이 논문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려 꽃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를 모은것으로 개인의 어떤 이득이나 명예를 얻기위한것이 아님을 필자가 밝혀둔다.

오직 이 작품은 혼돈속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되기를 바라는 나의 간절한 염원이요, 기도요, 희망일 뿐이다. 이 작품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부디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

매향(梅香)

봄은 아직 저만치

양지 바른 산골짜기

부풀어 오른

진달래 꽃망울

속에나 깃 들어

있는 줄 알았더니

오늘

학교 현관을 들어설 때였다

봄은 느닷없이

내 透明한 갈비뼈 사이로

갓 피어난

紅梅花 한 다발을

슬쩍 디밀었다

그래서 지금

머리끝에서 발톱 끝까지

내 안에 그득히

차 있는 향기

紅梅花 은은한

그윽한 향기

-박희진, <梅香> 전문.

설향(雪香)

눈(雪)을 닮아

눈매가 그리 고우냐?

임 그리는 정념(情念)에 젖어

아침마다

눈물 방울이냐?

선비의 천품이 그리워

서창(書窓)으로 흘려보내는 짙은 향기.

봄이 오기 전에 먼저

봄소식을 전하고

눈이 녹기 전에

가지마다 잔설(殘雪)을 달고

문을 두드리는 설향(雪香)의

차가운 눈매.

애처롭도록 슬프구나.

가난한 시인의

설안(雪案)에

오늘도

형창(螢窓)으로 타오르는

불빛.

설중매(雪中梅)의

고고함이여!

-정용진, <설향> 전문.

설매부(雪梅賦)

조춘잔설(早春殘雪)이

산록에 차가운데

매화 옛 등걸

눈망울이 슬프다.

봄, 나비도

늦잠이 깊었거니

게으른 시인의 시심(詩心)을 일깨우는

설중매(雪中梅)의 고고한 자태여.

올곧은 선비의

지조(志操)로 운 천품이

호문목(好文木)으로 버텨 서서

이 아침

필력(筆力)이 미진(未盡)한

내 서창(書窓)에도

지사고심(志士高心)의

설향(雪香)이 따사롭다.

–정용진, <설매부> 전문.

* * * * * *

옛날 선비들은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리는 송죽매(松竹梅)와 사군자(四君子)로 칭송을 받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사랑했다. 이는 선비가 생명으로 삼는 지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화가들의 동양화의 표제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매화의 꽃말은 “미덕. 고결. 정절”이고 풍란의 꽃말은 “신념”이며, 국화의 꽃말은 “고결(백). 고상(적). 실연(황)”이고 대나무의 꽃말은“충절. 절개”다. 선인들은 매화의 용모, 난의자태, 국화의 향기, 대나무의 소리(梅容, 蘭姿, 菊香, 竹聲)을 사랑하였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수, 석 송, 죽, 월(水, 石, 松, 竹, 月)을 다섯 벗이라 하여 각기 시를 지어 오우가(五友歌)를 불렀으니 오늘날 국문학에서도 송강(松江) 청철의 송강가사와 더불어 고전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난초(蘭草)

난 초는

얌전하게 뽑아올린 듯 갸륵한 잎새가 어여쁘다.

난초는

건드러지게 처진 청수 한 잎새가 더 어여쁘다.

난초는

바위틈에서 자랐는지 그윽한 돌 냄새가 난다.

난초는

산에서 살던 놈이라 아무래도 산 냄새가 난다.

난초는

예운림(倪雲林) 보다도 고결한 풍모를 지니었다.

난초는

도연명(陶淵明) 보다도 청담한 풍모를 갖추었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를 보고 살고 싶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와 같이 살고 싶다. -신석정, <난초> 전문.

난초(蘭草)

난초(蘭)닢은

차라리 수묵색(水墨色).

난초닢에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닢은

별빛에 눈떳다 돌아 눞는다.

난초닢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쨔지 못한다.

난초닢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닢은

칩다.

–정지용, <난초> 전문.

(2) 꽃은 사랑이다.

진달래(杜鵑花)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우리다.

–김소월, <진달래 꽃> 전문

진달래

우르르 우르르 떼 몰려 가는 사냥꾼의 발끝에 채이면서 까지

진달래도 싱싱하게 피어나야 한다

짓밟힌 삼천리 구석구석을

해처럼 화안하게 밝혀 주면서

진달래도 싱싱하게 피어나야 한다 답답하게 휘덮은 화약 냄새를

사냥꾼의 잔인한 군호 소리를

개울물에 깨끗하게 흘려보내고 총과 칼을 떠다밀며 피어나야 한다

군림하는 사냥질에 짓뭉개지며

살 속에서 뼈 속에서

가슴 속에서

싱싱하게 피어 오르고

무슨 말을 따뜻하게 속삭여주고 .....

그렇다 진달래야 피어나거라

4월의 진달래야 피어나거라

-양성우, <진달래> 전문.

진달래

아직도

눈 덮인 산하

동면의 늦잠이 한창인데

서둘러 깨어서

아침노을로 번져오는

연분홍 진달래.

돌아보아도 바라보아도

냄새 나고 미천한

세상이지만

구차한 몸을

바위 억서리

그늘진 계곡에 버티며

서러웠던 세월

분노하던 함성처럼

몰려 서서

한 빛깔과 노래로

아픈 가슴을 열어

두견(杜鵑)의 한을 울어주는

애절한 그 마음.

지금도

역사의 뒷골목에선

탐욕의 장막을 치고

민중의 몫을 가로채는

속 검은 무리들의

진한 흥정이 무르익는데

둘이 결코

하나이어야 한다는

애타는 염원으로

맨 먼저 깨어서

조국 산하에 피어 오르는 한 겨레의 참마음

진달래의 뜨거운 혼.

-정용진, <진달래> 전문.

 

       더 보기   >>>   http://imunhak.com/atradition/2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