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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손바닥만한 검붉은 반점이 있다. 그 반점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조차 어려운 아버지의 완강한 힘과 권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반점은 선천적인 것이지만 병적인 것은 더욱 아니다.아버지는 나이 팔십이 넘도록 건강하게 사셨고, 지금은 비록 중풍 든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시고도 병객인 체를 않고 지내시는 것을 볼 때, 나는 그 반점이 원자로의 핵처럼 당신을 지탱한 동력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의 그 반점을 처음 본 것은 6.25 사변이 나던 해 여름, 낙동강 상류의 어느 나루터에서다. 아버지와 나는 피난을 가는 길이었다. 그때 열세 살인 나는 산모퉁이를 돌아서 엄청난 용적으로 개활지를 열며 흐르는 흐린 강을 아버지의 등뒤에 움츠리고 서서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강을 반드시 건너야 하는 아버지의 이념을 내 어린 나이로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등 뒤에서 점점 다가오고 있는 포성에 마음은 쫓기고 있었다.

 

  그 나루터에는 피난민들이 가득 모여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었다. 나룻배는 이미 피난민들이 떼거리로 덤벼들어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다가 요절을 내버렸고, 흐린 강을 건널 길은 직접 몸으로 강물을 헤쳐서 건너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계셨다. 이윽고 아버지는 옷을 벗으시고 내게도 옷을 벗도록 이르섰다. 그리고 꼭 필요한 옷가지만 바랑에 담아 버리에 이고 허리띠로 턱에 걸어 붙들어 매셨다. 그런 다음 나를 업으셨다. 강을 건너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신 것이다.

 

" 아버지 목을 꼭 잡고 얼굴을 등에 꼭 붙여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움직이지 마라."

나는 아버지의 그 반점을 그때 처음 보았다. 아버지 신체의 비밀을 발견하고 나는 당혹감에 얼굴을 아버지의 등에 대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얼굴을 아비 등에 꼭 붙여라."

나는 엉겁결에 얼굴을 아버지의 등에 꼭 댔다. 내 얼굴이 반점에 닿지는 않았지만 바로 눈앞에 화난 아버지의 검붉은 얼굴 같은 반점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을 거너기 시작하셨다. 강 한가운데로 한발한발 꿋꿋하고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나가셨다.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들에게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건너셨다.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부딪치면 같이 쓰러져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강 한복판에 도달하였을 때, 아버지는 강바닥의 모래가 페인 곳을 밟으셨는지 키를 넘는 물에 잠기셨다.

 

  나는 물을 먹고 엉겁결에 얼굴을 들다가 아버지의 불호령이 생각나서 아버지의 목을 더욱 꼭 잡고 얼굴을 등에 댔다. 아버지는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모래 웅덩이에 헤어 나오셨다. 거기서 아버지가 쓰러지셨으면 다시는 바로 서지 못하고, 우리 부자는 흐린 강물에 떠내려갔으리라.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뚜렷하게 그때가 되살아나서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아버지의 그 초인적인 의지가 어떻게 생겼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할 뿐인데, ' 내 힘이 이니라' 듯이 눈앞에 아버지의 반점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드디어 강을 건넜을 때, 아버지는 모래바닥에 나를 내동댕이치듯 내려 놓으시고 몰래바닥에 엎드려서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우셨다. 내가 아버지의 우시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 한번뿐이다. 아버지의 그 울음은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넌 감격 때문이었는지, 가혹한 역사의 순간에 대한 공포의 오열이었는지 알 수 없다. 가끔 그게 6.25의 발발 원인만치나 궁금하다.

 

  강변 모래 바닥에 엎드려 오른쪽 어깻죽지의 검붉은 반점이 들썩거리도록 소리없이 우시던 아버지의 아픈 한 시대는 그 흐린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아버지의 반점은 그때 그 아픈 강과 더불어 분명하게 내 머리속에 남아 있다.

 

  그후, 나는 아버지의 그 반점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깻죽지의 반점을 다시는 내게 보여 주지 않으시고 단신의 인생을 착실하게 이뤄 노년이 되셨고, 내 인생도 부실하게 머지않아 노년에 이를 것이다.

 

  그 강을 건너서 참 오랫동안 우리 부자는 각자의 인생을 나이 차이만큼 떨어져서 걸어왔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확신을 갖지 못하시고 불쾌한 얼굴로 돌아보며 저만큼 앞서 가지고, 아버지에게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 나는 주눅이 들어서 그뒤를 따라왔다. 그 까닭은 아버지의 힘에 대한 위압감 때문인데, 그때마다 그 강이 생각났다. 내가 아버지로서 그 범람하는 필연의 강에 섰을 때, 과연 나는 열세 살 먹은 내 자식을 건사해서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을가? 자신이 없다. 아버지는 그런 내 의지의 박약함을 눈치채시고 나를' 못난 놈' 하고 나무라시는 것만 같아서 아버지 앞에서 나는 늘 움츠러드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와 나는 다시 아버지의 강에서 만났다. 중풍에 드신 아버지는 그 흐린 강가에 앉아서 건넬 엄두를 내지 못하시고 뒤따라온 나를 바라보신다. 이제 비로소 내 등에 업혀 강을 건너가시려고 못난 자식에게 기우는 아버지가 가엷고 고맙다. 그 강에서 아버지가 나를 소중히 건사해서 건네 주셨듯 이제 내가 아버지의 숨찬 강을 건네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등만큼 완강하지 못한 내 등을 감히 아버지께 돌려대 드린다. 그빈약한 내 등에 가까이 업혀 주시는 아버지가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목욕을 시켜 드리는데, 아버지의 그 반점을 마음대로 만져 볼 수 있어서 기쁘다. 자식 도리 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것은 비로소 아버지의 위압감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점은 아직도 완강하고 고집스러워서 내게

" 임마, 교만 떨지 마. 도리면 도리지 무슨 자부심이야" 라고 하시는 것 같다.

 

  몇 달 전, 나는 하회마을을 다녀 오는 길에 그때 그 나루였지 싶은 낙동강 상류 어디를 가 보았다. 아버지의 극적인 강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육중한 콘크리트 다리가 가로놓인 강 양안에는 생선 매운탕을 해서 파는 ' 무슨 무슨 가든' 이라는 간판이 달린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강은 넓은 모래바닥에 턱없이 적은 강물이 흘러갈 뿐, 경이로운 아버지의 강에 대한 이미지는 찾을 길이 없었다.

 

  건너편 강기슭에서 포크레인 모래를 덤프 트럭에 퍼담고 있었다. 아버지의 생사의 발자국이 사금같이 침전된 강바닥을 포크레인이 무심하게 덤프 트럭에 퍼담고 있었다. 아버지의 한 생애가 마침내 해체되는 것 같은 덧없는 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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