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 십자가.jpg뉴욕에서 이곳 캘리포니아로 이주한지도 팔 개월이 넘었다.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안토니오 영감이 찾아와서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일자리가 났으니 한번 서류를 넣어 보자고 권했다.
오십 중반을 훨씬 넘긴 남미 출신의 안토니오를 집 근처 주유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언뜻 보기에 옆모습이 꼭 한국 사람처럼 생겼기에, "혹시 한국분이신가요?”하고 말을 걸었더니, “Excuse me, May I help you?"하면서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길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안토니오는 나의 후견인 역할까지 맡아서 해 주었다.
내가 스왓밑 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에는 먼 곳에까지 가서 천막을 사다 주고 자기가 쓰던 벤 까지 내어 주면서 도와주었다
겨우 3주를 나가보고 리스가 만료된 자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같은 한국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알고는 마치 자신의 일 인 것처럼 안타까워했었다. 그 후 밤 청소 일도 해보고 페인트일하는 사람들도 쫓아다녀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일거리를 못 찾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려고 가끔 자기 집 뒷마당에서 바비큐 그릴에 불을 지펴 핫덕을 굽고 시원한 버드와이저를 준비 해 놓고 나를 부르곤 했다.
“뉴욕은 날씨가 어떤가? 지금쯤은 비가 많이 내리겠지?, 나는 동부 쪽은 한번도 못 가 봤으니 말이야.”한다.
“네, 여름에는 하리케인이 거세게 불고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오고 추위가 대단하지요,”
“설마 날씨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아니겠지.”
“날씨야 뭐 참아 넘기면 되지요, 작년 이맘때 기억나시죠, 왜 뉴욕 전체가 정전이 되고 폭동이 일어나고 난리였잖아요!”
“그랬었지”
“그때 갖고 있던 조그만 가게가 불타 버렸어요, 그냥 물건만 털어 갔어도 어떻게 좀 버텨 보았을 텐데 불이 나고 나니까 끝이더라고요.”
“고생이 많았겠군!”
“6개월을 버티다가 포기하고, 친구가 있는 이곳으로 이사 왔죠.”
“미국 오기 전에는 뭘 했었나?”
“월남에 있었어요, 맹호 부대 사령부에 소속된 태권도 교관이었습니다. 그때 미군 사령부에 근무하던 Ken Smith 중령이 저를 미국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제가 그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거든요.”
“응 그래서 미국까지 오게 됐다, 그거 참 잘 된 일이군 그래”
“미스터 스미스의 가족들이 뉴욕에 살아서 저도 뉴욕으로 갔었는데 석 달도 안돼 켄 중령은 독일로 나가 버렸어요”
“어이구 자리도 못 잡은 자네를 그 험한 뉴욕에 남겨 두고 독일로 가 버렸어?“
“네, 처음에는 막막했었는데 잘 찾아보니 여기저기에서 야채 가게, 생선 가게, 조그마한 마켓 등을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네도 마켓을 시작했나?”
“처음에야 어림도 없었지요. 도무지 영어가 통해야 뭘 해먹지요. 선배가 하는 가게를 도와주다가 나중에 맡아서 했는데 그것도 얼마 못해 보고 폭동에 다 날려 버렸어요.”
“참 힘들었겠군, 어쨌든 캘리포니아로 잘 왔네, 날씨가 따뜻하니 좀 여유가 있을 거야”
“여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같네요, 벌써 반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요 모양 아니에요”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말이 아니었지, 열두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어느 집 좁은 차고에서 살았으니 자네는 상상도 못할 걸세”
“하기야 수십 년 전에는 더 했겠네요.”
“그래도 나는 미국 생활에 만족일세, 불만 없어! 아니 내가 이거 젊은 사람한테 쓸데없는 소리만 했군 그래.”

안토니오 영감의 추천으로 무난히 취직은 됐으나, 기계 공장은 난생 처음인 내게는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들었다. 특히 쇠를 깎을 때 뿜어내는 열과 소음 그리고 기름타는 냄새는 참아 내기 어려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건장한 청년들이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매연과 소음 같은 것들은 별로 문제가 아닌 듯싶었다.
며칠이 지난 후 안토니오가 집으로 찾아왔다. 마침 선반공 조수 자리가 났으니 이 기회에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시간당 3불 50전을 받을 수 있으니 지금의 허드렛일보다는 힘도 덜 들고 앞으로의 전망도 훨씬 좋다는 것이었다.
그는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기계 도면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평면도, 측면도, 그리고 입면도까지 단숨에 설명해 주고, mm를 inch로 환산하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그래, 이제는 한 가지 기술을 익혀서 기능인이 되어 보는 거야”하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안토니오가 일하고 있는 정밀선반기계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P. S. I.는 보병이 휴대할 수 있는 견착식 미사일과 인공위성에 장착하는 군사용 카메라를 만드는 공장으로 800 여명의 종업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휴즈 항공사로부터 받은 6백20만 불 어치의 주문을 4개월 내로 끝내기 위해 3교대로 전체 회사를 가동하고 있었으며, 우리 부서의 55명 전원이 똑같은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재료 담당 마이크가 한사람 당 100개씩을 나눠주고 일이 다 끝나는 시간이 되면 완성된 물건의 숫자를 장부에 기록했다. 생산 성적이 좋은 사람은 월말에 상여금을 받게 되어 있었다.
나는 좀 지루하기는 해도 반복되는 일이어서 다른 기술자들에게 뒤질 것 없이 잘 해냈다. 며칠 동안 계속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매일 발표되는 목표 달성자 명단에 내 이름도 올라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서 보니 만들어 놓은 물건이 열 개쯤 없어지고 그 대신에 깍지 않은 재료가 같은 숫자만큼 옆에 놓여 있었다.
나는 즉시 안토니오에게 가서 누군가 내가 만든 것을 훔쳐 갔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의논했다. 그는“그냥 넘어가”라고 하면서 자기가 만든 물건 대여섯 개를 내게 집어 주었다.
옆자리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죠지 영감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말문을 열었다.

“루이와 라울은 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자들이니 크게 염려 할 일은 아니지만 쟌은 정말 조심해야 돼! 쟌은 돈만 생기면 마리화나나 사 피우고 간간이 코케인 도 흡입하거든, 또 오토바이를 난폭하게 몰고 다니고 성격이 너무 거칠어서 사람들이 슬슬 피하고 있어. 바로 그놈들이 너한테 시비를 건 거야, 그저 모른 체하고 넘어가고 상대하지 않는 게 좋겠어!” 라고 충고해 주었다.
. 라울, 쟌, 루이 셋은 일은 안하고 담배나 피우면서 잡담이나 하고 늘 자리를 비우곤 했으니 착실하게 일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해진 양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인스팩터 스캇이 나를 불렀다. 만든 물건 중에 불량품이 32개나 생겼으니 빨리 수리 해 오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만든 물건이 아닌 것 같았지만 증명 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부지런히 불량품들을 수리하고 오늘의 할당량까지 해결하기 위해서 점심시간도 15분만 사용했다.
수리한 물건을 스캇에게 돌려주고 내 자리에 와보니 -아니 이게 웬일인가?- 오늘 만든 물건이 몽땅 없어지고 깍지 않은 재료가 수북이 놓여 있었다.
-흠! 이놈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나를 골탕 먹이려 하고 있군 ―
이번에는 안토니오에게 가는 대신에 이층에 있는 매니저 방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매니저 제리는“무슨 일이야?”하면서 언짢은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제가 만든 물건을 누군가 훔쳐 갔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은 아예 몽땅 가져갔습니다. 또 불량품을 내 박스에 갖다 놓고 좋은 것으로 바꿔치기 해서 32개나 수리를 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나? 한동안 조용하더니 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지, 알았으니 내려가게”
그 후 매니저와 우리 부서의 실장 그리고 조장까지 내 기계를 둘러보면서 한참 동안 여러 가지 의논들을 하고 사라졌다.
잠시 후에 라울과 쟌이 내게로 다가오더니 내 기계의 전원 스위치를 덜컥 꺼 버리는 것이었다. 쟌이 “야! 지금 겨우 기계 돌리는 거 배운 놈이 만들면 몇 개나 더 만든다고 설쳐대냐? 물건이나 정확하게 만들어 봐 임마, 괜히 서둘러서 불량품이나 만들지말구”
아하 안토니오와 죠지 영감이 조심하라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이제는 이들과 한판 붙던가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던지 해야겠군.
나는 즉시 뉴욕에 처음 왔을 때 흑인들에게 배운 욕인지 영어인지 분간 할 수 없는 말을 사이사이에 ‘F‘자를 섞어 가면서 내뱉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억눌러왔던 울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너 임마 나를 잘못 건드렸어, 너 같은 놈들은 인간쓰레기야 이 새끼들아, 일은 안하고 남의 물건이나 훔쳐 가고, 오늘은 내가 너희들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겠어, 두 놈 다 덤벼.!”
쟌은 잔뜩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면서 큰 키를 꾸부려 내 얼굴에 코가 닿을 정도로 바짝 들이대고 악을 써 댔다.
”요 쪼그만 쨉이 겁도 없이 덤벼들었어, 키스 마이 애스, 개새끼야,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내 눈에 다시 보이면 오토바이로 아주 깔아뭉개 버리겠어,“
고성이 오고 가는 사이에 누가 정문에 연락을 했는지 두 명의 씨큐리티 가드가 뛰어왔다. 그들은 마치 경찰이나 된 듯이 나와 쟌 그리고 라울까지 옆에 있는 빈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사건 내용을 조목조목 기록하고는 세 사람 모두에게 싸인을 하라고했다.

그 후에도 쟌은 기회만 되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알아듣지 못할 빠른 속도로 말을 해 놓고는 내가 다시 묻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면 입을 삐죽 내밀고 콧소리를 섞어 가며 내가 한말을 고대로 흉내 내서 주변 사람들을 웃겨 댔다. 가끔씩은 통로에 내려서서 내 이름을 크게 불러 놓고는 내가 머리를 내밀고 뒤돌아보면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고 앞으로 쑥 내밀어 보이기도 했다.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매일같이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화가 치밀어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헤이 쟌! 할말이 있으니 일 끝나고 나 좀 보자, H 파킹장에서 기다릴게!”
“뭐라고? 나를 좀 보시자구... 하하 웃기고 있네.”
파킹장H는 공장뒤쪽 으슥한 곳에 있었으며 쟌이 자기오토바이를 늘 파킹해 놓는 곳이었다.
두 시 반을 알리는 벨 소리가 길게 울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파킹 장에 있던 차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2부에 일하는 사람들의 차만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다. 저 끝 쪽에 쟌의 오토바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월남으로 출발하기 전 강원도 산골 관대리 산악 훈련장에서 만났던 강영식 대위 생각이 났다. 그는 생존법 훈련 중에 무성 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단검이나 교살구(가는 줄을 사용하여 사람 뒤에서 목을 공격하는 도구) 사용법외에 손바닥이나 엄지로 단 일격에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과 몸과 발을 써서 상대를 완전히 때려눕히는 훈련이었다.
오늘은 생과 사를 가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놈들은 세 명씩이나 되고 분명히 무기를 가졌을 테니 단숨에 제압하지 못한다면 나는 굉장한 위험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차를 돌려세우고 트렁크를 열어 놓았다. 그 안에는 실탄을 모두 뺀 빈 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잠시 후 공장 뒷문이 열리고 쟌과 루이 그리고 라울이 나타났다. 그들은 거들먹거리면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서 나를 에워싸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둘러섰다.
“할말이 있으시다고, 무슨 말인데?”하며 라울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너는 가만있어 임마, 쟌한테 할말이 있다고!” 그때 쟌이 나서면서
“남자 새끼가 무슨 말이 많아, 자 나오라고, 네가 월남전 베터란이란 것도 알고 마샬 아트 블랙 벨트라며 어디 한번 덤벼 보시지, 이 쪼고만 일본 놈아.”
“잠깐!... 무조건 싸울 것이 아니고 우리 사나이답게 딜을 하면 어떻겠나? 쟌! 네가 지면 나를 깨끗이 인정해 주고 더 이상은 괴롭히지 마! ... 만일 내가 지면 내일부터 회사를 그만둘게, 그리고 총이나 칼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들은 별로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히죽거리면서 내게로 다가섰다.
쟌이 큰소리로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새끼야!”하면서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서른 살이 채 안된 나이지만 오랫동안 머리와 수염을 깍지 않았고 배가 툭 불 거저 나온 것이 중늙은이처럼 보였다.
내가 재빨리 몸을 뒤로 젖히면서 비켜서자 쟌은 몸의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면서 내 앞쪽으로 머리를 숙여 왔다. 나는 때를 노치지 않고 몸을 공중으로 솟구치면서 쟌의 가슴팍에 오른발을 정확하게 꽂았다. 발끝에 둔중한 무게를 느끼면서 몸의 중심을 잡고 내려서는 순간 쟌이 머리를 건물 벽에 “꽝”하고 부딪치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번에는 옆에 섰던 라울이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슬쩍 비켜서면서 왼쪽 주먹으로 그의 귀밑을 힘껏 후려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공격을 받은 녀석들은 잠시 움찔하더니 쟌이 허리 뒤에 숨겼던 길이가 30센티 정도 되는 큰 칼을 뽑아 들고 내게로 돌진해 왔다.
나는 재빨리 내차로 뛰어갔다, 열어 놓은 트렁크 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면서 “쟌! 내가 무기는 쓰지 말자고했지! 조용히 칼 내려놔 이 새끼야, 무릎 꿇어!”
쟌이 천천히 뒤로 물러서면서 피식 웃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서너 명이 우리 쪽을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안토니오가 걱정이 되는지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내가 그렇게 참으라고 했는데 그 거친 놈들을 건드려 놨으니 이제 어쩔 셈인가?”
“걱정 마세요, 괜찮을 겁니다,”
“참 태평이군, 자네가 오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문제를 일으킨 쟌은 멀쩡하게 출근하고 상대편은 결국 회사를 그만뒀지, 항공 카메라부의 슈퍼바이저가 쟌의 친척이거든, 그래서 두 사람을 다 해고시켜 버리고는 2주후에 쟌 만 다시 부른 거야.”
“그렇게는 못할 겁니다. 싸움하기 전에 신사협정을 했거든요, 쟌도 팔씨름 한번 했다고 생각 할 겁니다.”

월요일 아침에 씨큐리티 디파트의 책임자인 미스터 가너가 찾아와서 나를 옆에 있는 빈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쟌이 방으로 들어섰다,
미스터 가너가 우리 두 사람에게 “지난 금요일 퇴근 직후에 회사 파킹 장에서 너희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잠시 후 쟌이 “아니요, 장난 좀 친 걸요 뭐”했다.
“너희가 싸우는 것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두 사람씩이나 돼,”
“미스터 가너, 이 친구 태권도 매스텁니다, 블랙 벨트 아시죠, 하도 자랑하기에 시범 한번 보여 달라고 했거든요. 와! 하늘로 날라 오르더라고요. ”
”자네가 태권도 시범을 보여줬다고, 정말인가?”
“네, 하도 졸라대기에 ...”
“무기도 꺼내 들었다던데?”
“호신술 시범도 보여 줬습니다,”
그때 쟌이 다시 나서면서“네, 루이와 라울도 같이 봤어요.”
“흠! 뭐 별 일도 아니었구먼그래, 태권도 시범을 보여 줬다... 호신술 시범도!!네 사람 모두 아무 문제도 없는 거지?”
“네”
“그렇다면 됐어, 모두 돌아가도 좋아”
그 일 이후 쟌은 의식적으로 나를 피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변한 것은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사납게 굴었다.
쟌은 쉬는 시간만 되면 쏜살같이 파킹 장에 세워 놓은 벤 속으로 사라지 곤했다. 한 사람당 2불씩 거둬서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의 마리화나를 사 가지고는 여러 명이 들어앉아 돌려가며 피워 댔다.

대부분의 남미 사람들은 성당에 다니는데 안토니오는 침례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안토니오가 나가는 교회에 특별 집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닥터 김이 강사로 오신다고 하면서 꼭 한번 와 주기를 원했다. 집회 장소에는 수천 명이 모였고, 김 목사님은 특유의 경상도 억양이 섞인 유창한 영어로 설교를 하셨다. 집회가 끝난 후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수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나도 그들 무리에 섞여서 김 목사님을 기다렸다. 내게 다가오신 목사님께 “안녕 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자 “아이고 한국분이 다 오셨군요! 하면서 반가워하셨다.
그날 이후 안토니오는 나를 자기와 같은 남 침례교 계통의 교회에 다니는 교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런치룸 테이블에 추수감사절 장식이 내 걸린 것을 보니 벌써 한해가 저물어 가는 듯 했다.
안토니오가 내 테이블로 다가와 앉으면서 “요즈음은 쟌하고 잘 지나고 있나?”했다.
“예, 서로 방해는 안 하고 있어요, 나 대신에 부이를 못살게 하는가 봐요, 왜 키 조그만 월남 친구 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쟌을 좀 도와주지 않겠나?”
“어떻게요?”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니까 쟌을 사랑으로 대해 주자는 것이지, 이를테면 우리가 조금 더 부지런히 물건을 만들어서 그 친구 모르게 숫자를 채워 주는 거야, 오죽 했으면 남이 해 놓은 것을 훔쳐 갔겠어, 매니저가 여러 번 경고를 줬데, 쟌도 딸린 식구가 있는데 여기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는 친구거든, 벌써 여섯 군데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마리화나나 피우고 마음을 못 잡고 있으니 말이야, 자네와 다툴 때도 그래서 말렸던 거야.”
“그렇게 하면 버릇 만 나빠지지 쟌이 바뀌겠어요?”
“죠지하고 나는 다섯 개씩 도와주기로 했으니 이 물건 끝날 때까지만 자네도 다섯 개 정도만 도와 줬으면 하네!
쟌을 도와준다, -야 정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원수를 사랑하라’ 이건데 .....
미국에 와서 힘든 일을 수도 없이 당해는 봤어도 내 스스로가 누구를 도와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누구를 도와준다, 그놈이 미워서 발길질까지 해 놓고 내가 자진해서 물건을 해서 바쳐? 사실 물건 다섯 개쯤 더 만드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 또 이번 물건이 끝날 때 까지 만 이라니 거절할 수도 없지 않는가.-
나도 물건을 더 만들어서 쟌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안토니오는 학교 공부는 그리 많이 못했겠지만 교회를 통해 성경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보여준 사랑을 문제투성이 쟌에게도 똑같이 베풀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우리 부서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쟌이 이 기계 저 기계 기웃거리면서 셋업이 잘 못 되었다는 둥, 코발트 드릴을 써야 더 능률적이라는 둥, 자기 딴에는 좋은 의견이라고 지껄이고 다녔다. 매사에 언성을 높이고 싸움하자고 덤빌 때보다는 훨씬 평안했다.

오늘도 마미스 도낫샾에 들려 슈거 트위스트와 따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똑같은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 안토니오 말대로 쟌에게 사랑을 보여줘라? 그놈들의 완력에 눌려서 비굴하게 꼬리를 내리는 것은 분명히 아닌데 왜 선뜻이 그에게 손을 못 내미는 것일까? 혹시 아직도 조금 남아 있는 다 구겨진 내 자존심 때문일까? 어떤 방법으로 쟌에게 접근해야 한단 말인가? -
쉬는 시간마다 런치 카에서 음식을 사는 대신에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해 파킹장 구석에 세워 놓은 시꺼먼 벤 속으로 들어가곤 하던 쟌이 머리에 떠올랐다.
슈거 트위스트 한 개를 더 사 들고 나왔다. 쟌의 기계 옆을 지나치면서 흰 봉지에 든 도넛을 그의 테이블 위로 슬쩍 던져 주었다. 잠시 후 쟌이 봉지를 열어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허겁지겁 입에 쳐 넣었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좋은 일이라도 하는 것 같았었는데 이제는 마미스 도넛에 들려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나면 으레 버릇처럼 도넛 한 개를 하얀 봉지에 넣어 가지고 나왔다.
지난 수개월 동안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쟌을 미워하던 나의 감정이 점차 수그러들면서 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고, 그를 측은하게 생각하던 마음이 어느덧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쟌의 책상에 놓아주기 위해서 언제나 10분쯤은 일찍 출근하곤 했다.

어느덧 봄이 오고 마켓에는 토끼 장식과 색칠한 계란들로 부활절 연휴를 준비하고 있었다.
쟌이 내게 다가오더니 “해피 이스터 문”하면서 그 큰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해피 이스터 쟌”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쟌이 악수한 손을 놓고 멋쩍은 듯이 피식 웃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가만히 손을 펴 보니 거기에는 놀랍게도 황동으로 만든 조그만 십자가가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나의 눈에는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회사에서 풍성한 이스터 점심을 런치 룸에 준비해 주었다. 쟌과 루이 라울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제 세상 만난 듯이 떠들며 즐기고 있었다.
“하이! 쟌 너한테 물어 볼 말이 있어”하면서 내가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자 라울이 벌떡 일어서면서 팔을 구부려 얼굴을 가리고“Okay, Okay please don't hit me master!"하면서 익살을 부렸다.
“쟌 선물 참 고맙다. 그런데 어떻게 십자가를 만들어서 내게 줄 생각을 했냐?
“응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십자가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을 것 같았어, 너도 안토니오와 같이 교회 다니지, 점심 식사 할 때마다 기도하는 것도 봤고,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 갈아서 만든 거야, 사실은 나도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는 부모님들 쫓아서 교회에 다녔었거든,
“그랬었구나,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다시 교회에 나아가도록 해, 쟌! 이 선물 평생 동안 잘 간직할게, 해피 이스터 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피폐해진 쟌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내 사랑하는 쟌의 마음속에 부활의 기쁨을 허락하옵소서! ....”


에필로그

샤핑 카트 가득히 인생의 무거운 짐을 싣고 거리를 방황하는 집 잃은 형제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때의 쟌을 생각한다.
30여 년 전 낡은 Steel toe shoes를 신고 뽀얀 먼지와 기름타는 냄새 속에서 푸른색 앞치마에 뒷주머니엔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 수건을 찔러 넣고 열심히 기계를 돌려대던 이민초기의 암울했던 그 시절을 떠 올리곤 한다.
그때 쟌을 통해 받은 십자가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십자가를 만들어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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